흔히 나무를 베어 만드는 종이는 누구나 아껴 사용해야 하는 자원으로 인식된다. 이면지를 사용하거나 혹은 수거해 다시 재활용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스마트 시대로 접어들면서 태블릿이나 스마트폰을 이용해 독서를 하거나 혹은 업무상 종이를 사용하지 않고 전자 결제 시스템을 도입하는 경우도 크게 늘어나고 있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학생들의 교과서를 모두 태블릿으로 교체하는 디지털 교과서 도입도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편리할 뿐만 아니라 나무를 베지 않아도 돼 환경 파괴를 막을 수 있다는 이유다.
■ 스마트폰이 종이보다 환경에 더 치명적?
그러나 종이가 스마트폰에 비해 친환경적이며 환경을 덜 오염시킨다는 시각도 있어 눈길을 끈다. 종이의 원료가 되는 펄프 생산 공정이 고도화되면서 나무를 계획적으로 경작하고 사용한 만큼 심는 이른바 ‘조림(plantation)’이 잘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일부 제지업체를 제외하고 원시림을 베어 만드는 펄프를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때문에 펄프를 만드는데 필요한 나무는 땅과 물 그리고 햇빛만 있으면 지속적으로 공급 가능한 무한 자원이다.
반면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각종 금속과 플라스틱 그리고 희토류 등은 유한 자원이다. 뿐만 아니라 이를 채취 및 가공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환경오염도 심각하다. 제품 수명에 따라 불과 1~2년만에 쓰레기처럼 버려져 재활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도 환경 오염의 주된 원인이 된다. 종이는 쉽게 썩지만 스마트폰은 그렇지 못하다.
물론 이러한 펄프업계의 조림이 산림을 녹색 사막화 한다는 반론도 있다. 한 지역에 단일 수종만 집중적으로 심기 때문에 토양이 파괴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평균 사용 주기가 2년이 채 되지 않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에 비교하면 종이는 좀 더 친환경적으로 다가온다.
■스마트 시대, 종이의 변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이를 만드는 제지산업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단순히 환경적인 이유가 아니더라도 종이 대신 스마트 기기를 사용하는 비중이 매년 크게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가 신문이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종이 뉴스 소비는 크게 줄었다. 사람들은 출퇴근길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종이 신문 대신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한때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무료 신문도 최근에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제지업계도 변화를 꾀하고 있다. 그동안 종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것은 물론 종이의 품질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종이 특유의 아날로그적인 감성은 더욱 살리고 보다 그에 걸맞는 고품질의 종이를 생산해내고 있다.
국내 제 1의 제지업체인 한국제지는 최근 신제품 복사지 ‘밀크(Miilk)’를 출시했다. 이름부터가 일단 말랑말랑하다. 단순히 하얀 종이에 불과한 복사지지만 제품군을 다변화하고 우유를 연상시키는 브랜드와 그에 걸맞는 포장으로 감성적인 느낌을 극대화했다.
밀크는 사진 출력에 적합한 ‘밀크 포토’를 비롯해 프리젠테이션용 ‘밀크 PT’ 그리고 푸르스름한 빛깔이 도는 ‘밀크 스카이’, 미색이 나는 ‘밀크 베이지’로 각각 나뉜다. 각 제품마다 종이 두께와 무게가 미세하게 차이를 둬 용도에 맞게 품질을 극대화했다.
뿐만 아니라 ‘밀크’에는 최첨단 기술이 숨었다. 종이 낱장을 들었을 때 매끄럽고 찰랑거리는 느낌을 주기 위해 기능성 첨가제가 포함된 도포액을 발랐다. 특허를 받은 표면 피크먼팅 기술이다.
또한 보일러 연소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와 생석회의 화학적 반응으로 만들어진 충전재를 사용한다. 이산화탄소를 재활용에 온실가스로 인한 지구온난화를 늦출수 있을 뿐만이 아니라 보다 매끄럽고 평평하면서도 뒤비침이 적은 보다 불투명한 종이를 만들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이밖에 조림되는 100% 남미산 유칼립투스 펄프만을 사용해 품질을 극대화 했다.
■ 왜, 종이에 주목하나?
최근 스마트폰 가입자가 2천만명을 돌파했다. 태블릿 신제품도 꾸준히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제 종이를 쓰지 않을 것으로 보는 이는 거의 없다. 그만큼 지난 우리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선진국일수록 종이를 소비하는 비중이 높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전 세계에서 가장 종이를 많이 쓰는 나라는 다름 아닌 미국이다. 반면 종이를 가장 적게 쓰는 나라는 인도다. 여전히 종이는 그나라 문화의 척도로 활용되며 안정적으로 오랫동안 기록물을 보존하는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다.
종이는 아날로그 시대의 대표적인 유물이면서 디지털 시대에 가장 감성적인 미디어다. 여전히 사람들은 책장을 넘기는 느낌 때문에 종이책으로 독서를 선호한다. 전자책 조차 이러한 느낌을 살리기 위한 기술 개발에 혈안이 돼 있다. 또한 종이처럼 휘는 플렉서블 디스플레이 개발에 막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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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역시 스마트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프린터나 복사기 기술이 발전과 함께 종이 품질 역시 상향 평준화되면서 이제 걸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복사지에 출력해도 인화지 못지 않은 품질을 자랑한다.
무엇보다 종이의 자유로움과 특유의 촉감은 여전히 다른 미디어가 대체할 수 없다는 평가다. 스마트 시대에 종이가 주목받고 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