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후 TV드라마는 어떻게 변할까?”

일반입력 :2010/03/01 16:25    수정: 2010/03/02 00:44

봉성창 기자

우리나라 드라마 마니아들의 극성스러운 태도는 이미 정평이 나 있다. 스토리를 마음대로 좌지우지 할 정도다. 방송사는 때로 이러한 여론에 밀려 결국 결말을 바꾸거나 극중 인물을 죽이거나 살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시청자 마음대로 드라마의 내용을 바꿀 수 있다면 어떨까. 이러한 재미있는 상상력이 현실화된 게임이 바로 퀸틱드림이 선보인 ‘헤비레인’이다.

플레이스테이션3 독점으로 출시된 ‘헤비레인’은 마치 카메라로 실제 인물을 촬영한 듯한 세밀하고 현실감 넘치는 그래픽과 독특한 게임방식으로 많은 기대를 모았다. 국내서는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코리아가 한글화를 거쳐 지난달 26일 정식 출시했다.

■모든 것이 내 맘대로 ‘나비효과가 따로 없네’

‘헤비레인’은 폭우가 내리는 어느 가을 날, 남자아이만을 골라 납치한 다음 빗물에 익사시키고 시체에 종이접기(오리가미)와 난을 놓아두는 독특한 취향의 연쇄살인범을 쫒는 4명의 분투를 그렸다. 킬러에게 아들을 납치당한 평범한 가장 에단 마스를 중심으로 젊은 여기자 메디슨 페이지, FBI 수사관 노먼 제이든, 사립탐정 스캇 쉘비가 등장한다.

게임 이용자는 이들 4명을 번갈아가며 조작해 ‘헤비레인’의 스토리를 진행해 나간다. 이러한 전반적인 과정을 한마디로 말하면 ‘나비효과’라고 할 수 있다. 이용자의 사소한 결정 하나가 게임 끝까지 영향을 미친다. 게다가 자유도가 상당히 높아 게임 이용자는 그야말로 원하는대로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다.

가령 게임 초반부에 아이를 돌보는 장면에서 게임 이용자는 시간에 맞춰 간식을 주고 숙제를 도와주며 잠을 재워야 한다. 물론 그렇게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나중에 아이가 숙제를 하지 않아서 선생님에게 혼났다며 시무룩해 하겠지만 어쨌든 게임은 계속 진행된다.

이러한 사소한 부분부터 시작해 후반부에서는 등장인물이 죽고 살거나 혹은 결말이 바뀌어버리기도 한다. 어디까지나 선택은 게임 이용자 본인에게 달렸다.

이러한 ‘헤비레인’의 전체 플레이타임은 여타 게임에 비교해 다소 짧은 편이다. 10~12시간 정도면 충분히 결말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한번 결말을 봤다고 해서 끝은 아니다. 재차 플레이를 통해 다른 선택을 하면 또 다른 결말을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헤비레인’이 가진 매력이다.

■현 시대 최고의 그래픽 선봬

‘헤비레인’의 인물 묘사는 그야말로 당대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눈, 피부, 머리카락 등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까지 그 어느 것 하나 자연스럽지 않은 것이 없다. 조금 멀리서 시야를 흐리고 보면 컴퓨터 그래픽인지 실제 촬영한 영상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다.

특히 각 장면이 넘어가며 이뤄지는 로딩(불러읽기) 장면에서 보여주는 각 인물들의 클로즈업된 얼굴은 그야말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이밖에도 전체적인 배경묘사나 모션캡처 기술을 통해 완성한 움직임도 실제 사람과 거의 흡사하다. 마치 배우가 직접 연기를 하는 느낌을 부여한다.

더욱이 ‘헤비레인’은 기술적인 부분으로만 평가할 수 없다.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 모든 장면을 세세하게 연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게임을 개발할 때 영화의 미술감독을 초빙한 느낌이다. 때문에 3D 그래픽임에도 불구하고 ‘헤비레인’은 시점 전환이 자유롭지 않다. 물론 원활한 플레이를 통해 몇 가지 시점을 제공하기는 하지만 어디까지 개발자가 연출한 장면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아마 ‘헤비레인’ 개발진은 비단 미술감독 뿐 아니라 액션감독도 초빙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게임 내 자주 등장하는 액션 씬이 그야말로 액션영화 이상의 박진감을 제공하기에 그렇다. 그렇다고 ‘헤비레인’은 액션 장르 게임이 결코 아니다. 어디까지나 타이밍에 맞게 화면에 표시되는 버튼을 눌러주기만 하면 된다. 그럼에도 ‘헤비레인’은 액션 게임 이상의 몰입감과 흥분을 제공하고 있다.

■‘인터렉티브 드라마’의 청사진 제시

‘헤비레인’은 오래간만에 선보이는 대작 어드벤처 장르 게임이다. 그러나 이를 굳이 게임이라고 하지 않아도 좋을 것으로 보인다. 게임이 아닌 드라마나 영화로 간주하고 ‘인터렉티브(Interactive)’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결코 어색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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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에서는 오래전부터 향후 미디어가 고도로 발전하면 영화, 게임, 방송, 음악 등의 경계가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을 내놨다. 게임이면서 드라마일 수 있고 음악이면서 게임일 수도 있다. 최근 아이폰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비트라이더’나 PSP용 게임 ‘디제이맥스’ 등이 좋은 예다. 단순히 음악을 감상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몸으로 직접 연주하면서 이용자는 더욱 높은 만족감을 얻게 된다.

‘헤비레인’ 역시 이러한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으로 보여진다. 단순히 드라마를 감상하는 것에서 넘어서 이를 이용자가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KBS 인기드라마 ‘추노’에서 주인공이 쫒던 노비를 죽이거나 혹은 놓아줄 수도 있다면, 혹은 언년이와 사랑에 빠지거나 혹은 팔아넘길수 있다면 어떨까. 단순히 게임의 완성도를 넘어 ‘인터렉티브 드라마’의 미래를 제시했다는 점이 바로 ‘헤비레인’이 주목받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