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정년까지 버티기 어려운 요즘, 40대라면 한번쯤 고민한다. '새로운 인생을 개척할 길은 없을까'. 설사 회사에서 승승장구해도 때론 자기만의 사업을 구상하기도 한다.레인콤의 양덕준(53) 사장. 그는 잘나가는 대기업 임원이었다. 그것도 삼성전자 이사였다. 하지만 그의 자유분방함은 그를 삼성 울타리에 남겨두지 않았다.사무실 내 흡연금지에도 자기 방에서 줄담배를 피웠다. 결국 삼성을 뛰쳐나왔다. 그리고 99년 레인콤을 설립한 뒤 세계 정상급 MP3플레이어 제조업체로 일궈냈다. '튀어야 생존한다'. 그의 성공전략이다.파격과 엉뚱함을 즐긴다2002년 봄, 양덕준은 직원들의 머리를 유심히 살펴봤다. 젊은이라면 머리에 붉은 물 좀 들일 텐데, 염색한 사람을 한명도 찾을 수 없었다. "아, 이들이 스스로 눈치를 보는구나. 스스로 규제를 만들고 있구나."다음날 양덕준은 자기 머리를 초록색으로 물들였다. 50대로서 파격적인 변신이었다. 그러자 여직원들 사이에서 난리가 났다. 일주일이 지나서 한 여직원이 핑크빛 머리를 하고 나타났다. 그때부터 하나둘씩 직원들의 머리는 자유롭게 재탄생했다.직원들에겐 정해진 출퇴근 시간이 따로 없다. 양 사장부터 출근시간을 넘겨 9시30분이나 10시쯤 회사에 나타나기 일쑤다. 한 직원에게 출근시간을 물어봤더니 "대략 9시쯤"이란다. 자율성과 유연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대구에서 태어난 그의 어린시절은 엉뚱함으로 가득 찼다. 초등학교 시절의 꿈은 헬리콥터를 만드는 일이었다. 그래서 동네 곳곳을 돌아다니며 고철 모으기에 열중했다. 영남대 응용화학과를 졸업한 그는 삼성전자가 반도체 요원을 모집하자 연구직으로 입사했다. 하지만 연구분야가 성격에 맞지 않았다. 30대 들어 마케팅으로 방향을 틀었다. 적성에 맞았다. 그는 신이 나서 일했다. 그 결과 비메모리 반도체 부문 아시아 시장점유율 1위 달성을 이뤄냈다. 그 공로로 95년 비메모리 마케팅 수출담당 이사로 승진했다.튀는 모델로 대박 터뜨렸다언젠가 디지털에서 큰 변화가 올 것으로 예감한 그는 과감히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99년 레인콤을 차렸다. 처음에는 MP3플레이어 회사에 반도체칩 기술을 공급하는 일부터 했다. 하지만 제조회사들은 레인콤이 제공하는 기술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결국 제품 양산까지 책임지는 꼴이 됐다. "이럴 바엔 직접 만들어보자." 그는 도박을 결심했다. 사내 포커게임에서도 잘 지지 않던 승부사 기질이 나오는 순간이었다. 제품은 철저히 비대칭으로 만들었다. 대개 전자제품은 버튼 등이 좌우대칭이게 마련이다. 첫 제품이 출시되자 레인콤 홈페이지에는 "파격적"이란 소비자 글들이 올라왔다.그에게 가장 큰 도전은 2001년에 찾아왔다. 미국 최대 전자제품 양판점 베스트바이에 진출하는 것이었다. 베스트바이에 진출만 하면 미국시장의 반을 얻었다고 할 정도였다. 그해 6월, 베스트바이에서 뜻밖의 제안이 들어왔다. '9월 20일까지 플래시메모리타입 MP3플레이어 2만8000개를 만들어 500개 베스트바이 매장에 납품하라'. 구미를 확 끄는 제안이었지만 레인콤이 하기엔 벅찼다. 그는 "베스트바이에서 우리 능력을 시험해보려고 했다"고 회고했다."무조건 해낸다." 그의 결심이 섰다. 어차피 후발주자인 마당에 큰 모험을 해야 했다. 3개월 동안 모든 직원이 회사에서 먹고 자는 지옥훈련이 반복됐다. 그리고 '프리즘'이란 제품을 만들어 납품했다. 프리즘형은 당시 다른 모델 대부분이 사각형이었던 시장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베스트바이는 양덕준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앞으로 우리와 전략적 제휴관계를 맺자." 대박이 터지는 순간이었다.그는 "앞으로도 치밀한 계산이나 훈련에 의한 서비스보다 동물적인 감각과 육감으로 체질화된 서비스에 충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