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재미없는 기능성게임을 누가 합니까?”

일반입력 :2010/05/12 14:57    수정: 2010/05/17 13:34

봉성창 기자

요즘 기능성게임(serious game)은 말 그대로 심각하다. 어디로 가야할지 갈피를 못잡고 있는 형국이다.

불과 수년전만 하더라도 기능성 게임은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대접받았다.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바로잡을 대안으로 손꼽히기도 했다. 해외에서 속속 기능성게임의 성공 사례가 보고되면서 분위기는 더욱 달아올랐다.

국내 게임사들도 하나둘씩 실험적으로 기능성게임을 내놓았다. NHN의 ‘한자마루’나 한빛소프트의 ‘오디션잉글리시’ 등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서비스가 시작한 지 1년 이상이 지난 지금 기능성게임 혹은 교육용게임이 우리 사회에 대중화됐다고 말하기는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다.

속사정을 살펴보니 게임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기능성게임의 강점은 기존 게임 이용자들에게 제대로 어필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당초 기대와 달리 교육을 위해 자녀들에게 게임을 시키는 부모도 보이지 않는다. 당연히 “이건 게임이 아니라 공부하는거야”라는 아이들의 주장도 먹힐 리 없다.

대중화 되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상업적으로 실패했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즉, 상품으로서 매력이 떨어졌다는 이야기다. 결국 기능성게임은 반드시 허울이 좋아야 하는 정부 사업의 구색 맞추기 정도로 전락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누가 명쾌한 설명을 해줄 수 있을까. 국내 최고의 석학들이 모인 카이스트(KAIST)에서 지난 2007년부터 기능성게임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는 우탁 박사야 말로 적임자로서 손색이 없어 보였다. 우탁 박사를 만나기 위해 지난 11일 대전 대덕구에 위치한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을 찾았다.

■자발적인 플레이 유도가 ‘핵심’

“기능성게임이 안되는 이유요? 재미가 없잖아요.”

간단 명료하다. 기능성게임도 어쨌든 게임인데 재미가 없으면 누가 하겠냐는 이야기다. 우 박사는 기존의 기능성게임이 기능성을 강조하다보니까 무조건 뭔가를 많이 집어넣으려고 한다면서 이 과정에서 점점 게임이 가진 특징을 잃어버렸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어느 순간 게임이 아니라 컴퓨터를 활용한 교재가 됐다는 것이다.“가령 대항해시대 같은 게임을 보세요. 리스본이라는 도시의 특산품이 무엇인지 누가 외우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자연스럽게 암기하게 됩니다. 이용자가 자발적으로 게임을 더 잘하기 위해서죠.”

특히 우 박사는 요즘 게임업계에 화두인 ‘과몰입’이야 말로 기능성게임이 나아가야할 방향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몰입’은 게임 디자인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자 게임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간 선보인 기능성게임은 이러한 틀을 건드렸다는 것이다.

“아마 부모들은 아이가 공부에 과몰입하는 것을 반대하지는 않을 겁니다. 오히려 대부분이 과몰입되기를 바라고 있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밤만 되면 컴퓨터를 켜고 공부를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 박사의 설명대로 게임을 통해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공부에 몰입한다면 흥행은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다. 기능성 게임, 나아가 전체 게임업계에 새로운 시장이 열리는 셈이다.

■학습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라야

우 박사는 지난해 게임 개발자 컨퍼런스에서 기능성게임을 개발하는 해외 개발자들을 만나 심도깊은 대화를 나눴다. 그들의 고민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게임을 만들어도 팔 곳이 마땅치 않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게임을 만드는 본인 조차도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왜 기능성게임은 돈이 되지 않고 재미가 없는걸까? 게임하이와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기능성게임랩이 공동 개발하고 있는 기능성게임 ‘스프링’은 이러한 고민에서 출발했다.

우 박사는 ‘스프링’에 대해 ‘멀티 이용자 간의 놀이를 통해 자발적인 동기를 부여하는 신개념 영어 교육용 기능성 게임’이라고 정의했다. 여러모로 학자다운 해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언뜻 보기에 ‘스프링’은 여느 게임과 다름없는 저연령층을 타깃으로 하는 횡스크롤 액션 RPG다. 유명 애니메이션 ‘비키앤조니’를 원작으로 한 점이 특징이다. 여기에 영어 교육을 위한 각종 요소가 더해졌다.

아직까지 개발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지만 우 박사는 자체 고안한 시스템을 일부 공개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알파뱃 수집 시스템이다.

‘스프링’에는 초중고 필수 영단어를 바탕으로 몬스터를 잡을 때마다 해당 영단어의 알파뱃이 드랍된다. 가령 ‘돼지’ 몬스터를 사냥할 경우 ‘PIG’라는 단어가 표시되고 그중 확률적으로 한 글자가 보상 아이템으로 주어진다. 이렇게 PIG를 모두 모을 경우 ‘돼지’와 관련된 유용한 아이템을 얻을 수 있다.

반드시 PIG를 만들기 위해 돼지 몬스터를 사냥할 필요도 없다. 알파뱃 I가 들어간 다른 몬스터를 사냥해도 무방하다. 이러한 수집 시스템은 단순히 교육적인 요소를 떠나서도 충분히 재미있는 요소다. 이용자는 공부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템을 얻기 위해 PIG를 모으고 자연스럽게 영단어를 암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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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은 게임하이를 통해 올해 중 공개서비스가 진행될 예정이다. 우 박사는 기능성게임이라고 한수 접고 들어갈 것이 아니라 기존 온라인게임과 대등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게임을 더욱 다듬고 있다.

“게임 이용자가 스스로 기능성 게임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게임을 공부라고 생각하는 순간 재미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게임이 재미가 없어지면 말 다한거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