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의 상생전략을 해부한다

일반입력 :2010/02/25 10:41    수정: 2010/02/25 11:26

김태정 기자

KT의 지난해 매출을 살펴보면 유선전화와 같은 전통적인 통신서비스의 비중은 하락하고 무선데이터는 급성장했다.

국내 통신시장의 한계는 수년 전부터 예고돼 왔다. 유선전화 가입자 및 통화량 감소의 주 원인인 이동통신 시장 역시 포화상태에 도달한 지 오래다. 이에 따라 통신사들은 신규 수익원으로 인터넷전화와 IPTV 그리고 스마트폰 활성화에 따른 무선데이터 부분에서 돌파구를 찾는 것이다.

그렇지만 단순히 개별 서비스 상품의 매출 증대만으로는 장기적 관점에서의 기업 경쟁력 기반을 확보할 수 없다. 치열한 경쟁과 포화된 시장 상황을 극복하고 해외로 눈을 돌리기 위한 근본적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 그 대안 중 하나로 눈 여겨 봐야 할 것이 바로 상생전략이다.

KT가 최근 선보이고 있는 상생전략은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기본적 상생협력을 넘어섰다. 협력사와의 단편적 기술 협력을 넘어 동반자의 개념을 도입 중이다. 아직 공기관의 흔적이 남아 있는 KT로서는 이례적인 상생전략을 쏟아내는 모습. 또한 통신 시장의 최대 화두로 손 꼽히는 컨버전스(융합)를 통해 이종산업간 선보인 신개념 융합 서비스 역시 각 산업이 윈-윈(win-win)하는 협력 모델로 자리잡으려 한다.

지난해 6월 KT는 벤처기업협회와 협력사, 콘텐츠 개발사(CP) 등 관련 업계가 참석한 가운데 'IT산업 고도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상생방안'을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KT는 개방, 전략적 윈-윈, 상생문화 정착 등 3대 상생전략을 제시했다.

구체적인 추진과제로는 ▲개방형 BM사업 ▲MVNO 사업 ▲사업개발 협력강화 ▲중소상공인 지원사업 ▲중소/벤처기업 투자지원 강화 ▲글로벌시장 동반진출 ▲IT CEO 포럼 등 7개 항목이다.

KT는 이 같은 전략으로 상생을 실현해 가겠다고 다짐했다. 전략의 중심에는 이석채 KT 회장의 결연한 의지가 담겼다. 이번 발표 이전에도 KT는 상생전략을 몇 차례 발표한 바 있지만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이날 발표회에서 이 회장이 직접 언급했듯이 "절대 함께 비즈니스를 하지 말아야 할 기업의 전형이 KT라고 한다"는 말을 협력사들에게 들어왔을 정도다.

이 회장의 상생전략의 기저에는 혁신이 자리잡고 있다. 잘못된 기업문화가 먼저 바뀌어야 발전할 수 있다는 원칙에 충실하자는 뜻이다. 이 회장은 그 동안 KT가 협력사를 육성하고 같이 성장한 것이 아니라, 그 기업의 가치를 파괴하면서 존재해 왔다는 비판을 심각하게 받아 들였다. 그리고 서로의 발전을 위해 협력사와의 관계 쇄신에 적극 나섰다.

KT는 협력사의 안정적 구매 보장, 일물복수가 확대 적용, 유지보수 비용 현실화, 비용 상승분 합리적 보상 등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물론 이 같은 내용이 KT의 상생전략 전체를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KT 혼자서는 살 수 없고 건전한 상생문화 위에서 궁극적인 발전이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KT의 상생방안이 현재 KT의 위기타결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협력사에게 정당한 대가를 주지 않으면, 결국 KT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며 "건전한 상생문화를 통해 협력사가 KT에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등 큰 도움을 받게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KT의 상생전략은 SK텔레콤, LG텔레콤 등 다른 통신사와는 달리 건전한 기업문화 다지기 부터 시작된다. 3만1천여명의 임직원수와 국가 기간통신망을 갖추고 있는 거대 조직의 변화는 남들보다 더 힘들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소위 '기업문화 혁명'이 필요하다. KT 내부 비리 근절은 물론 신사업 발굴을 위해서도 협력업체와의 관계 개선이 시급한데, 기존의 철저한 '갑을 관계'를 청산하고 동반자 입장에서 손을 잡는 것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화 혁명은 향후 KT의 생존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했다.

KT는 지난 2002년 공기업에서 민영화됐지만 여전히 공기업의 잔재가 남아 있는 것으로 지적돼 왔다. 그러나 이석채 회장 부임 이후 과감한 외부임원 채용과 직급체계 변화, 상생협력 강화 등 전면적인 민영화 기로에 서있다. 이 회장은 올해 초 신년사를 통해 "매출 20조원 시대를 열겠다며, 이 목표 달성을 위해 기업문화의 변화와 혁신이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티맥스와 합작법인 설립… SW 경쟁력 강화, 이종산업 융합 선도

KT는 지난 연말 국내 소프트웨어 업체인 티맥스와 합작회사를 설립했다. 거대 통신사가 소프트웨어에 직접적인 관심을 기울이는 경우는 드물다. 이 합작회사 설립은 KT 그룹의 소프트웨어 역량을 내재화하고 신성장 동력을 개발하기 위한 것이다. 초기 자본금 50억원으로 IT융합을 촉진하는 핵심 소프트웨어의 R&D센터 역할을 맡게 될 합작사는 해외진출 공략을 최종 목표로 하고 있다.

이에 대해 KT 측은 "IT산업 육성을 통한 국가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해외 소프트웨어 업체보다는 국내 소프트웨어 업체와의 상생 협력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 합작회사 설립 역시 KT의 기업문화 혁명과 밀접하다. KT는 합작법인의 성공을 위해 기존 KT문화와는 전혀 다르게 차별적으로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벤처기업의 특성인 자율적, 창의적, 개방적 조직문화를 살릴 수 있도록 하고 스톡옵션 등 파격적인 성과중심의 보수체계를 적용할 방침이다. 초기 인력은 양사의 SW연구인력 위주로 구성하고 사업화 단계에서는 외부 우수인력을 영입할 계획이다.

올해 인사발령으로 KT 개인고객부문장으로 임명된 표현명 사장은 당시 합작법인 설립에 대해 "이번 합작모델은 KT가 추구하는 상생협력의 일환으로 국내 SW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이종산업 간의 IT융합을 선도해 IT산업의 성장에 기여할 것"이며 "향후 KT가 글로벌 시장 진출을 통해 진정한 글로벌 ICT컨버전스 리더로 성장하는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상생전략에 따른 다양한 사업모델 발굴과 제휴가 이어지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와의 상생협력 MOU 체결, 중소상공인용 IT솔루션 출시 등 협력사와의 협업을 통한 신규 사업 창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또 KT는 정기적으로 중소 IT기업들과 만나 상생협력 실현을 다짐하는 'IT CEO 포럼'을 개최하고 있다. 중소기업들과의 소통채널로 활용해 이들의 신선한 아이디어를 얻어 사업화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이석채 KT 회장은 "IT CEO 포럼은 IT분야 리더들이 함께 고민하고 만들어가는 상생번영의 구심점으로서, 아이디어 교환과 사업협력을 논의하는 열린 공간"이라며 "단발성 행사가 아니라 KT가 지향하는 상생경영을 위한 지속적인 채널로 삼아 국내 제일 가는 포럼으로 발전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산업간 융합…서로의 경쟁력 높여

이처럼 상생전략을 통해 기업문화 다지기와 중소기업 및 협력사와의 관계 개선에 노력하는 한편, KT는 이종산업간 융합을 통해 새로운 수익모델을 창출하는 산업간 상생으로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래의 생존을 위한 기초체력 비축이 KT 상생전략의 디딤돌이라면, 이종산업간 융합 서비스는 당장의 위기를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구체적인 전략이라 할 수 있다.

KT는 자사의 강점인 와이브로망을 활용해 텔레매틱스 시장에 진출했다. 지난해 9월 현대자동차와 '와이브로 기반의 차량용 서비스 제휴 협정 조인식'을 맺고 이르면 올 2012년부터 출시되는 고급 차량에 KT의 3W(WCDMA, 와이브로, 와이파이) 통신이 탑재된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앞으로 KT가 제공하게 될 텔레매틱스 서비스는 대용량 고속 데이터 통신에 유리한 와이브로와 넓은 커버리지가 장점인 WCDMA가 함께 제공된다. 차량 내에서는 노트북이나 스마트폰 등으로 와이브로와 WCDMA에 접속할 수 있게 된다. 즉 기존 텔레매틱스 서비스 외에도 차량 내 무선인터넷 제공, 내비게이션 지도 무선 업데이트, 고품질 멀티미디어 콘텐츠 서비스 등 IP 기반의 대용량 서비스가 제공되는 것이다.

석호익 KT 부회장은 "KT는 자동차산업뿐 아니라 다양한 산업 분야와의 컨버전스를 적극 추진함으로써 고객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고 KT의 비전인 '글로벌 컨버전스 리더'로 도약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텔레매틱스 사업은 비단 KT뿐 아니라 자동차 제조사에게도 도움이 된다. 순위 다툼이 치열한 국제 자동차 시장에서 최첨단 통신 기술이 접목된 차량은 소비자의 선택을 돕기에 충분한 경쟁력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신금융 결합서비스도 KT가 추진하는 이종산업간 상생전략의 핵심 요소다. 아직까지는 통신비 지원 등 걸음마 단계에 그치고 있지만 휴대폰 하나로 신용카드를 대체하고 다양한 은행업무를 해결하는 '모바일카드' 시대의 도래가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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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KT와 IBK기업은행과 통신금융 융합서비스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양사는 통신-금융 융합을 통한 상호 시너지 극대화를 위해 중장기 포괄적인 사업협력에 합의하고 ▲제휴상품의 공동 개발 및 공동 마케팅 ▲채널 제휴를 통한 시너지 창출 ▲지급결제의 새로운 비지니스모델 창출 등의 협력사업을 우선 추진하기로 했다.

이런 협력사업은 통신사나 은행 모두가 신시장을 개척하는 대표적 상생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