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IT) 강국 한국 기업에 대한 산업정보는 중국 대만 등 후발국뿐 아니라 미국 등 선진국 기업까지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일부 기술자들은 외국기업 전직이나 돈을 바라고 기업 내부기밀에 해당하는 핵심기술을 빼내기도 해 산업스파이 행위에 대한 도덕적 불감증이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는 지적이다.기술성장·평생직장 퇴조 역작용한국은 지난 5년간 반도체·전자·이동통신 기술 등 정보통신산업을 정책적으로 육성하면서 이른바 IT 업종은 G7 국가 가운데서도 두각을 나타낼 정도가 됐다. IT 수출총액이 전체 수출액에서 차지 하는 비중도 30%에 육박할 정도로 성장했다.이에 따라 중국 대만 등 후발국은 물론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탐내는 기술이 적지 않게 늘었다. 산업스파이 사건은 그 역작용인 셈이다.IMF 사태 이후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지면서 30·40대 회사원과 중역들이 고용 불안감에 시달리는 것도 기술유출 원인이다. 퇴직할 때를 대비해 한 몫 챙기자는 의식이 팽배해지고 업무관련 기밀문서를 별도로 보관하는 풍조가 성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기술인력에 대한 기업들의 관리소홀도 문제다. 관리직이 핵심 기술인력보다 보수·승진·복지 등 여러가지 면에서 우대받는 경향이 기술직원 불만으로 잠복했다가 분사·고용승계 등 어수선한 틈에 산업스파이 형태로 표출된다는 것이다.외국인 공모 땐 유출기술 회수·처벌 곤란외국인이나 해외거주 교민과 공모해 해외로 기술을 빼돌린 경우 산업스파이를 적발했어도 처벌이 힘들다. 때문에 외국인이나 해외교민을 이용한 기술 빼돌리기 시도가 심심치 않게 이뤄지는 것으로 전해졌다.일단 해외로 기술이 빠져나가면 회수가 어렵다는 것도 문제다. 피해기업에는 돌이킬 수 없는 손해를 입힐 가능성이 높다.해외 기술유출 급증이처럼 해외기술 유출사건이 급증하고 있지만 관련통계가 일목요연하게 파악되지 않고 있어 문제다.산업스파이 사건을 가장 활발하게 다루고 있는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만 하더라도 지난해에 형사 1부 주관으로 6건, 18명을 적발해 14명을 구속기소하고 2명을 불구속, 2명을 수배했다. 올해엔 석 달도 채 안됐지만 4건이나 고소장을 접수했다.성남지청이 지난해 기소한 해외기술 유출사건 6건 가운데 중국·대만쪽 관련이 4건에 달해 60%를 넘는다.김종길 한국산업보안연구소장은 “2001년 이전엔 중국쪽으로 산업기술 유출이 거의 없었지만 2002년부터는 중국이 산업스파이 사건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며 “국내기업의 해외진출 64%가 중국인만큼 중국 현지에서 기술유출이 심각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지적했다.첨단산업 핵심기술이 타깃지난해 6월 현대LCD 직원이 경쟁사인 중국 트룰리사 한국지사인 비젼테크사에서 전직을 약속받고 컬러STN LCD 핵심제조기술·영업자료를 CD에 담아 유출하려다 적발됐다.또 국내 최고 기술기업 가운데 하나인 삼성SDI 직원도 승진누락에 불만을 품고 대만 CPT사에 플라즈마디스플레이패널(PDP) 다면취제조공법 핵심기술을 빼내다가 구속됐다.미생물발효장비 생산업체인 코바이오텍에서 전직한 이 모씨 등은 바이오씨엔에스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중국 동방생물공정유한회사와 합작을 시도하면서 세포 배양기·자동공정시스템 등 설계도면을 CD에 담아 누출하다가 구속되기도 했다. 지난해 12월엔 하이닉스반도체 메모리반도체연구소 연구원이 미국 사이프러스 사 전직을 약속받고 초집적 메모리반도체 제조공정 핵심기술을 빼냈다가 적발됐다. 기술유출 방지하려면해외 기술유출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지만 전문가들은 ▲공장 방문·공개지역을 제한하고 ▲기술이 고부가가치라는 점을 교육해야 산업스파이가 기승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또 ▲기술자 가치 인정 ▲경영기법·공장합리화 방법 등도 유출해서는 안되는 기술로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변종원 거상통상 사장은 “생각외로 기술수출 계약단계에서 기술유출이 쉽게 이뤄진다”고 말했다. 이런 사실을 잘 아는 변 사장은 기술계약 상담에서는 가급적으로 기술자를 기술도입자와의 협상 테이블에 앉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충고했다.또 공장이나 시설 방문을 가급적 제한하고 방문하더라도 극히 제한된 구역만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기술수출 계약을 맺더라도 계약범위의 기술만을 이전하는 것이 향후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는 방안이 된다.기술유출이 ‘순진한’ 기술자에게서 새나가기 때문에 ‘기술이 고부가가치를 가진 상품’이라는 교육도 필요하다. 도면 한 장의 가격이 수백만원이 되고 기술 데이터 한 장은 수십만원에 해당하는 가치를 가졌다는 것을 알면 기술 제공에 신중을 기할 것이라는 설명이다.특히 기술자의 가치를 인정하고 기술자를 잘 대우해야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변 사장은 “기술자가 갖고 있는 노하우의 가치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면 기술자 스스로 기술을 제공하는 것에 대해 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기술의 의미를 확대 해석해 제조기술뿐 아니라 경영기법, 공장 합리화, 관리나 재무적인 기법 등도 부가가치를 가진 기술로 인식하고 이러한 기술도 유출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기술유출에 대한 처벌 강화도 필수다. 남상봉 수원지방검 찰청 성남지청 검사는 “외국인이나 해외거주 동포와 공모해 해외로 기술을 빼돌린 경우 회수가 어려워 피해기업이 돌이킬 수 없는 손해를 본다”며 “해외 공범을 처벌할 수 있는 체계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