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좋은 일터 만들기 프로젝트'와 우리의 IT

일반입력 :2011/03/08 09:45

백승주
백승주

금일 미디어에서 흥미로운 기사를 하나 찾았다. 바로 고용노동부에서 발표한 “좋은 일터 만들기” 프로젝트이다. 2012년까지 연간 근로시간을 1천950시간으로 줄이는 내용과 함께, 좋은 일터로 만들기 위한 다양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2020년까지 연간 1천800대시간을 목표로 하고 있다니, 숫자만 봐서는 매우 환영할만한 일인 것 같다. (계산기를 놓고, 1천950을 12개월로, 1개월을 대략 20일정도로 나눠보면, 하루당 근무 시간이 나온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에 가장 오랜 근무 시간을 자랑하는 나라 중 하나이다. 1년에 2천시간을 넘게, 곱씹어 살펴보면 그보다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더 일하고 있다. 특히 IT 업종에서는 밤을 낮삼아, 낮을 밤삼아 일하시는 분들을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데, 그 분들은 과연 본인의 의지나 가치 추구를 위해 그렇게 일하는 것일까?

주위에서 많은 분들이 우스개처럼, IT가 3D 업종 중 하나이기에, 자식이 생기면 IT를 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왜 우리가 일하는 IT가 이러한 상황에 봉착하게 되었을까? 과연 그 해법은 없을까?

종종 글을 통해 언급하는 이야기지만, 스마트폰과 모바일 오피스 트렌드는 다양한 측면에서 우리의 생활과 업무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해주고 있다. 이러한 기술을 만들고, 운영하는 IT는 더더욱 그러한 기술 트렌드로부터 혜택을 받기 좋은 곳 중 하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T 엔지니어와 개발자의 삶은 사실 피곤하기 그지없다. 대부분의 프로젝트는 계약 관계상 갑과 을, 어떨 경우엔 3자 이상의 계약 형태가 유지되기에, 프로젝트 의뢰자는 자신이 요청하는 모든 사항을 IT 엔지니어와 개발자들이 요구대로 완료하고, 처리해야 함을 기본으로 생각한다. 일상적이기에 어찌 보면 이제 당연하다고 생각까지 들 수 있다. 그렇지만 아쉬운 점이 상당히 많다.

일전에 모 블로그에서 본 글이 하나 있다. 우리나라의 기업과 외국의 기업에게 비슷한 형태로 파트너의 관계를 유지했는데, 너무나 다른 업무 형태에 충격을 받았다는 이야기였다. 갑과 을, 다시 말해 종속 관계가 아닌, 프로젝트의 파트너로서, 서로의 상황에 대해서 이해해주고, 비즈니스가 성공적으로 마치기 위한 충분한 시간 확보가 가능하였다고 한다.

우리 IT 엔지니어의 삶은 어떠한가?

주위에 이야기를 들어보면, 프로젝트 기획 단계에서부터 서로 만나 의견을 조율한 프로젝트를 찾아보기 힘들다. IT 업체의 담당자가 의뢰자를 만나보면, 이미 예산, 완료 날짜 등이 다 마무리되어 있는 상태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기간 및 금액에 수긍하면, 해당 프로젝트를 수주할 수 있고, 수긍하지 못하면 할 수 없다. 이러한 예산 및 완료 날짜가 어떻게 정해졌는지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기술적인 검토보다는 비즈니스, 정치적인 이슈가 많으며, 그러한 것이 결정되는 구성원 중에 IT 기술에 대한 의견을 많이 반영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프로젝트가 여유가 없기에, 당연히 엔지니어나 개발자들은 해당 일에 대해서 좀더 크게 생각할 수 있는 여유도 없고, 반복적으로 빠르게 일을 처리해 나가기에 벅차게 된다. 그리고 스트레스도 쌓여만 간다. 이렇게 완성된 결과물이 얼마나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을까?

여기가 끝이 아니다. 한 번에 검수가 끝나면 너무나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처음의 방향과 다르게, 많은 수정 요청 사항이 생기는 것도 다반사다. 이 요청 사항들을 살펴보면, 이게 왜 이제서야 등장하게 되었나? 라는 의구심을 안고 또다시 엔지니어는 요구 사항을 처리한다. 역시나 프로젝트 종료 시간은 빠르게 다가온다.

모든 프로젝트가 이런 형태로 흘러간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물론 프로젝트에서는 의뢰자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에도 일부 동의하지만, 프로젝트가 변경 사항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기획 단계에서 충분한 검토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임에도 불구하고, 프로젝트를 의뢰했고, 이에 합당한 보상을 한다고 해서, 이에 대한 무조건적인 수용을 요청하는 것은 조금은 무리수이지 않나 싶다. 그들은 상생할 비즈니스 파트너이다.

물론 IT 엔지니어도 프로 의식을 갖고, 본인에게 의뢰된, 그리고 처리를 요청한 일에 대해서는 가장 최선의 방향으로 고민하고, 처리를 해야 한다. 문화의 변화에 맞춰 기획 단계에서 목소리를 가미하고, 생각을 섞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지식 습득 노력이 필수적이며, 어떠한 기술을 바라볼 때도, 비즈니스와의 결합적인 사고가 있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본인의 업무 시간을 좀 더 효율적이고, 냉정하게 사용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일과 개인 삶의 균형은 환경적 요인도 있지만, 개인의 의지도 무척이나 중요하다.

IT 산업은 지식 산업이다. 무언가 기계나 단순 반복을 통해 찍어내는 전통적인 제조 산업이 아니다. 마구마구 돌린다고 물건이 뚝딱 나오는 형태가 아니라는 의미이다. 지금과 같은 산업 접근 방식은 뛰어난 수준의 IT 엔지니어가 이 일을 더할 수 있을 만한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다른 일로 바꿔볼까라고 고민을 더할 뿐이다.

상호 간의 기술에 대한 이해 및 비즈니스 반영 기획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 또한 기술적인 그림으로 나오기 위한 적절한 시간 보장 및 환경이 필수적이다. 그래야 좋은 결과의 프로젝트가 나오고,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들의 자긍심도 올릴 수 있다. “대한민국은 IT 강국”이라고 자부하는 오늘날, 지금과 같이 프로젝트 참여중 짧은 반차의 휴가를 내기 위해, 구구절절한 사연을 써야 하며, 주말도 당연히 일한다고 상호 인정하는 문화의 끝은 IT의 어두운 이면만을 보여줄 뿐이다. 우리도 이제 희끗한 머리, 지긋한 나이까지 IT 엔지니어에 만족하면서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날, 또한 정부가 발표한 연간 근무시간 1천950시간을 누릴 수 있는 날을 기대해본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백승주 IT컬럼니스트

IT 칼럼니스트, Microsoft 기술 전도사(Evangelist), IT 트렌드 및 주요 키워드를 다루는 꼬알라의 하얀집(http://www.koalra.com)을 운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