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욕의 20년' 한컴 스토리

일반입력 :2009/06/10 18:08    수정: 2009/06/11 11:14

황치규 기자

한글과컴퓨터은 '산전수전 공중전'의 역사다. 영광과 시련이 반복됐다.

국산 워드프로세서 SW '아래아한글'로 일약 스터덤에 올랐고 자금난을 견디지 못해 'SW제국' 마이크로소프트(MS)에 백기투항(?)할뻔한 상황도 겪었다. 벤처 거품에도 휩싸였고 경영권 분쟁까지 당해봤다. 주인도 여러번 바뀌었다. 돌아보면 안겪어본일이 별로 없는 한컴이다.

그래도 참 꿋꿋하게 버텨왔다. '거품붕괴'의 직격탄을 맞고 많은 벤처들이 무덤속에 들어갈때에도, '모럴 해저드'에 빠진 벤처 기업가들이 쇠고랑을 찰 때에도, 코스닥에 상장된 기업들이 우회 등록용 먹이감으로 전락할때도 한컴의 정체성은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위기는 많았으나 매번 파국으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한컴이 문을 연 것은 지난 90년이다. 창립자였던 이찬진 현 드림위즈 사장은 88년 서울대 기계공학과 4학년 재학중 워드프로세서 개발을 고민했고 89년 아래아한글을 세상에 나놨다. 그리고 이듬해 사무실을 차렸다. '국민기업' 한글과컴퓨터의 등장이었다.

한컴은 창업 다음해 곧바로 매출 10억원을 기록하며 돌풍을 예고했다. 93년 매출은 100억원에 달했다. 아래아한글 사용자는 10만명을 넘어섰다. 지금도 국내 SW업계에는 '100억원 클럽'이란 말이 돌아다닌다. SW로 100억벌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그러나 한컴은 10년도 훨씬전에 100억원 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원조가 아닐까 싶다.

거침없는 질주를 게속하던 한컴은 90년대 중반들어 비틀거린다. 퍼질대로 퍼진 SW불법복제는 연구개발(R&D)과 성장에 발목을 잡았고 'SW제국' 마이크로소프트(MS)도 무차별 폭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당시 MS는 워드과 엑셀로 대표되는 업무용 프로그램 제품군을 앞세워 한컴을 포위했다.

한컴도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맞불작전을 꺼내들었다. 사무용 SW 패키지 '한아름 1.0'을 내놨고 MS워드 대항마로 아래아한글 3.0도 전진배치했다. 로터스 1-2-3과 그래픽 프로그램 '한그림 1.1'로 구성된 '한글오피스 3.0'도 선보였다.

확장은 계속됐다. 한컴은 94년  윈도 워드프로세서 '지필묵'을 만든 창인시스템과 전략적 제휴를 맺은데 이어 95년에는 한국IBM과 OS/2용 소프트웨어 개발 협력에 들어갔다. 오피스SW 업체 나라소프트와 네트워크 업체 한마이크로시스템즈는 아예 집어삼켰다.

이같은 팽창 전략은 결과적으로 무리수였다. 몸집은 커졌지만 허기진 배를 채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대부분의 국내 사용자들은 돈주고 SW를 사지 않았다. 곧바로 자금난이 한컴을 덮쳤다. 한때 단기부채가 100억원까지 이르렀다는 후문이다.

당시는 IMF 한파가 한국을 강타하던 시기였다. 자금 시장은 꽁꽁 얼어붙었다. 은행들은 비틀거리는 한컴을 싸늘하게 외면했다. 하루하루가 풍전등화와 같던 시절이었다.

1998년 6월15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한컴과 MS의 공동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한컴은 MS로부터 2,000만달러를 투자받는 대신 '아래아한글' 개발을 포기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백기투항'이었다. 한컴과 아래아한글 신화는 그대로 역사속에 묻힐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여기서 얘기가 끝나버리면 드라마가 될 수 없다. 분위기는 단숨에 반전됐다. 지켜보던 국민들이들고 일어났다. '아래아한글을 포기할 수 없다'는 여론이 급속하게 번져갔다. 

생각은 행동으로 이어졌다. 한글학회 등 15개 사회단체는 한글지키기국민운동본부를 만들어 국민 모금에 나섰다. 당시 벤처기업협회장이자 벤처기업 매디슨을 경영하던 이민화씨도 '한컴 구하기'에 뛰어들었다. 언론들은 열심히 아래아한글을 살려야 한다는 여론을 실어날랐다.

'한컴 구하기'는 결실을 맺었다. 한컴은 매디슨과 국민주 발행으로부터 자금을 수혈받는 대신 MS에 했던 항복 선언을 철회했다. 창업맨인 이찬진 사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후 한컴은 높아진 지지 여론속에 1만원짜리 '아래아한글 8.15' 버전을 내놨다. 한컴은 8.15 버전에 대한 폭발적인 반응을 등에업고 제2의 도약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때맞춰 벤처 열풍이 불어닥쳤다. 코스닥에 돈이 천문학적인 돈이 몰리기 시작했다. 한컴은 벤처 열풍의 대표적인 수혜주였다. 한때 시가총액이 2조7,380억원에 이르렀던적도 있다. 자금이 풍부해진 한컴은 다시 한번 팽창 전략을 구사한다.

당시를 지배하던 키워드였던 예카 프로젝트 등 인터넷 사업에 돈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그러나 인터넷은 신기루였다. 거품이 얼마못가 터졌고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한컴은 다시 흔들리기 시작한다. '어쩌다가 한컴이 이렇게까지...'란 말이 광범위하게 유통됐다.

지배주주가 없는 상황에서 한컴은 급기야 경영권 분쟁에 휩싸인다. 머니 게임의 희생양이 될뻔한 상황에 내몰렸다. 이런 가운데 2003년 부동산개발회사 프라임그룹이 지분 29.37%를 사들이며 한컴을 인수한다. 벌써 5년도 전의 일이다.

프라임그룹 우산아래 들어간 한컴은 이후 비교적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오픈소스SW로 영토를 넓혔고 웹과 모바일 오피스 시장도 파고들었다. 올해들어서는 2009년 매출 535억원, 영업이익 150억원을 달성한다는 청사진도 제시했다. 

그러나 반전은 또 다시 찾아왔다. 2009년들어 프라임그룹은 유동성 문제 해결을 위해 한컴 지분 매각을 선언했고 우여곡절(?)끝에 그 지분은 TG삼보컴퓨터와 그 모회사인 셀런으로 넘어갔다.

TG삼보는 자사 하드웨어와 한컴 SW를 융합한 다양한 패키지 판매로 매출을 확대한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IT업계에서 확산되고 있는 하드웨어와 SW간 통합 물결에 가세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그러나 회의론도 적지 않다. "삼보가 애플이냐?"는 까칠한 시선도 있다.

섣부른 예측은 금물이다. 삼보 주장대로 시너지를 낼 수도 있고, 반대 상황도 연출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한컴이 다시 한번 운명을 가를 심판대 위에 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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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의 드라마같은 길을 걸어왔던 한글과컴퓨터. 위기와 반전이 적절하게 맞물린 한컴 스토리는 국내 벤처 기업사에 있어 매우 이례적이다.

스토리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새로운 페이지를 한장 더 넘겼을 뿐이다. 새 페이지는 도약을 위한 새로운 반전의 기회가 될까? 구경꾼들은 다시 한번 한컴 스토리에 빠져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