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경제학 - 눈에 대한 관점

안윤호입력 :2006/03/14 10:40

안윤호(아마추어 커널해커)

눈의 확장

사람의 눈은 뇌의 연장이다. 뇌의 앞으로 길게 연장된 시신경은 일반적이 신경과는 다르다. 바로 뇌이다. 망막은 빛에 반응하는 물질을 포함하도록 변한 뇌의 신경세포나 마찬가지다. 해부학적으로 중추의 제 2번 신경이 시신경이다. 눈으로 들어온 빛은 뇌로 직행한다. 색깔과 빛은 곧바로 뇌로 입력된다. 사람의 뇌가 불필요한 정보를 없애버리도록 훈련된 것과 마찬가지로 시신경은 필요한 정보만을 추리도록 훈련된다. 눈은 이런 식으로 훈련되어 있다. 망막의 해상도는 별로 높지 않으며 화소수도 높지 않다. 이 사물을 보는 것은 눈동자를 움직이는 고속의 눈동자 근육이 스캐너처럼 관심이 있는 부위를 집중적으로 스캔해서 필요한 정보량을 늘리는 것이다. 머릿속에서는 주변을 한번에 다보고 있다는 환상이 생긴다. 필요한 부분은 무의식 중에 여러 번 스캔된다. 중요하지 않은 부분은 약하게 스캔된다.

머릿속에서는 진화에 진화를 거듭한 신경 처리망이 데이터를 거른다. 시각은 훈련되고 훈련될 수 있는 존재다. 후천적인 교육에 의해서 시각은 훈련된다. 사진이나 TV, 인터넷 같은 매체에 접하면서도 눈은 새롭게 훈련된다. 어떤 것을 많이 보면 볼수록 더 세련된 시각이 나오지만 사실은 이 시각 역시 훈련의 결과이다. 머리만 훈련되고 세뇌되는 것이 아니다. 눈도 세뇌된다(사실은 같은 이야기다.). 사람들의 세뇌와 교육은 눈부터 시작한다. 보는 방법과 수준은 훈련된다. 그러한 면에서 우리는 고도의 훈련과정을 거쳤다. 불필요한 것은 보지 않는다.

눈은 CF와 광고에 아무런 보호장치 없이 열려있다. 광고를 보는 눈은 광고의 이미지를 스캔한다. 광고를 만드는 사람들은 뇌의 생리학은 잘 몰라도 레이아웃이나 색상 액센트를 주는 포인트는 이미 잘 알고 있다. 눈은 쉽게 홀려서 사람들은 잘 만든 광고 뒤편의 무의식으로 쉽게 이끌려 들어간다.

어두운 듯한 이미지의 끝에 있는 밝은 포인트 , 다시 어두운 면과 이어지는 선들. 눈은 이런 점들의 액센트를 본다. 눈동자는 무의식 중에 마구 요동치며 스캔하면서 강력한 신호를 전달한다. 입체감이나 강한 색체감은 이러한 스캐닝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부가적인 정보다. 독자들이 책이나 인터넷을 보다가 옆모서리에 놓여있는 강한 이미지에 저절로 눈이 끌려가는 것을 신기하게 생각해 본적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다. 뇌의 설계와 작동은 그런 방식으로 이미 형성되어 있으며 또 훈련되어 있다. 시각으로 많은 정보를 전달하는 문화에서 눈은 철저하리만큼 훈련되어있다. 머리보다 먼저 눈이 훈련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일단 지금까지 독자들이 읽은 글자의 수나 거리의 모습, 풍경 이런 것들은 모두 눈의 훈련이다. 일단 머리로 들어가기 전에 눈이 시각적 정보를 거르도록 훈련되어 있는 것이다.

때로 물건의 겉모양 치중이나 외모중심의 경향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머리와 눈에게 있어서 이미 익숙하게 보아온 정보는 좋은 것이다. 이미 좋은 패턴으로 인식되어 수도 없이 보아온 패턴에 가까운 것은 친숙한 것이다. 사람들을 비난할 것이 못 된다. 본성적인 것과 문화적인 것이 섞여있는 것이다.

필자가 몇 번에 걸쳐 디지털 카메라의 이야기를 적은 것은 시각중심적 문화권에서의 가장 강력한 도구를 거론한 것이다. 컴퓨터가 정말 흔한 것이 되었다면 그 콘텐츠라고 할 수 있는 시각 정보의 획득은 디지털 카메라가 된 것이다. 이전의 카메라가 강력한 눈의 역할을 대신한 것처럼 디지털 카메라가 바로 이런 역할을 한다, 좋은 사진은 사람들의 눈과 의식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새로운 미디어 문법이 필요하게 되었다. 호기심이나 신기함 이상의 힘이 숨어있다. 좋은 사진을 자주 접하다 보면 따라 하게끔 되어있다. 자료를 전송하고 처리하고 저장하는 것이 컴퓨터라면 눈으로 입력되는 것을 일차적으로 책임지는 것은 결국 사진술과 사진기이다. 멀티미디어 때문에 시각적인 자료의 표현이 자유로워진 이상 개인의 가장 강력한 표현수단은 사진이라고 볼 수 있다. 때로 수백 줄의 글이 사진 한 장을 당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우리의 문화는 그만큼 시각적이다(사진이 한 장도 없는 블로그나 홈페이지는 상상하기 힘들다.).

다른 사진의 수준이 꾸준히 좋아지다 보면 자신이 찍은 사진과 비교하여 당연히 불만족스러운 점을 알게 된다. 표현력에서 평범한 스냅사진과 잘 찍은 사진은 분명히 차이가 있다. 점차 좋은 장비와 더 나은 장비와 기술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미 1900년대 초반부터 이런 사실은 명백했다. 문화 비평가들이 사람들의 관음증을 만족시키는 것이 사진이라고 하는 표현은 어떻게 보면 많이 우회한 표현이다. 좀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눈은 바로 뇌이고 눈은 광선과 윤곽선위를 언제나 스캐닝하고 있다. 기억은 기록을 지배한다는 말도 우회적이다. 시각정보는 무의식마저 지배한다. 눈이 바로 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눈은 계속 혹사 받으며 훈련되어 온 것이다. 사람의 눈이 간사하다는 말은 그만큼 분별력과 호소력이 크다는 것을 반증한다.

좋은 사진술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빛과 윤곽 그리고 색체에 대한 좋은 의미의 압축과 왜곡이다. 사람의 뇌를 유혹하여 시선을 잡아놓기 위한 기술이다. 때로 이런 목적은 쉽게 달성된다.

찰나의 거장들

개인적으로 필자가 좋아하는 사진작가들은 대부분 장비위주의 접근을 택하지 않았다.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이나 샘 아벨, 데이비드 앨런 하비같은 작가들은 평범한 레인지파인더 카메라(그냥 구닥다리 카메라라고 볼 수 있다)에 줌렌즈조차 사용하지 않고 많은 작품을 남겼다. 이들의 특징이라면 순간에 강한 이른바 <찰나의 거장>이라는 점이다. 대상을 빛이 감싸고 주위의 분위기가 많은 것을 설명하듯 어우러지는 순간 셔터를 눌렀다. 시간은 순간으로 압축되고 이때 만들어진 한 장의 사진은 많은 것을 설명한다. 이런 작업을 평범한 장비로 해결했다.

강한 호소력을 가지면서 오래 남는 조용한 사진들은 예전에 화가들이 추구했던 강력한 시각적 재구성 능력과 비슷하다. 강력한 시각적 해석력은 문화적 내용을 한 장의 사진으로 압축한다. 이들은 시각적인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옛날 화가들의 작품이나 인상주의의 그림들을 연구하기도 했다. 그리고는 선승(禪僧)들이 선문답을 던지듯 결정적인 순간에 결정적인 장소에서 셔터를 누르는 것이다(물론 최고의 장비를 대규모로 동원하는 작가들도 있다. 하루에 수십 통의 필름을 사용한 후 자신의 사진을 일일이 검토하는 것조차 부담스럽다고 하는 대가들도 있다.).

상징을 찾아내고 그것을 한 장의 사진으로 보여주는 탁월한 능력은 기다리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시간을 두고 관찰하다가 그 어떤 찰나가 오면 셔터를 누른다. 눈은 자동적으로 중요한 대상을 선정하지만 사진은 사진사의 개입이 필요하다. 하나의 슬로건이기도 하고 책의 제목이 되기도 했던 ‘결정적 순간(decisive moment)’ 이나 '이 순간에 머물라(stay this moment)'같은 말은 시간의 용법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한다. 작품을 만드는 것은 찰나이지만 많은 시간을 들여 자신의 해석능력을 향상하지 않으면 좋은 사진은 나오지 않는다. 실제로 이런 작가들이 구세대에 속하기는 하지만 거장들임에는 틀림없다. 때로는 이런 작가들은 자동노출계조차 좋아하지 않았다. 사람의 머리가 이미 훌륭한 노출계라는 사실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플래시를 사용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대상물을 놀라게 한다고 믿었다.

이들은 사진의 대상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끊임없이 연구했다. 최고의 위치는 근처의 도랑에 있을 지도 모르며 나뭇가지 사이일 수도 있고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에 있을지도 모른다. 결정적인 순간은 기다리지 않으면 언제 올지 알 수 없다. 시간과 장소에 관한 일종의 승부사나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사진 찍는 사람들은 이렇게 어려워 보이는 방법을 택하지 않는다. 대신 장비에 대한 관심으로 쉽게 빠져들곤 한다. 쉽게 짜릿하고 강렬한 인상적인 영상으로 빠져든다. 장비를 끊임없이 바꾸고 자동화된 장비를 사용하며 많은 장비를 들고 다닌다. 원하는 영상의 종류가 다르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장비를 만지다 보면 사진보다는 장난감(사진장비)을 더 좋아한다는 비판을 피할 길이 없다. 그러나 사진장비 메이커들을 먹여 살리는 것은 장난감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메이커들은 사람들의 요구에 응해서 점차 좋은 영상기기를 만들어 내겠지만 좋은 영상장비를 사용한다고 해서 최고의 작품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더 화질이 좋은 사진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사실이고 인상적인 영상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상업적인 사진에는 찰나의 거장들의 자세가 걸맞지 않을 수 있다. 무척 바쁠 뿐만 아니라 한정된 시간에 일단 보기 좋은 사진을 계속 생산해야 한다. 일반인들은 또 다르다. 원하는 장면을 향해 셔터를 누른 후 깨끗한 영상으로 보는 것으로 만족하기 때문이다. Point and shoot 이라는 단어가 이런 장비들에 해당된다. 대략적인 Point & shot으로도 좋은 사진을 만들어내는 일은 강력한 기술의 개입이 필요하다.

그래서 시장에는 미처 고를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사진장비들이 넘쳐난다. 비싼 장비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장비들은 일반인들이 입수할 수 있는 범위의 가격들이고 성능은 대부분 필요한 수준보다 높다. 이 장난감들에 대해 잠깐 빠져들기만 해도 시간은 너무나 잘 흘러간다. 예를 들어 어떤 시리즈의 렌즈는 높은 선예도를 자랑하며 어떤 카메라는 이런 느낌의 사진을 만들어주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알려져 있다. 사람들은 비싸 보이는 이런 장비를 사려고 돈을 모으기도 한다. 카메라의 바디나 잡다한 장비도 계속 사람들을 홀린다. 디카의 시대에 들어와서 장비의 개성과 성능이 더 강해졌기 때문에 사람들은 장비의 유혹에 쉽게 빠져들곤 한다. 기계를 고르면서 몇 년을 보내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기계의 눈이긴 하지만 제2의 눈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까다롭고 변덕스러운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장비를 많이 들고 있어도 원하는 수준의 사진은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은 찰나의 거장이 되기보다는 기변증(기계를 자꾸 바꾸는 병)에 쉽게 빠져든다. 메이커들이 광고하는 사진장비의 유혹도 무시하지 못할 요소이다. 디지털 카메라가 나온 후 세월이 꽤 되었기 때문에 성능은 이미 일정한 수준을 넘어섰다, 사람들이 제대로 찍기만 한다면 좋은 사진을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지만 사람들은 장비를 바꾸고 또 바꾼다. 돈과 시간은 점차 더 많이 필요하게 된다. 사진 동호회의 장터에는 정말 장비를 바꾸어야 하는 사람들과 기변증 환자들이 마구 섞여있다(분명히 어떤 괴리가 있다.).

최고의 카메라나 렌즈 같은 것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허해한다. 자신에게 맞는 장비를 찾는 과정이기도 한 기종변경은 업그레이드와 탐색을 섞은 과정이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분명히 좋은 사진인데 사람들은 때로 자신이 어떠한 영상을 원하는 지도 명확하게 정해보지 않은 채 계속 헤매곤 한다. 진지한 아마추어 수준인 필자도 예외가 아니다. 때로는 선택마저도 고르는 긴 시간을 포함하여야 된다. 그래서 좋은 사진의 댓가는 어떤 길을 택하건 비싸게 되기 쉽다. 돈과 시간이 모두 한계에 부딪히는 경우도 종종 있다 사람들이 이렇게 장비와 시각적 능력에 빠져드는 것은 충분한 이유가 있다. 눈이 원하는 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빛과 피사체 그리고 간단한 촬영장비이다(기록을 하지 않는다면 눈만 있으면 된다. 눈이야말로 궁극의 촬영장비이다.). 이미 갖고 있거나 주위에 존재하는 것들이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사람들은 나중에 촬영술에 대한 공부를 다시 하곤 한다. 아직은 독자들이 실감하지 않겠지만 사진 찍는 방법에 대한 책과 교양강좌의 수요는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하나의 트렌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 다음에는 심미안을 위한 미술 강좌가 포함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냥 무심히 찍는 사진과 약간의 해석이 들어간 사진의 호소력은 크게 다르기 때문이며 사람들은 보는 것 자체가 강력한 표현이라는 것을 더 절실하게 느낀다. 눈을 홀리는 기본적인 방법은 디지털 DNA를 갖는 새로운 카메라의 세계에서도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비록 사진의 양과 흐름은 엄청나게 늘어났지만.

시간의 왜곡

눈이 뇌의 직접적 연장이듯 디지털 카메라는 컴퓨터의 연장이다. 대부분의 영상들은 디지털의 세계로 속한다. 디지털 경제학에서 시간의 클럭은 점차 빨라져 간다. PC의 클럭은 무어의 법칙에 따라 빨라진다. 다른 디지털 기계도 마찬가지다. 기술은 빠른 심장박동이 되었고 사람들의 일상과 여행과 오락은 이 빠른 시간에 맞추어 압축된다. 기계들의 라이프 사이클은 무어의 법칙에 지배된다. 정신을 차리고 나면 다른 기종이 하나씩 나오는 세상이 되었다. 삶이 너무 빠르게 흐른다고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기술은 이런 느낌을 만들어낸다.

사람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기업과 소비자는 시간이라는 정해진 자산을 놓고 절박하게 다투고 있다. 소비자의 시간을 원하는 기업이 워낙 많고 시간을 훔치는 기술이 발달했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게 시간은 증발한다. 시간이 남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람들은 광고 속에 묻혀서 생각할 시간을 빼앗기며 TV를 보며 또 시간을 빼앗기고 인터넷에도 시간을 빼앗긴다. 어떻게 보면 잠자는 시간도 늦은 시간까지 PC와 함께 증발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볼 것이 워낙 많다 보니 혼자서 공상할 시간조차 없다. 그래서 얼마나 많은 시간이 더 필요한지는 아무도 모른다. 통계는 여러 가지 사실을 알려주지만 실감을 하기는 어렵다.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눈을 뜨고 있는 시간의 10분의 1정도를 쇼핑에 소모한다고 한다. 이것은 몇 년 전의 통계다. 사람들의 시간은 뭉텅뭉텅 잘려나간다. 자신의 시간이 어떻게 빼앗기는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기업의 전략과 사람들의 조급증이 어울리면 상승효과가 생긴다. 사람들은 빠른 시간에 많은 일을 해치우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런 조급함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이것이 바로 힘이다. 사람들의 조갑증과 호기심 그리고 이런 것을 조장하는 문화는 속도의 경제학을 만든다. 시간은 그 안에서 왜곡된다.

사람들은 다양한 멀티태스킹과 시분할 게임을 벌인다. 시간과 관심은 분산되고 공상할 시간조차 없으며 잠자는 시간마저 빼앗긴다. 만약 지적인 노동으로 환산한다면 상당한 수준의 노동에 해당할 것이 분명하다.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다. 과거에 사람들의 가사노동이 힘든 육체노동이었다면 요즘에는 가혹한 정신노동이다. 일하고 남는 시간은 쇼핑하고 빠르게 진행되는 오락을 보며 시간이 빠르게 지난다고 한탄한다. 물건을 하나 사는 것도 큰일이다. 선택 가능한 수 없이 많은 제품을 검색하고 선택하며 조갑증에 걸린다.

반드시 사야 하는 것도 아니지만 눈에 들어온 물건을 사지 않을 수도 없다. 눈은 바로 뇌이다. 앞서 말했듯이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뇌로 들어오는 것이다. 비슷한 과정이 하루에도 수십 번을 되풀이 되면서 사람들의 생물학적인 시간은 문화적인 시간과 어울려 증발한다. 이것저것 보다 보면 하루는 금방 지나간다. 눈은 혹사당한다. WYSWIG(What You See is What You Get)라는 컴퓨터 세계의 만트라는 절박한 현실이 되었다. 사실은 원하는 것마저도 빠른 시간 내에 해치워야 한다. 아이콘은 빨리 클릭되어야 한다.

시간은 문화적으로도 왜곡되지만 생물학적으로도 변형된다. 눈으로 들어온 빛은 생체 시계를 조절한다. 시간생물학(chronobiology)은 앞으로 밝혀질 분야가 더 많겠지만 알려진 것도 많다. 상당히 많은 양의 밝은 빛은 하루의 사이클을 변형시킨다. 예전에 아침형 인간이라는 단어가 유행했던 적이 있듯이 사람의 생체 사이클은 빛에 의해 리셋된다. 양계장에서 닭들의 알 낳기 주기를 단축하기 위해 강한 조명을 사용했던 것처럼 강한 빛과 시각적 자극은 사람들의 생체 시계에 영향을 미친다. 전등을 켜놓으면 닭들은 하루를 더 빠르게 인식한다. 생체에는 시계와 같은 것이 있다. 뇌에는 몇 천 개의 세포로 구성된 구조물이 이 시계를 제어한다.

24시간 주기를 조절하는 생체시계는 호르몬이나 체온, 주의력, 수면 같은 것들을 조절한다. 신체와 정신이 어떻게 조절될 것인가는 이 시계에 달려있다. 창의력이나 감정마저도 생체 시계에 따라 변한다. 생체시계 아주 오랜 옛날부터 만들어진 시계이다. 눈에 대해 강력한 자극을 줄 수 있는 전자장비나 조명이 나오기 훨씬 이전부터 작동했다. 눈으로 들어온 빛은 시신경 교차핵(SCN)에 영향을 미쳐 생체의 시계를 리셋한다. 시계의 원래 주기는 24시간보다 길지만 강한 빛을 받으면 그때마다 리셋된다.

예전에는 거의 일정한 주기였으나 요즘은 아니다. 모니터같이 밝은 빛을 오래 노려보고 있을 때 발생하는 빛의 축적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아직 잘 모른다. lcd나 모니터를 잘 깜박거리지도 않으면서 하루 종일 노려보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직업이다. 분명히 생체시계는 산란하는 닭과 같은 영향을 받겠지만 세월이 좀 더 지나서야 어떤 영향을 얼마만큼 받았는지 파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가장 중요한 자원인 시간은 가속되는 와중에 다시 한번 몸과 머리와 함께 왜곡된다. 왜곡의 왜곡이다. 계속 느끼는 점이지만 정말 복잡한 세상을 살고 있다. @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