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부 KT-KTF 합병승인, '통신판도 바뀌나'

일반입력 :2009/03/18 20:35    수정: 2009/03/18 21:02

김효정 기자

방송통신위원회는 18일 KT와 KTF의 합병을 최종 승인했다. 이로써 KT는 합병에 따른 개혁이, 경쟁사들에게는 새롭게 짜여 질 통신시장 판도에 빠르게 적응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로 떠올랐다.

유선시장 1위 사업자인 KT와 무선시장 2위 사업자인 KTF의 합병은 이미 지난해 중순부터 통신업계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 유선전화의 하락과 공기업의 잔재 등으로 인해 수년째 매출의 정체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KT는 KTF와의 합병으로 융합시대에 대응하려 했고, 이석채 신임사장의 취임과 함께 급물살을 탔다.

경쟁사들의 움직임도 예사롭지 않았다. 지난 1월 KT의 합병발표와 동시에 SK텔레콤-SK브로드밴드가 합병반대 입장을 발표했고, LG통신계열사와 케이블TV진영 역시 통신시장 경쟁제한성을 들어 반대 의견을 밝혔다.

그러나 경쟁사들의 주장으로는 합병 자체를 막을 수는 없었다. 업계 전문가들은 경쟁사들의 주장은 KT합병에 최대한의 조건을 붙이려는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리고 그들의 주장은 일정 부분 받아들여 졌다.

방통위가 KT-KTF합병에 있어, 경쟁사들에게 KT의 필수설비 등 동등접근권을 보다 수월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은 인가조건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방통위는 전주와 관로를 필수설비로 판단했고, KT의 광케이블망은 필수설비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필수설비, 번호이동, 무선인터넷 접속체계 “개선하라”

방통위는 KT-KTF 합병이 경쟁제한성에 특별한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필수설비제공 제도 개선 ▲유선전화 번호이동절차 개선 ▲무선인터넷 접속체계 개선 등 3가지 인가조건을 부여했다.

첫째, 방통위는 KT에 전주 관로 등 설비제공 제도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 개선계획을 90일 이내에 제출토록했다. 현재 활성화되지 못한 전주 관로에 대한 설비제공 제도를 개선함에 따라 선후발 사업자들의 경쟁여견이 개선되고, 차세대 네트워크 투자확대를 도모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둘째, 시내전화 인터넷전화의 번호이동절차 개선계획을 60일 이내에 제출토록 했다. 이를 통해 인터넷전화가 활성화되고, 선후발 사업자의 공정경쟁을 보장하고 소비자 선택권 확대를 기대하고 있다.

셋째, 무선인터넷 접속체계의 합리적 개선 및 내외부 콘텐츠 사업자간 차별을 하지 않도록 했다. 이를 통해 무선인터넷 시장과 콘텐츠 시장을 활성화하고 소비자 편익이 제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러한 방통위의 인가조건에 따라 SK, LG, 케이블TV 등의 경쟁업체들도 그 동안 꼭꼭 감춰왔던 전략을 펼치기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비록 KT가 필수설비 보유에 대한 기득권이 이전에 비해 약해졌다고 하지만, 통합KT는 연매출 19조원, 자산규모 24조원의 통신공룡으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특히 국내 전체 통신가입자의 51%, 전체 매출액의 46%의 점유율을 가져갔다는 점은 경쟁사들이 긴장할 만 하다.

게다가 이번 인가조건으로, 오히려 KT는 전화위복의 발판도 마련했다. 필수설비에 대한 이용기준이 명확해지면서 설비임대 수익 기반도 탄탄해질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다만, 시내전화와 인터넷전화 번호이동절차 개선계획에 따라 KT의 주수익원이었던 유선전화 가입자 이탈이 급증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점은 단점이다.

■SK-LG진영, 대응전략 마련 중

경쟁사 역시 KT-KTF의 합병을 짐작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SK텔레콤은 유선자회사인 SK브로드밴드와의 합병을, LG텔레콤-LG데이콤-LG파워콤 역시 장기적으로 합병에 준하는 협업체계 마련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이미 SK텔레콤은 유선자회사인 SK브로드밴드와의 합병을 내부적으로 검토해 왔으며, 조만간 유통자회사인 'PS&마케팅컴퍼니' 설립을 통해 결합상품 판매에 적합한 유통체제를 준비 중이다.

SK측은 이번 인가조건에 따라, 필수설비에 대한 접근성이 개선되면서, 상대적으로 미비했던 초고속인터넷 인프라를 확대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유선시장 1위인 SK텔레콤의 역량을 십분 발휘할 계획이다.

LG진영 또한 이르면 올 하반기에 LG데이콤과 LG파워콤의 합병을 계획하고 있다. LG텔레콤과의 통합은 LG그룹의 '그룹사 자율 경영' 기조에 반하기 때문에 확신하기 힘들지만, 이번 통신시장의 지각변동에 따라 새로운 판을 짜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유무선 결합서비스’ 무한경쟁 시대 열려

특히 SK와 LG, 그리고 케이블TV 진영은 가입자망 투자 계획도 재점검해야 한다. 방통위가 KT합병 조건 중 전주와 관로만을 필수설비에 포함시키고, 광케이블(KT의 FTTH망)은 제외했기 때문이다.

방통위 신용섭 통신정책국장은 "방통위는 SK와 LG진영이 전주와 관로에 대한 접근성이 보장되면 광케이블 구축 여력이 있다고 판단해서 KT의 광케이블망을 필수설비에서 제외했다"고 말했다. 즉, 전주와 관로 등 직접 구축하기 힘든 필수설비에 대한 활용 여건을 개선해 준 만큼 케이블망은 사업자 스스로 투자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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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시내전화와 유선전화 부문에서는 경쟁사들도 기회를 잡게 됐다. 유선전화 번호이동제도가 정착되면, 1주일 가량 걸리던 번호이동이 대폭 줄어들면서 경쟁사에게 새로운 수익모델을 안겨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에 따라 KT가 90% 이상의 시장점유율을 가진 시내전화 시장에서 경쟁사들의 진입장벽은 낮아졌다.

통신업계의 한 관계자는 "KT합병에 따라 국내 통신시장의 판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이제 유무선 결합서비스의 무한경쟁의 시대가 열린 만큼, 통신요금 경쟁 및 유통망 장악 등 초반 경쟁력 확보가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