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골게리온’ 잇는 ‘사골 메신저’ 만들겠다”

일반입력 :2010/03/19 11:45    수정: 2010/03/19 12:09

정윤희 기자

“‘고스트 메신저’는 한국의 오타쿠를 위한 작품입니다.”

18일 서울 명동 한 카페에서 만난 조경훈 스튜디오 애니멀 대표는 ‘고스트 메신저’에 대한 고백(?)으로 입을 열었다.

“사실은 저희(스튜디오 애니멀)가 오타쿠예요. ‘고스트 메신저’는 분명 타협적인 요소가 있지만 저희가 좋아하고 재미있는 것을 팬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만든 작품이죠. 성공을 하던 실패를 하던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고스트 메신저’는 스튜디오 애니멀이 지난 2007년부터 제작 중인 오리엔탈 SF판타지 애니메이션이다. 15세 이상을 타깃으로 하고 있으며 캐릭터, 세계관, 오프닝 동영상만을 공개했음에도 불구하고 온라인에서 애니메이션 마니아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받았다.

스마트한 이미지에 특유의 유머러스함도 겸비한 조 대표는 군대를 다녀온 직후인 지난 1998년 애니메이션 동아리 스튜디오 애니멀에 가입했다. 거기서 지금까지 손발을 맞추고 있는 구봉회 감독을 만났다.

“2000년 5명으로 정식 회사 등록을 하고 외주를 받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5명 모두 감독이다보니 배가 산으로 가는 일이 많더라고요. 회사 체계를 잡아야할 필요성을 느꼈어요. 그래서 제가 당시 유행하던 플래시 애니메이션으로 소위 ‘배틀’을 제안했었죠.”

감독들 사이의 실력을 규명하자는 의미에서 진행된 ‘배틀’은 공동 작업을 진행한 조 대표와 구 감독의 승리로 끝났다. 평가는 공정했다. 제작된 작품들을 공모전에 접수해 그 결과에 따라 순위를 매긴 것. 당시 조 대표와 구 감독이 작업한 ‘리벤지 임파서블2’는 ‘큰 회사에서 만든 작품을 공모전에 접수하면 어떡하냐’는 호평(?)을 들었다고 한다.

이후 조 대표는 스튜디오 애니멀을 본격적인 사업 궤도에 올리기 위해 동분서주 뛰어다녔지만 순탄치만은 않았다. 회사의 리스크를 피해가다 보니 ‘메디컬 아일랜드’, ‘군주’, ‘지구방위고등학교’ 등 다양한 작업을 진행했지만 중간에 중단되는 경우도 많았다.

“사실 구 감독님께 굉장히 죄송해요. 작품도 중요하지만 회사가 존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입이 필요하다보니 사업적인 리스크를 피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것 때문에 저희가 10년이 넘게 함께 손발을 맞췄지만 감독님 입장에서는 아직까지 대표작이라고 내세울만한 작품을 못 내놨었죠. 그래서 이번 ‘고스트 메신저’는 회사가 박살이 난다고 해도 만들겁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애니메이션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고스트 메신저’를 발견했다. 아직까지 제작 초기였음에도 불구하고 팬픽, 팬 아트뿐만 아니라 심지어 캐릭터 코스프레를 한 사진들도 심심찮게 올라왔다. 조 대표는 당시 스튜디오 애니멀 내부 분위기에 대해서 ‘너무 좋아서 미칠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충격적이었죠. 사실 최종 이용자들과 함께 즐긴다는 것이 저희 목표였거든요. 많은 관심을 받아보니 하루라도 빨리 이용자들에게 선보이고 싶다는 고민이 들었어요. 그래서 처음 기획은 TV시리즈였지만 6편짜리 오리지널 비디오 애니메이션(OVA)를 먼저 내기로 결정했죠.”

불법 다운로드가 주를 이루는 국내 DVD 시장을 고려하면 바람직한 결정은 아니었지만 당시 조 대표는 시장이 리어카라도 끌고 다니며 팔겠다는 각오였다.

조 대표는 ‘고스트 메신저’가 출시도 전부터 화제를 모으는 이유로는 ‘통속성’과 ‘소통’을 꼽았다. 오프닝 동영상을 접한 이용자들이 ‘고스트 메신저’를 친숙하게 느낀다는 것. 자신을 ‘애니메이션 2세대 마니아’라고 지칭한 조 대표는 ‘통속성’의 기반은 ‘일본 스타일’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고스트 메신저’는 일본스타일 맞아요. 저희 팬 분들은 아니라고 하시지만…일본스타일이 어때서요? 일본식의 작품은 통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측면이 있어요. 게다가 일본식이라고 해도 그 안에 한국적 스타일은 항상 녹아있는 거죠.”

팬들의 소리에 충분한 반응을 보여줄 수 있는 ‘소통’ 역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경우는 직접 제작사에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다시피 한데 비해 ‘고스트 메신저’는 그렇지 않다.

“게시판이든 메일이든 회사와 팬이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팬들 입장에서는 ‘팬질을 하면 반응이 온다’는 거죠. 이런 점이 ‘고스트 메신저’의 또 다른 강점이라고 생각해요.”

조 대표가 생각하는 ‘고스트 메신저’의 롤 모델은 ‘에반게리온’이다. 애니메이션뿐만 아니라 라이선싱 사업, 온라인게임 등 다양한 분야로의 진출도 필수적이라 생각하고 있다. 조 대표는 시리즈도 더욱 확장해 ‘고스트 메신저 인 뉴욕’이나 ‘고스트 메신저 인 파리’를 만드는 것은 어떻겠냐며 웃었다.

“‘에반게리온’은 한 가지 콘텐츠를 여러 가지로 우려먹는다고 해서 ‘사골게리온’이라는 별명이 있잖아요? 사실 이게 맞는 거예요. 그렇게 우려먹어도 될 정도로 콘텐츠가 강력하다는 소리죠. ‘고스트 메신저’ 역시 ‘사골 메신저’로 만들 생각입니다.”

한국 애니메이션 마니아들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도 내놨다. 잠재력은 충분한데 그것이 제대로 표출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조 대표의 생각. 조 대표는 이들의 입맛에 맞는 제대로 된 작품을 내놨을 때는 폭발적인 반응이 온다고 확신했다.

“사실 그들이 제대로 즐길 만한 콘텐츠가 없었죠. 그러다보니 만화, 애니메이션에 대한 역량이 아마추어 행사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어요. 거기서 더 발전한 작품이 나와야하는데 아직까지는 아닌 것 같아 안타깝죠. ‘고스트 메신저’를 이들에게 즐길만한 거리가 되게 한다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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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고스트 메신저’를 통해 이루고 싶은 향후 포부에 대해서도 밝혔다.

“일본 애니메이션 시장은 매우 성숙화, 세밀화 돼있죠. 국내에서도 ‘고스트 메신저’를 통해 다원화된 시장을 만드는 것이 목표예요. 그러다보면 자연적으로 글로벌 경쟁력이 생기고 해외 시장에도 당당히 우리가 원하는 콘텐츠를 제안할 수 있게 되겠죠. 게다가 일본 시장의 1/10만이라도 생겨도 저희 같은 회사 2, 3개는 먹고 살 수 있지 않을까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