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명의 무사가 외나무다리에서 만나 칼집에 손을 올린 채 죽일 듯이 쳐다보고 있다. 한 무사는 자신이 다리를 만들었으니 통행료와 다리명칭을 붙일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고, 또 다른 무사는 다리를 만들 때 재료를 제공했으니 기본 권리는 인정해 달라며 눈을 치켜세운다.
이 같은 웃지 못 할 사태는 e스포츠 시장에서도 발생한다. 한국e스포츠협회 사무국(이하 협회 사무국)과 곰TV 방송채널을 운영하는 그래텍이 스타크래프트 지적재산권을 두고 외나무다리에서 대치중인 것이다.
협회 사무국은 그동안 국내 e스포츠 시장의 규모를 키운 만큼 스타크래프트 리그 운영권과 방송중계권 등의 권리를 내놓으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그래텍은 게임에 대한 원저작권은 블리자드에게, 리그 운영과 방송중계에 대한 라이선스는 자신에게 있으니 불합리한 요구는 받아드릴 수 없다는 입장을 보여 왔다.
그런데 최근 지루함마저 느껴졌던 대치 상황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협회 사무국이 지난 12일 스타크래프트 하반기 첫 리그인 시즌 10-11의 시작을 알린 것이다. 시즌 10-11은 오는 16일 부터 시작이다. 후원사도 결정됐다. 신한은행이다. 후원금액 규모는 최소 수억 원이 웃돈다고 한다.
이는 협회 사무국이 먼저 칼을 빼들고 그래텍의 목을 겨냥한 것과 다름없어 보인다. 그래텍과의 협상을 마무리 하지 않고 리그 강행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협회 사무국이 스타크래프트의 원저작권자인 블리자드와 블리자드의 e스포츠 파트너사인 그래텍을 무시하겠다는 하나의 의지로도 해석된다. 그래텍이 어떤 대응을 하든지 신경을 쓰지 않겠다는 무관심의 표현일 수 있다.
또한 리그 강행을 선택한 협회 사무국은 의도적으로 도발 행위를 했다고 볼 수 있다. 일종에 간보기로 보인다. 그래텍이 어떻게 나올지 두고 보는 셈. 협회 사무국이 계속 협상을 진행할 것이라고 모 매체를 통해 밝혔지만 이를 믿어야 할지에 대한 의문부호가 생긴다.
그래서일까. 업계에서는 그래텍도 칼을 빼들고 맞대응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법적 대응이란 카드를 꺼내들지도 모른다. 가만히 서있어도 코를 베어가는 세상이니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철저한 준비가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그래텍 측은 협회 사무국의 이해할 수 없는 행보에 대해 할 말을 잃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상태다. 협회 사무국은 칼을 빼든 분위기를 연출했지만 그래텍은 오히려 칼을 내려놓고 주저 앉았다. 수많은 e스포츠팬들과 불철주야 구슬땀을 흘리는 프로게이머의 얼굴을 볼 수 없어서다.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이냐는 질문에 그래텍 관계자는 지난 14일 “협상 마무리 없이 리그를 강행했다는 점에 놀랐다. 어떤 후속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고민이 깊다. (법적 대응 등)아직 어떤 것도 결정돼지 않았다”면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프로게이머와 e스포츠팬들이다. 이들이 무슨 죄가 있냐. 편한 마음으로 경기를 치루고 구경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지는 못하고 계속 잡음이 생겨 골치가 아프다”고 덧붙였다.
e스포츠팬들은 바보가 아니다. 누구의 잘못이 크고 누가 약자인지 눈치 챈 지 오래다. 협회 사무국은 잃을 것이 없고 그래텍은 잃을 것이 많다는 점에서다. 협회 사무국은 이번 협상 건이 잘못될 경우 해체 수순을 밞으면된다. 게임단이 협회 사무국에 연간 자금을 지원하는 만큼 해체를 요구하고 새로운 협회를 꾸릴 수 있다. 그러나 그래텍은 수년간 쌓은 기업이미지가 훼손될 수 있고 수많은 e스포츠팬들에게 두고두고 사죄하면서 빚을 갚아야 하는 약자로 살아야한다.
협회 사무국은 그래텍이 강경 대응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만으로 배째라 식의 리그 강행을 선택했는지 여부는 아직까지 확실치 않다. 그러나 향후 문제가 발생된다면 협회 사무국 인사 중 누가 전면에 나서 책임을 질지 궁금해진다. 여기에 문화체육관광부의 산하기관인 한국콘텐츠진흥원이 협상 중재자로의 역할을 분명히 했는지에 대해 누군가는 따져야하는 게 옳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