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 표현은 자신의 의사를 나타내기 위해서 ‘용기를 강요’하지 않는다. 반면 인터넷 실명제 등 정부가 주도하는 규제는 국민을 더욱 침묵하게 만든다.”
인터넷 실명제(제한적 본인확인제)의 한계에 대한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법적으로 살펴보면 인터넷 실명제가 사전 자기검열을 조장함으로써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조소영 부산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는 한국언론법학회 주최로 20일 헌법재판소 대강당에서 열린 ‘인터넷상의 표현의 자유와 한계’ 세미나에서 이같이 말했다.
인터넷 실명제, 즉 제한적 본인확인제는 하루 방문자 10만명이 넘는 사이트에 글을 쓸 경우 주민등록번호와 실명 확인을 거치도록 하는 규제다. 해당 규제는 공직선거법과 정보통신망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정통망법)에 명시돼있다.
조 교수는 공직선거법과 정통망법에 명시된 인터넷 실명제의 의미와 차이점에 대해 설명하며 “규제는 기본권 침해의 최소성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봐야한다”고 지적했다. 또 “실명게시판-익명게시판을 분리하는 등 기술적으로 덜 침해적인 방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괄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문제”라고 덧붙였다.
로스 라쥬네스 구글 공공정책 및 대외협력업무 총괄 디렉터 역시 인터넷 실명제에 대한 우려를 표시했다. 정부의 규제나 정책은 인터넷의 가치를 최대화 시키거나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획일적으로 적용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라쥬네스 디렉터는 “한국은 세계적으로도 뛰어난 인터넷 인프라를 갖추고 있지만, 그 이상으로 좋은 정책이 필요하다”며 “인터넷 실명제 같은 규제는 사용자들이 인터넷에서 정보를 공유하고 인터넷의 장점을 누리는데 장벽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인터넷은 열려있어야 하며, 열려 있을 때 정보의 교류와 문화의 교류가 일어난다”며 “최소한의 규제가 있을 때 더 많은 기회와 경제 성장이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에는 인터넷 실명제가 네이트, 싸이월드 등 개인정보 유출의 원인이 됐다는 주장도 나왔다. 업계에서는 인터넷 실명제가 포털사이트로 하여금 댓글이나 게시글을 작성한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6개월간 보관하도록 함으로써 과도한 개인정보 수집을 조장했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그렇다고 인터넷 실명제가 무조건 악법이라는 것은 아니다. 조 교수는 악성 댓글 방지 등 입법적 목적에는 공감하지만 기술적인 편의성을 위해서 인터넷을 이용하는 전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조 교수는 “국가가 규제를 둔 목적은 인터넷의 부작용으로 인한 선의의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한 노력”이라며 “다만 부작용을 해결하는데 자정작용을 무시하고 국가가 강제력을 동원해 인터넷을 사용하는 모든 국민을 규제 대상으로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인터넷 자정작용의 예로는 소셜댓글을 들었다. 소셜댓글은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댓글을 작성하는 서비스로, 현재 실명제 적용 대상 매체의 절반 이상이 도입한 상태다.
조 교수는 “SNS에서는 아무도 강제하지 않았지만 실명을 밝힌다”며 “이 경우 실명 확인을 거친 게시판보다 훨씬 악성 댓글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어 자정작용의 사례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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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인터넷 자적장용은 그 효과가 장기간에 걸쳐 조금씩 나타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피해자의 발생 억제나 회복을 당장 담보하기에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조 교수는 “범죄행위로 인한 침해 상황에 대해서는 국가가 나서 보호를 하되, 인터넷 실명제는 범죄자가 아닌 이들까지 제한하는 꼴”이라며 “다른 기술적 수단을 동원해 서비스 제공자나 이용자가 실명-비실명 여부를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