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서거]IT와 벤처를 사랑한 대통령 영면하다

일반입력 :2009/08/23 18:18

'벤처를 사랑한 IT대통령'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영면에 들어갔다.

23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국회 앞마당. 국장으로 치러진 김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는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2만4천여명이 참석해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영결식 이후 김 전 대통령의 운구행열이 서울 시내를 지나갈 때마다 곳곳에 모인 시민들은 김대중을 연호하며 그의 마지막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기도 했다.

이렇게 김 전 대통령을 떠나 보냈지만 우리 국민의 마음 속에는 민주주의를 대표하고 IMF 위기를 조기 극복한 인물로, 또한 IT강국의 기반을 마련한 대통령으로도 기억될 것이다.

■벤처육성, 인터넷 인프라 기반 마련...IT산업 기록적 성장

지난 1998년 대한민국 15대 대통령에 취임한 김 전 대통령의 주요 업적 중 하나는 IMF 위기의 타결책으로 '벤처 육성'을 통한 양적 성장을 실현했다. 집권 이후 벤처자금이 뿌려졌고, 국내 소프트웨어 업체 중 최초로 1천억 매출을 돌파한 기업도 등장했다.

IT벤처 붐을 타고 코스닥 시장도 크게 성장했다. 코스닥 시장은 시가총액은 이 시기 400% 가까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 IT벤처 활성화는 2003년 IMF 조기졸업에도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 하나의 중요한 업적은 오늘날 우리나라가 정보화 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디딤돌을 마련한 것이다.

그는 IMF 경제위기 상황에서 세계 최고수준의 통신 인프라 구축과 오늘날 90% 이상의 초고속인터넷보급률을 이끌어 냈다. 수치만 보면, 취임 직전 1만4천여 명에 불과하던 가입자 수는 임기말년에 무려 700배가 성장한 1천40만여명으로 급증했다.

이뿐 아니라 국내총생산(GDP) 중 IT가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 1997년 8.6%에서 임기 말인 지난 2002년 14.9%로 성장할 만큼 국내 IT산업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같은 기간 국내IT생산은 76조원에서 189조원으로 두 배 이상 성장했다.

이동통신 분야의 성과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김 전 대통령은 세계 최초의 CDMA폰 상용화로 본격화된 국내 이동통신 시대와 함께 했고, 이 CDMA기술로 이동통신 수출을 활성화 함으로써 1998년 18억달러에 불과했던 이동통신산업 수출액을 임기 마지막해인 2002년에 114억달러로 성장시키는 등 'IT강국의 초석을 닦은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디지털 정치' 기반을 닦다

특히 김 전 대통령은 인터넷을 통한 '디지털 정치'를 우리나라 정치사에 등장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1997년 대통령 선거운동 과정에서 PC통신에 모습을 드러내는 등 당시만 해도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취임 후에는 인터넷 강국 세우기에 팔을 걷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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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취임 직후 국민의정부는 세계 최고수준의 초고속인터넷 인프라 구축에 나섰고, 이때부터 각종 포털에 정치, 사회 문제를 논하는 카페와 토론방들이 생겨났다. 누리꾼들은 스스로 기사를 만들며 여론을 주도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차기 노무현 대통령 시절 디지털 정치의 초기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퇴임 후에도 인터넷을 통해 정권에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던 김 전 대통령은 노령으로 인한 병세를 이기지 못하고 지난 18일 향년 86세로 세상을 떠났다. IT로 위기를 극복하고 관련 산업과 문화에 큰 영향을 끼친 그를, 정치적인 평가를 떠나 많은 국민과 누리꾼들이 남다른 애도를 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