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몰래 KT'가 된 까닭은?

기자수첩입력 :2010/05/25 15:00    수정: 2010/05/25 23:08

초고속인터넷 2위 업체인 SK브로드밴드가 1위 업체인 KT를 검찰에 형사고발했다.

KT 직원들이 대구시 달서구 지역의 모 아파트 통신장비실에 들어가 SK브로드밴드의 가입자 전화번호를 불법으로 수집했다는 것이 SK브로드밴드가 밝힌 고발 이유다.

SK브로드밴드 관계자는 “KT가 영업현장에서 불법 행위를 멈추지 않고 있는 가운데 터진 사건이어서 내부 검토 끝에 형사고발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초고속인터넷 시장이 포화된 레드오션 분야이기는 하나, 영업행위 과정에서의 경쟁사 불법행위를 형사고발까지 하는 경우는 흔치않다. 그만큼 SK브로드밴드가 가입자를 지키는 것에 절박했다는 반증이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보인다. 인터넷전화·IPTV 서비스 등의 제공 기반인 초고속인터넷 가입자가 통신사에게 그만큼 중요해 졌다는 것이다. 타 통신사의 초고속인터넷 가입자 정보를 빼내기 위해 불법행위를 강행할 만큼.

지난 4월 SK텔레콤이 SK브로드밴드의 유선 재판매에 나서는 등 초고속인터넷과 이동전화 서비스 등을 묶는 유무선 결합판매가 본격화되면서 경쟁이 더욱 치열해 진 것도 한 이유다.

방송통신위원회의 마케팅비 규제 가이드라인 결정도 이러한 불법 영업행위에 간접적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보조금이나 경품을 통한 영업행위 대신 불법 획득한 가입자 정보를 활용한 마케팅을 계획했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보다 가장 우려스러운 대목은 KT가 지난 6월 합병 이후 성과에 집착한 산물이 이번 결과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KT는 지난 연말 초고속인터넷을 담당하는 홈고객부문 위주로 약 7천명의 직원을 명예퇴직처리 했다. 그럼에도 KT는 올 1분기 13만7천389명이라는 2005년 이후 최대의 분기 순증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통합LG텔레콤이 6만5천548명, SK브로드밴드가 3만2천244명의 순증을 기록한 것과 크게 대비된다. 지난해 1분기 KT가 2천867명, 통합LG텔레콤 10만4천34명, SK브로드밴드 9만7천880명의 순증을 기록했다는 점에서는 더욱 괄목할 만한 성과다.

반면, 이 기간 동안 마케팅 비용은 KT가 1천709억원, 통합LG텔레콤이 908억원, SK브로드밴드가 983억원으로 KT가 경쟁사들보다 약 2배 더 지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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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KT가 아이폰으로 가시적 성과를 보이고 있는 무선부문과 달리, 서비스 내용 면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유선부문에서 합병 1년의 성과에 얼마나 집착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지표다.

‘통합KT’로 유무선 통합시대의 새 패러다임을 개척해 낸 성과가 단기적인 성적에 매몰돼 빛이 바래지 않을 까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