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의 니즈를 읽는 '모토로라 디자인'

일반입력 :2009/05/06 14:40    수정: 2009/05/06 17:10

이장혁 기자

제품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꿈은 초등학교때부터 쭉 가지고 있었어요. 어렸을때는 자동차 디자인을 많이 했었는데 지금은 휴대폰 디자인 기획을 하고 있네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제품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한 소년이 결국 모토로라에서도 본사 다음으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모토로라 서울 CXD(컨수머 익스피어리언스 디자인) 스튜디오 센터장이 되어 꿈을 이뤘다.

그 주인공은 황성걸 모토로라 서울 CXD 스튜디오 센터장.

황성걸 센터장은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과 및 美일리노이 공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모토로라 본사에서 8년 동안 근무한 후 지난 3년 전부터 모토로라 서울 CXD 센터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처음에는 디자인 기획팀에서 일을 했어요. 원래 PDA쪽과 통신기기쪽을 집중했었는데 기회가 되서 모토로라에 합류를 하게 됐죠.

황성걸 센터장은 모토로라에서만 11년째 근무 중이다. 처음 모토로라에 입사할 당시에는 디자이너 보다는 전기공학자들이 주도적으로 기업을 이끌고 있을 때였다고 한다.

모토로라가 초기에는 기업 대상의 전자회사라는 이미지가 강했어요. 그런데 불과 5~6년 만에 전자회사라는 이미지에서 소비자를 위한 회사라는 이미지로 탈바꿈할 수 있었죠. 그렇게 하기 위해서 브랜드 마케팅을 비롯해 각종 소비자 조사를 지속적으로 실시, 결국 소비자를 위한 디자인 중심 회사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모토로라 서울 CXD 스튜디오에서는 휴대폰 디자인만 하지 않는다.

인지공학, 선행설계, 혁신설계, 색채관리, 트렌드관리, 소비자 체험 등 10개의 팀이 일사분란하게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업무를 추진하고 있다.

모토로라 서울 CXD 스튜디오는 사실 본사 다음으로 쏟아내는 제품량이 많습니다. 특히 R&D(개발)팀이 아주 유능하고 또 한국의 경우에는 협력사들도 가까이에 있어 후가공이나 부품공급 등이 빠르기 때문에 순발력도 좋죠. 산업적인 생태가 뛰어납니다.

황성걸 센터장은 모토로라 입사 후 지금까지 약 70~80여개의 디자인 작업에 참여했다고 한다. 전략적으로 정해진 제품만 신경을 쓰던 미국 생활에 비해 한국에 와서는 거의 모든 제품에 신경을 다 쓰는 등 그의 손이 안 거쳐 간 제품이 없을 정도다.

지금까지 제품 디자인을 많이 했지만 가장 힘들었던 제품은 V70 모델이었어요. 1999년부터 2001년까지 디자인 팀장을 맡고 일을 진행했는데 V70 모델의 디자인 컨셉이 충돌했었어요. 그때가 사실 미국 문화에 한참 적응해 나갈 때인데 사람들이 '왜 작게 만드는 거지?' 라던가 '작은 게 좋은가?'라면서 실용적인 마인드에 빠져있는 회사가 저의 감성적인 디자인을 이해하게 힘들었었죠. 결국 V70 디자인이 성공적으로 평가를 받으면서 제 디자인을 지켜낼 수 있었죠.

■모토로라만의 '디자인 언어'를 만들다

이후 황 센터장은 모토로라 디자인 브랜드 정체성 운동에도 참여했다. 이때 모토로라만의 디자인 언어를 만들 수 있었다고 한다.

디자인 언어라는 것은 간단하게 말해서 소비자가 오감으로 체험하는 모든 요소, 즉 제품을 눈으로 보거나 만졌을 때 느낌이랄까 다양한 고유의 속성이 쌓여서 결국 소비자는 이런 느낌을 신뢰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모토로라 스럽다'라는 브랜드로 승화하게 되는 거죠.

모토로라의 디자인은 총 4가지 요소로 구성된다고 한다. 즉, 모토로라 디자인의 철칙이라고 할 수 있는데 ▲간결함 ▲진솔함 ▲놀라움 ▲풍요로움이 그것.

이 4가지 디자인 속성을 지키면서 모토로라 제품들이 탄생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런 '모토로라 스러운' 디자인 개념 때문에 매년 비슷한 제품이 나오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물론 그런 의견도 있겠죠. 하지만 중요한 것은 같은 속성을 계속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과 상황에 따라 속성을 재해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디자인에 대한 재해석을 매년 진행하면서 모토로라만의 디자인 언어가 담긴 제품을 출시해야 소비자들도 '모토로라 브랜드'에 대한 신뢰감이 더욱 쌓여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황성걸 센터장이 한국에 와서 디자인한 제품중 가장 기억에 나는 폰은 바로 '페블'이라고 한다. 주로 디자인의 테마를 잡는 건 유럽스타일이고 제품 전략은 미국스타일로 진행하는 편이라고 황 센터장은 설명했다.

모든 제품이 그렇지만 페블의 경우에도 디자인 스토리를 담았습니다. 비바람과 세월에 닳은 듯한 조약돌의 외관을 바탕으로 제품을 열었을 때 색다른 놀라움이 나오는 스토리를 표현했습니다. 한 가지 더 들자면 최근 한국에 출시된 V10의 경우에는 작년 유럽에서 히트한 모델을 한국 시장에 맞게 재해석한 제품입니다. 자랑은 아니지만 V10 모델은 글로벌 디자인팀에서도 모토로라의 디자인 언어를 한 단계 도약한 제품으로 평가받을 수 있었죠.

■좋은 디자인을 위해서는 '현장성'이 가미돼야...

좋은 디자인이란 어떤 것일까. 단순히 유행하는 기술이나 디자인을 따르기 보다는 실제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시장 상황에 따른 상식이 가장 중요하다고 황 센터장은 전했다.

디자인은 과학이 아닙니다. 현재 유행하는 디자인과 기술을 따라가기 보다는 현실적으로 시장이 원하는, 소비자가 원하는 디자인을 알 수 있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영화나 드라마에서 의사나 변호사 등 역할을 맡았다면 실제로 그들을 만나서 그들의 생각을 이해하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해요. 전 책상에서 디자인을 하는 것을 제일 싫어합니다. 직접 현장으로 뛰어들어서 스케치를 하던 그 시장의 요구를 듣던 현장 경험이 절대적으로 중요해요.

황 센터장은 좋은 디자인이란 바로 소비자의 니즈를 충족시키는데 필요한 기술과 디자인 조합이라고 설명했다. 터치폰이든 스마트폰이든 결국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만들기 위한 조합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 중요한 것은 감각이나 개성 있는 디자이너의 능력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 할 수 있는 사회적인 스킬이 더욱 중요하다고 황 센터장은 설명했다.

결국 디자인은 혼자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빨리 인식해야 합니다. 좋은 컨셉의 디자인이 그대로 좋은 제품으로 시장에 나오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사회적인 스킬을 배양하는 것이 좋은 디자이너의 요건이죠. 디자이너라고 해서 디자인만 하면 안 됩니다. 제품 마케팅이나 제품 개발도 어느 정도 섭렵할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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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모토로라는 T자형 인재상을 원하고 있다. 즉, 다양한 분야를 이해할 수 있는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 한 분야는 깊게 알 수 있는 인재라는 뜻이다.

모토로라 같은 글로벌 기업에서 일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어요. 특히 글로벌 기업은 여러 국적을 가진 인재들이 함께 어울리며 일을 하기 때문에 각각의 다양한 문화와 사회를 접할 수 있고 또 이런 것들이 글로벌 디자인 감각을 쌓는데 좋은 환경이 된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좋은 디자인을 할 수 있는 환경과 문화를 만들기 위해 지속적으로 다양한 역할을 담당하고 싶어요. 전정한 디자인 프로세스를 완성하는 것이 제 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