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김태정 기자> 밤 9시, 가로등을 빼면 암흑이다. 신주쿠 번화가와 레인보우 브릿지 등이 적막하다. 30층 건물 전체에 불이 들어온 창문이 거의 안 보인다. 호텔 엘리베이터는 한 두 대만 남기고 운행 정지고, 편의점도 간판 불을 껐다. 대 지진 후 전력난에 빠진 일본 도쿄의 밤 모습이다.
거리는 적막하지만 사람들의 한숨소리는 크다. 설마가 현실이 됐고, 울고 싶은데 뺨을 맞았다. 간 나오토 총리는 그래도 전력 소비량을 줄일 것을 주문한다.
“하마오카 원전 지역에 진도 8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80%다. 국민들의 안전을 위해 하마오카 원전 가동을 중지했다. 원전 주위 15m 방재벽이 완성되는 2013년까지는 참아 달라”
한숨과 별개로 일본 국민들은 잘 참는 모습이다. 오는 7월 기업들만 전년 대비 15% 전력량을 줄여야 하지만 벌써부터 절전 열풍이다. 야경이 사라진 도쿄도 일반 국민들이 만들었다.
도쿄전력 관내 4천여 점포가 월 3차례 이상 평일에 쉰다는 파친코 업계, 자판기 냉각기능을 돌아가며 중단한다는 전국청량음료공업회 등도 모범사례로 꼽힌다.
■“기부로는 부족, 에너지 혁명 노린다”
이쯤에서 손정의(손 마사요시) 소프트뱅크 회장이 말했다. “합시다(야리마쇼우)!” 110만명 팔로어를 이끄는 그가 트위터에서 즐겨 쓰는 말이다.
왜 하필 손정의인가? 그는 지진 후 ‘야심가’ ‘최고의 CEO’ 등을 넘어 (그가 원했든 아니든)일본의 국민 영웅으로 떠올랐다. 어린 시절 그에게 '조센진'이라 놀리며 돌까지 던지던 일본인들이 이제는 존경의 시선을 보낸다.
개인 재산 중 100억엔(약 1천300억원), 그리고 은퇴할 때까지 받을 임원 보수를 전액 지진 성금으로 기부하겠다고 발표했다. 일본 최고 부호들의 기부액이 많아야 10억엔임을 감안하면 이른바 ‘통 큰’ 결정이다.
돈만 내놓은 것이 아니다. 지진 수습 과정에서 무능한 관료들에 대한 비판을 거침없이 쏟아내 국민들의 카타르시스를 자극했다. 행정 편의만 따지는 고위 관료들, 차기 대권 주자에게 '바보'라고 직격탄을 날릴 기업인이 흔치는 않다.
이제는 답답한 정부 대신 본인이 재산 10억엔을 또 들여 원자력 발전을 대신할 친환경 에너지 연구소를 만든다고 한다. 뜬 구름 잡는 얘기가 아니라 그에게는 현실이라고 누차 강조한다.
■“부족하면 만들어야지!”
30일 한국 기자들과 도쿄서 만나서도 친환경 에너지 얘기만 나오면 눈이 번득였다. 정부에 대한 비판 메시지도 담긴 듯하다.
“많은 이들이 친환경 에너지는 아직 멀었다고 하지만 나에게는 아니다. 정치 제도적 문제만 해결되면 바로 시작한다. 전력이 부족하면 만들 생각을 해야지 허리띠만 조이면 되나”
우리나라 KT와 손잡은 것도 일본을 위한 대승적 전략이다. 일본 최대 데이터센터 사업자이면서도 KT 데이터센터를 일본 기업들에게 제공하겠단다. 전력비 덜 들고 성능 좋은 서비스를 일본에 제공하겠다는 구상이다. 물론, 소프트뱅크도 KT와 손잡으면서 한국 내 영향력 확대라는 이득이 생겼지만 쉬운 결정이 아니었음은 자명하다.
KT에 따르면 서버 한 대 당 월 전력량은 일반 가정집 한 곳 수준. 수 만개 서버를 운영하는 데이터센터는 전기 먹는 괴물이다. 손 회장이 데이터센터 전력 효율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이유다.
“부모님 두 분은 모두 한국인, 내 국적은 일본, 교육받은 곳은 미국... 젊은 시절 나 자신의 소속을 몰라 혼란스러웠다. 이제는 기업인을 떠나 한명의 인간으로서 아시아, 세계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뛰겠다. 이번 KT와의 협력 사업을 기대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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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의 회장은?
1957년 일본 규슈에서 태어난 한인 3세. 16세에 미국 유학을 떠나 고교 3년 과정을 2주만에 돌파하고, 버클리대 시절 1년에 250여건 발명을 해냈다. 1981년 자본금 1억엔에 직원 2명으로 소프트뱅크를 설립, 지디넷을 만든 지프데이비스 등 미국 기업에 투자했다. 2000년 일본 고액 납세자 3위, 일본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 등으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