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사회 병폐 현상으로 지목된 '게임중독'에 대한 실증적 연구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주장이 여럿 제기됐다. 청소년 게임중독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추진되는 '셧다운제'가 국회 법사위 문턱을 넘어선 직후 열린 학술 세미나에서다.
지난 20일 사이버커뮤니케이션 학회 주최로 진행된 '게임중독 실태 및 정책적 대응방안' 세미나에선 게임중독의 제대로 된 뜻을 짚고 실태 및 정책적 대응 방안이 논의됐다.
■게임중독, 제대로 된 진단 없이 단일적 처방 안된다
이날 '게임중독과 폭력성 간의 관계에 관한 탐색적 고찰'이란 주제로 강연에 나선 김옥태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 연구원은 중독을 '통제가 불가능한 의존 혹은 자기조절의 실패'로 정의했다.
그는 일인칭슈팅(FPS)게임의 경우, 상대방을 무차별적으로 살상해야 하는 행위가 반복되면 적대적 감정과 공격성이 생길 수 있다면서도 '폭력적인 게임을 했을 때 폭력적이 되는가'에 대한 것은 확언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게임중독과 공격성 혹은 폭력성의 인과관계를 검증하는 실험 연구가 부족하다는 지적은 이어졌다.
특히 그는 '공격성'은 중독이 가져올 수 있는 부정적 결과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우리 사회에선 유난히 공격성이나 폭력성만 강조되는데, 중독의 다른 결과로는 외로움, 사회적 고립, 심리적 충동성, 강박성 등이 있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중독으로 인한 여러 부정적 결과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연구가 병행돼야 한다며 중독의 원인이 단순하지 않기 때문에 다양한 방식으로 중독적 이용을 막는 방안이 고려돼야 한다는 결론을 내놨다. 셧다운제와 같은 단일적 규제는 게임중독에 대한 처방으로 충분치 않다는 해석이다.
■게임중독, 근거 없는 '추정' 투성…원인과 결과 제대로 짚어야
이 같은 진단은 계속됐다. 이충헌 정신과 전문의(KBS 의학전문기자)는 종전의 미디어 연구에서 '폭력적 미디어에 노출될 경우 폭력성이 높아진다'는 사회학습이론이 있긴 하다며 하지만 이를 게임에 곧바로 연결시키긴 어렵다고 했다.
게임중독과 폭력성이 개연성은 있으나 이에 대한 실증적 연구는 아직 보지 못했다는 설명이 덧붙었다.
그는 게임중독에 대한 언론보도를 읽다보면 사실상 팩트는 거의 없다며 게임중독이라는 용어의 사회적 남용과 부정적 인식 확대에 대해 '추정'으로 기인한 언론에 책임을 물었다.
또 게임을 즐긴 이들의 폭력성을 대두시킨 언론의 보도에는 드러나지 않은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중독성에 빠진 사람들에게 내면의 폭력성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들 대부분이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와 같이 관계 결핍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언론이 게임과 범죄의 인과관계를 단정적으로 연결시키는 '자극적인' 뉴스를 생산하면서, 사회 환경적 요인에 대해선 두루 살피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뼈아픈 질타다.
'게임산업의 산업특성과 한국게임산업의 현안'이라는 주제로 발제에 나선 장우현 한국개발연구원 부연구위원 또한 이러한 문제제기를 거들었다.
장 부연구위원은 현재 게임에 대한 사회 부정적 인식은 과도하게 부풀려진 면이 있다며 게임소비가 과도해 보인다면 그것이 문제의 원인인지 결과인지 심도 있게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 게임산업의 규모나 성장률에 비해 종합적인 학술 정책이 미진하다는 지적을 제기했다. 국가 동력으로 꼽히는 산업의 부작용을 논하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도, 산업 자체를 이해하려는 노력도 적다는 얘기다.
■게임중독 해결하려면 국가 개입보다 가정의 노력 먼저
이날 모인 산학계 전문가들은 게임중독을 해결키 위해선 무엇보다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에 입을 모았다.
조연하 이화여대 커뮤니이션 연구소 교수는 부모의 이용중재가 미디어의 부정적 영향력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연구결과는 다수 존재한다며 사회적으로 마련된 제도나 장치들을 적절하게 활용하되 부모의 미디어 이용중재가 자녀 교육의 한 분야라는 점에서 최우선이 돼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셧다운제와 같은 중재 방법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입장을 표했다. 그는 제한적인 중재행위는 부정적 영향력을 최소화하기 어렵다며 단순히 기계적으로만 게임이용을 제한할 것이 아니라 게임을 그 내용과 의미에 대해 설명하고 토의하는 도구로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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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에 대한 인식 전환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법이나 제도적인 측면만의 접근은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우려도 나왔다.
조영기 한국법제연구원 입법평가연구센터 연구원은 법은 문화주도적 역할을 할 수도 있지만 문화라는 것이 국민의 자발적 참여로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강제와 규제만으로 어린이와 청소년을 보호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