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P가 자사의 PDA 모델인 아이팩 112 클래식 핸드헬드의 후속버전인 '아이팩 212 엔터프라이즈 핸드헬드'를 선보였다.
HP의 아이팩 시리즈 가운데 최고급 모델이나 패키지 내부 구성은 예상 밖으로 단출하다. 설명서와 보증서, CD와 가죽 케이스, 본체, 싱크/충전 겸용 24핀 케이블, 24핀 충전 전용 커넥터, 그리고 전원 어댑터가 전부다.
PDA치곤 다소 부담스런 크기다. 여기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바로 액정의 해상도가 이전보다 더욱 월등해졌기 때문.
10.2cm(4인치)에 480×640의 VGA 해상도를 가진 액정은 평범한 240×320 수준의 QVGA 해상도와는 첫 인상부터 다르다.
그간 운영체제(OS)인 윈도 모바일은 물론, 성능을 담당하는 프로세서 또한 많은 업그레이드가 있었지만 정작 PDA의 액정은 대부분 240×320 해상도에 머물러 있었기에 화면에 담을 수 있는 정보의 양엔 여전히 한계가 따랐다.
하지만 이번 아이팩 212에서는 기존의 4배가 넘는 해상도를 통해 많은 양의 정보를 볼 수 있게 됐다. 그렇게 화면이 좋아진 대신 아이팩 212가 포기한 것은 크기와 무게다. 116.7×68.9×13.6(mm)에 115.8g이었던 하위 기종 아이팩 112와 비교하여 133.9×75.4×17.5(mm)에 190g으로 두껍고 무거워졌다.
전면에는 상단에 밝기 센서와 상태 LED, 그리고 하단에는 전통의 4버튼과 방향 키, 실행 키가 자리잡고 있다. 뒷면은 고무 느낌이 나는 SF코팅이 돼 있어 손으로 잡을 때 미끄러지지 않게 돼 있다. 뒷면에 있는 껍데기를 벗기면 아래와 같이 배터리가 나온다.
배터리는 2,200mAh로 상당히 용량이 큰 편이다. 더 커진 액정을 감당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데, 실제 배터리 지속 시간이 어느 정도인지는 뒤에서 다룰 것이다.
제품의 윗면에는 스타일러스 펜 수납구과 SD와 CF 메모리 슬롯이 있고 기본으로 더미 카드가 자리잡고 있는데 잘못하면 분실의 위험이 있으니 잘 챙겨둬야한다. 아랫 쪽으로는 내장 마이크가 있어 VoIP 서비스를 이용한 전화 통화나 간단한 보이스 레코더 용으로 활용 가능하다. 가운데에는 싱크/충전 겸용 24핀 단자, 그 오른쪽으로 역시 싱크/충전 겸용으로 쓰이는 미니 USB 단자, 이어폰 단자가 자리잡고 있다.
이처럼 아이팩 212에는 싱크/충전 겸용 단자가 두 개나 있어서 전용 24핀 케이블(충전시 어댑터 사용)과 미니 USB 연결 케이블(충전시 PC 사용) 가운데 편한 것을 골라 싱크/충전 용으로 쓸 수 있다. 이곳저곳 가지고 다니며 다른 환경에서 충전할 때 특히 편하다.
기본 액세서리로 제공되는 가죽케이스는 가장 기본적인 형태로 쓸 때마다 일일이 꺼내는 것이 불편한 사람은 별도의 제품을 구입해야 할 것이다. 스타일러스 펜은 1단 구조의 단순한 모양이며 전원 어댑터는 플러그가 탈착 가능한 형태다.
자, 이제 전원을 켜서 직접 사용해 보자.
OS로 윈도 모바일 6 클래식을 사용하는 아이팩 212의 머리 부분에 해당하는 CPU로는 하위 기종인 아이팩 112와 마찬가지로 마벨사의 PXA310 624MHz가 채택됐다.
이 프로세서는 가장 최신 제품 가운데 하나이므로 속도는 빠른 편이다. 메모리는 128MB의 DRAM과 256MB의 플래시 메모리로 된 ROM이 갖춰져 있어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다. 비즈니스 핸드헬드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확장성 또한 훌륭한데, SDIO도 지원하는 SD 메모리 뿐만 아니라 공간을 많이 차지한다는 이유로 휴대기기에서는 차츰 사라져가고 있는 CF 메모리까지 갖춘 충실함을 보여준다. 무선 통신으로는 802.11b/g 무선랜과 블루투스 2.0+EDR을 지원한다.
앞에서 말한 대로 아이팩 212의 액정은 480×640의 VGA 해상도를 자랑한다.
윈도 모바일 6.0이 그 전작인 5.0에 비해 좋아진 가장 대표적인 부분이 바로 업그레이드된 오피스 모바일인데, 아이팩 212의 넓어진 액정을 통해 오피스 모바일의 기능을 마음껏 즐겨볼 수 있다. 특히 OS 차원에서 가로로 길게 보는 랜드스케이프 모드로의 전환을 지원하기 때문에 그 편리성은 더욱 커진다.
아이팩 212에는 오피스 모바일 외에도 PDF 문서를 볼 수 있는 ClearVue 뷰어도 기본으로 갖추고 있어 문서 뷰어 용으로는 쓸모가 많다. 이는 웹 서핑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확실히 더 많은 정보가 표시되긴 하지만 문제는 웹 브라우저의 호환성이다.
같은 회사의 인터넷 익스플로러지만 PC용과는 호환 안 되는 부분이 너무나 많아서 텍스트 위주의 웹페이지 외에는 제대로 된 웹 서핑이 힘들다. 그래도 웹 서핑을 즐겨야 한다면 윈도 모바일 용 오페라 미니를 설치하여 쓰는 것이 아주 조금 더 낫다.
윈도 모바일의 차기 버전에서는 인터넷 익스플로러와는 별도로 아이폰이나 터치웹폰 등에서 지원하는 방식의 풀사이즈 웹브라우징 기능을 필수적으로 추가해 줘야 할 것이다.
VGA 해상도가 좋은 것은 이러한 업무에서 뿐만 아니라 동영상을 즐길 때도 위력을 발휘한다. CPU로 채용된 마벨의 PXA310은 동영상 가속 기능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특별히 고화질이 아닌 우리가 보는 웬만한 동영상은 별도의 인코딩 없이도 충분히 감상할 수 있다.
휴대기기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아이팩 212가 가진 배터리의 수명은 어떨까? 무선랜과 블루투스를 꺼놓은 상태로 SPB Benchmark에서 동영상 플레이에서 화면밝기를 최대로 했을 때 기준으로 4시간 50분의 연속 사용시간을 보여주는데, 일반적인 업무를 기준으로 하면 그럭저럭 쓸만한 수준이다.
지금까지는 주로 아이팩 212에 대한 칭찬만 늘어놨지만 문제점도 있다.
사용하면서 가장 먼저 알아차리게 되는 점은 바로 터치 부분. 다른 제품에 비해 부드럽게 터치하면 안 되고 다소 강한 힘으로 눌러야만 터치스크린이 반응하는 방식이라 익숙해 지는데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액정이 1600만색의 24비트 트루컬러가 아닌 6만5천색의 16비트 컬러만 지원하는 바람에 동영상이나 사진 감상시 원래의 색이 다 안 살아난다는 부분 또한 문제다.
마지막으로 높아진 해상도 탓인지 아이팩 112에 비해 시스템이 다소 둔하게 반응하는 것도 아쉽다.
아이팩 212는 고해상도의 넓은 화면에 넉넉한 성능과 확장성으로 ‘고성능 PDA란 이런 것이다’고 외치는 듯한 제품이다.
PDA라는 제품군이 차지하는 영역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현실에서 한국 HP의 오래된 노하우가 집적되어 있는 아이팩 212와의 만남은 PDA를 하루 종일 쥐고 살던 옛날을 다시 돌이켜 보게 하는 괜찮은 제품이었다.
하지만 문제 또한 바로 그 부분에서 시작된다. 하루가 멀다하고 다양한 디지털 휴대기기가 나오는 요즘, 성능은 다소 좋아졌지만 다른 부분에서는 옛날 그대로를 고수하는 PDA로는 더 이상 대중의 관심을 끌기는 힘들다.
특히 50만원 중후반대의 가격으로는 더더욱 무리다. 아이팩 시리즈가 살아남으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