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을 장악한 HP와 정면으로 붙어서 이길 상황은 아직 아닙니다. 지금은 저수지의 보에 구멍을 뚫고 있죠. 작은 구멍이라도 한 곳만 뚫어내면 봇물 터지듯 물이 빠질 테니까요.”
지난해 시스코시스템즈에 합류했을 당시 x86서버 비즈니스 22년차 전문가 김훈 상무는 회계연도 2011년 목표를 500% 성장이라고 밝혔었다. 서버 사업 시작 초기라 아무리 백분율이 높아도 실제 액수는 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큰 숫자에서 풍기는 상징성은 주목할 만했다.
2011년 회계연도 마감 1개월을 앞둔 현재 시스코는 세계 x86서버 시장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 1분기 IDC 보고서에 따르면, 시스코의 x86기반 유니파이드컴퓨팅시스템(UCS) 블레이드 서버는 9.4%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해 델을 제치고 3위로 올라섰다. 전체 x86 시장은 1.6%지만 사업시작 1년 6개월 만에 시장조사업체 보고서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린 것이다.
한국은 어땠을까? 서버 전문가와 초보 회사간 만남, 그리고 500%란 성장목표는 달성했을 지 궁금하다. 회계연도 1년 마감을 앞두고 최근 기자와 만난 김훈 상무는 목표달성은 무난할 것으로 예상했다.
“액수로 보면 얼마 안 되지만, 500% 달성은 무난할 것으로 봅니다. 또 인지도도 확실히 좋아져서, UCS가 무엇인지도 모르던 사람들도 여러 서버제품 중 하나로 인식합니다. 지난 1분기 랙마운트 서버도 국내 대형 SP의 까다로운 성능검사에서 1위를 차지해 공급하게 됐죠.”
그동안 시스코 UCS서버는 현대증권, LG전자, 동부CNI, SK텔레콤, KBS 등에 공급됐다. 이들 외에 가상화 프로젝트에서 UCS서버의 장점을 인정받으며 추가주문이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김 상무는 전략을 보를 뚫고 있다는 것으로 요약했다. 시장의 강자들이 신경쓰지 않는 부분을 공략하면서 시스코에게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일단 그가 한 일은 채널 유통비즈니스의 공략이다. HP나 IBM, 델이 전반적인 서버시장 장악력을 확보하는 바탕이 유통이기 때문이다.
“x86서버 사업 구조를 보면 크게 프로젝트와 채널 유통 두개로 나뉩니다. 매출 규모는 프로젝트가 75%로 압도적인 비율이죠. 하지만 마진은 유통에서 나옵니다. 예를 들어, 100원짜리를 프로젝트서 45원에 팔고, 유통에서 76원에 팝니다. 생산가를 40원로 보면 유통에서 확보한 36원을 모아서 프로젝트 가격을 낮추는 거죠. 채널유통에서 확보한 마진을 바탕으로 프로젝트에서 가격경쟁력, 즉 실탄을 얻는 겁니다.”
김 상무의 전략은 이 실탄을 줄이는 것이다. 경쟁사가 유통시장에서 얻는 마진을 줄이고, 프로젝트 가격을 높이는 효과를 노린다.
“시스코가 유통 쪽에서 경쟁사보다 낮은 가격을 내세우면 어떻게 될까요. 60원으로 UCS를 판매한다면, 경쟁사의 유통가가 낮아지면서 프로젝트에서 운용할 여유가 줄어듭니다. 채널 윈백도 가능하죠. 글로벌 시장에서 이게 먹혔고, 국내도 비슷할 겁니다.”
김 상무는 이와 함께 서울, 수도권 이외 지역의 채널망 확보에 주력했다. 규모만큼 전반적인 집중도가 서울에 몰리다보니, 채널의 충성도가 다르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지방의 채널사들은 한국HP에 대한 충성도가 서울만큼 굳건하지 않아요. 마진과 가격을 확보해주고 잘 지원해 그들을 시스코의 우군으로 만들었어요. 아무래도 지방은 경쟁사들이 크게 신경쓰지도 않지요. 이게 나중에 큰 힘을 발휘할 거라 봅니다.”
또 다른 전략은 제품 자체의 측면이다. 시스코가 특허를 가진 확장 메모리 기술 덕에 UCS는 경쟁사보다 4배 많은 메모리 슬롯을 지원한다. 48개까지 메모리카드를 끼울 수 있는 것이다.
메모리가 많다는 것은 서버 가상화, 가상데스크톱인프라(VDI) 환경에서 강점을 드러낸다. 적은 서버 대수로 가상머신(VM)을 더 많이 생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2소켓 서버라도 메모리뱅크가 더 많으니 1대1로 볼 때의 구매가격은 비싸도 총소유비용(TCO)에서 유리합니다. 라이선스 비용도 줄어들고, 전반적인 운영서버대수가 줄어드니 비용절감 효과를 높여줍니다. 가상화를 사용하는 인원이 늘어나고 규모가 커질수록 장점이 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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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상무는 자신감에 넘쳤다. x86서버 1위 한국HP를 위협할 곳은 시스코뿐이라며 1년만 더 지나면 시스코가 시장 전반에서 두각을 드러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네트워킹을 제외하고 시스코의 신규 사업 중 UCS서버는 가장 빨리 성장하는 사업입니다. 본사의 기대도 높고 투자도 많죠. 최근 아시아태평양지역을 한 영역으로 통합해 더 많은 투자가 이뤄질 겁니다. 다 외우지 못할 정도로 새로운 계획이 많습니다. 국내의 x86시장에서 최고의 스페셜리스트들이 시스코코리아에 포진했습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