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맛으로 찍는 디지털 카메라, 디지털 SLR

일반입력 :2002/10/12 00:00

최의종

처음으로 디지털 카메라를 손에 쥐었을 때가 생각난다. 돌덩이 같이 생긴 올림푸스 제품이었는데, 배터리는 삼십 분을 버티지 못했고 내장 메모리는 고작 2MB. 화질은 ‘눈코입’이 겨우 구분되는 정도였다. 그러던 것이 오늘에 와서는 크기는 주먹만하고 성능은 수십 배 나아진 것이다(코털까지 생생하게!).

그런데 이 작고 귀여운 제품들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 디지털 카메라(이하 디카)라고 하면 다들 어디 주머니에 들어가는 컴팩트한 디카를 떠올리는 것 같다. 필자 역시 갖고 다니면서 이것저것 찍는 즐거움은 소형 카메라만이 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디지털 SLR(Single Lens Reflex)을 사용한 지 1년 6개월. 이제 그런 생각은 사라진 지 오래다. 자, 그럼 디지털 SLR의 어디가 그렇게 좋은지 알아보기로 하자.

SLR은 무엇이 다른가

SLR은 렌즈 하나로 구도도 잡고 사진도 찍는다는 의미로, 보통은 렌즈를 교환할 수 있는 카메라를 뜻한다. 가정용 카메라를 보면 렌즈 옆에 조그만 유리창이 있어서 들여다보고 구도잡고 사진을 찍지 않는가. 렌즈를 바꿀 때 이 유리창도 같이 바꾸지 않으면 예상한 것과는 전혀 다른 사진이 찍힐 것이다.

반면 SLR은 하나의 렌즈에서 들어온 빛을 프리즘이나 거울로 반사시켜서 두 군데 비춰주기 때문에 정확히 어떤 사진이 찍힐지 알 수 있고, 렌즈를 교체해도 문제가 없다. 때문에 카메라 본체 외에 렌즈를 교체해서 성능을 높이거나 전혀 다른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것이다. 이외에도 몇 가지 커다란 차이점이 있는데, 필자가 보유하고 있는 캐논 디지털 SLR, D30 모델을 예로 들어 설명하겠다.

사양표를 보면 컴팩트 디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학줌 몇 배’ 등의 렌즈 사양이 없다. 어떤 렌즈를 끼우냐에 따라 전혀 다른 성능을 보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19~35mm 3.5~4.5 광각 줌렌즈와 50mm 1.4 단렌즈, 70~200mm 2.8L 렌즈를 쓰는데 단렌즈는 줌이 없지만 가벼우며, 줌렌즈는 무겁고 대체로 화질이 떨어진다. 이렇게 렌즈마다 특성이 다르므로 적절한 렌즈를 사용하여 원하는 사진을 연출할 수 있다. 일반적인 컴팩트 디카가 축소광학계를 채용, 심도의 표현이나 초광각 초망원에 한계를 드러내는 데 반해 디지털 SLR 디카는 기존의 35mm 렌즈 표현력을 그대로 갖추고 있다.

또한 일반 필름 카메라의 필름에 해당하는 CCD/CMOS가 컴팩트 디카의 9배 이상 크기 때문에 ISO 600~800(컴팩트 디카는 ISO 100이 일반적이며 ISO 800의 경우엔 이보다 셔터 속도가 8배 빠르다) 상당의 셔터 속도를 끊으면서도 동급의 화질을 얻을 수 있다. 셔터 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흔들림 없이 칼 같은 선명함을 얻을 수 있으며 카 레이싱 등의 속도감 있는 장면이나 일반적인 디카로는 촬영할 수 없는 악조건에서도 훌륭한 사진을 얻을 수 있게 된다.

게다가 준프로, 프로를 대상으로 하는 카메라이기 때문에 촬영 우선(shooting priority mode)으로 작동한다. 갑자기 촬영 대상이 나타나거나 순간을 포착하고 싶을 때, 컴팩트 디카처럼 전원을 넣고 기다리거나 촬영 스위치를 돌리는 일이 없다. 말 그대로 누르면 찍히는 것이다.

SLR의 휴대성

아무리 좋은 카메라라도 찍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불편하고 무거워서 집에 두고 다닌다면 ‘그림의 떡’이 아니겠는가! 가뜩이나 비싼 카메라 매일 같이 들고 다녀야 본전을 뽑는데 말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디지털 SLR의 크기는 컴팩트 디카처럼 만만치 않다. 카메라에 렌즈 몇 개, 각종 장비를 모두 들고 다닐 수는 없을 것이다. 자신 있는 장비만 갖고 다니는 지혜가 필요한데, 필자의 경우엔 50mm 단렌즈가 그것이다. 작고 가벼워 평상시엔 이 렌즈 하나만 붙여 메고 다닌다. 나머지는 필요할 때만 가방에 넣어 다니면 기동성 좋고 사진 잘 나오고 좋다.

참고로 설정에서 Auto Power Down을 1분으로 설정해 놓으면 스위치를 항상 ON에 놓아도 셔터를 반만 누르는 것으로 언제든 촬영 가능 상태가 유지된다는 걸 알아두자. 이렇게 하면 긴급 상황에서도 피사체를 놓치지 않고 촬영에 임할 수 있으며 배터리도 크게 소모되지 않는다.

각자 취향이 다르겠지만 결국 인물을 촬영하기 마련이다. 가족, 친구, 동네사람들… 사람사는 세상이다 보니 찍을 일도 자연히 많아지는 것이다. 필자의 경우 회사 주변의 밥집에 들러 주인집 할머니나 책방 꼬마 사진을 찍곤 했는데 커다랗게 출력해서 선물했더니 갈 때마다 먹을 것을 내주시곤 했다(책방에선 연체료 한 번 낸 적이 없다!).

몇 가지 촬영 기법을 응용하면 일반 사진과는 분위기가 전혀 다르기 때문에 사진의 주인공들이 무척이나 좋아한다. 예를 들어 조리개 2.8 이하, 35mm 이상 렌즈로 대상 인물에 근접해 찍으면 배경이 아름답게 흐려지는 효과(Background blur)가 생기는데, 여기에 빛만 잘 처리하면 작품 사진이나 다름없다. 반면 컴팩트 디카는 같은 조건에서도 산만한 배경이 그대로 촬영된다. 비용 문제로 렌즈의 상이 맺히는 부분이 소형화돼 있기때문이다. 그렇다고 기술에만 의존해 천편일률적인 사진을 찍어서는 안 되고 배경 선택과 표정 포착에 주의해 좋은 사진을 선물하도록 하자.

사진으로 만든 공간

직접 찍은 사진들로 책상이나 사무실을 장식하면 어떨까. 물론 효과 만점이다. 필자는 사무실 사방팔방에 사진으로 도배를 해놓았다. 회사 동료는 물론 손님들도 재미있어 하고 업무에 지칠 때마다 한 번씩 둘러보면 힘도 나서 여간 좋은 게 아니다. 특히 대형 인화로 시원시원하게 뽑아서 눈길이 자주 가는 곳에 걸어 놓으면 어느 프로가 찍은 사진 못지않다. 직접 찍은 거니까!

지하철 역에서 출구로 나가면 근방 주요 지도가 있다. 기억력 좋은 사람은 한 번 보고 가고자 하는 길을 찾을 수 있겠지만 필자의 경우는 가다가 길을 잊어 낭패를 보곤 한다. 이 때 디카를 훌륭한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 일단 지도를 촬영한 다음 LCD로 확대해서 상하좌우로 지도를 움직여가며 길을 따라가다 보면 길을 잃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 외에도 받아 적기가 힘든 전화번호나 광고, 간단히 문서를 복사해야 할 때 등 요긴할 때가 많다.

디카로 촬영한 사진이 4만 장이 넘어가면서 가장 놀라운 건 어떤 사진을 보든지 사진 속 그날이 선명하게 떠오른다는 것이다. 특히 SLR 카메라의 경우엔 셔터를 누르는 순간 거울이 들어올려지면서 ‘철컥’하는데, 이 느낌이 사진을 머릿속에 각인시켜 주지 않나 생각한다. 이 믿음직한 느낌, 손맛을 느껴본 사람에게는 카메라가 단순한 재미만을 주진 않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