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모니터 위에는 뿔테 안경에 크리스마스 트리에 붙는 장식물같은 넥타이를 매고 있는 배불뚝이 인형이 있다. 그 인형 옆에는 양끝이 뾰족한 머리를 한 보스 인형이 있고, 발을 앞으로 내민 배불뚝이 개 인형이 있다. 이만하면 눈치들 챘으리라. 만화 딜버트의 등장 인물들이다. 수 년전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사무실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현실과 너무나 비슷하게 풍자해 깊은 감명을 받은 적이 있다. 만화같이 말도 안되는 어리석은 일들이 우리 직장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에 공감과 안타까움, 그리고 해학을 동시에 느꼈었다. 이 만화에 나온 내용을 바탕으로 '딜버트의 법칙'을 비롯한 몇 권의 책이 나왔는데, 첫번째로 읽었던 '딜버트의 법칙'의 앞부분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회사에서 고정된 책상을 없애고 움직이는 사무실을 만들겠다고 모든 직원들에게 노트북을 지급했다고 한다. 하지만 노트북의 도난이 잦자 노트북을 책상에 고정해 버렸다는 것이다. 그 당시 책을 읽었을 때는 노트북의 효용성을 무시한 회사의 결정이라며 웃고 지나간 기억이 난다. 하지만 곱씹어보면 그 회사는 없앴던 고정 책상을 되살려낸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무엇 때문에 노트북을 책상에 붙여야 했을까?1994년 미국의 한 회사는 미래를 준비한다는 차원에서 사무실을 재편했다. 그러나 5년 후인 1999년에 다시 사무실을 원래대로 해놓았다고 발표했다. 이 회사는 고정 책상 대신 노트북, 휴대폰, 인터넷을 제공함으로써 먼저 오는 사람이 원하는 곳을 선택하게 하는 소위 '핫 데스킹(hot desking)'을 실시했던 것이다. 국내에서도 외국계 대기업을 중심으로 '핫 데스킹'이 실시된 적이 있었다. 영업 관련 직원들은 노트북과 핸드폰으로 모든 업무를 처리할 수 있을 것이며, 책상은 필요 인원의 절반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결과는 불을 보듯 했다.1980년 '제3의 물결'의 저자 앨빈 토플러는 미래에는 도시의 사무실은 텅 비고 모두들 재택 근무를 할 것이라 예견했다. 복잡한 교통수단을 이용해 출근할 필요없이 조용한 집에서 모든 편의시설을 이용하며, 인터넷으로 회사의 컴퓨터에서 일을 하며 쇼핑을 하거나 뉴스를 검색한다는 생각은 얼핏 상상만 해도 좋다. 하지만 재택 근무에 관한 보고서에 따르면, 재택 근무자의 25%가 처음 5개월 이내에, 50%가 1년 이내에 재택 근무를 그만두었다고 한다. 원인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을 몇 가지 정보만 가지고 작업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것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재택 근무의 기본 생각은 회사 앞에서 작업하는 정보를 집에서도 똑같이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집에서 하는 것과 차이가 없다는 가정이 깔려 있다. 그러나 현장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얼굴을 맞대고 일하는 것보다 집에서 일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워지는 것이다. 사무실에서 주위 사람들과 한마디도 하지 않고 듣지 않고 일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또 집에서 일을 하려면 네트워크와 컴퓨터를 사용해야 하는데 컴퓨터의 이유없는 고장, 네트워크 라인 불통, 하드 디스크 고장 등 네트워크 관련 장비들의 관리 및 수리에 대한 비용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하루종일 하드 디스크를 지우고 소프트웨어를 다시 설치하는 작업을 상상해 보라. 사무실이었다면 옆 사람의 도움을 받거나 관리팀에게 맡겨 여분의 하드나 컴퓨터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공동으로 분담할 수 있는 일을 개인이 해야 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들이다.컴퓨터와 네트워크만 있으면 한 사람이 모든 일을 다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통적인 분업과 회사 시스템을 무시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다시 '핫 데스킹'으로 돌아가 보자. 고정된 자리가 없어진 후 직원들은 개인 비품을 책상에 두지 못해서 불안해 했다고 한다. 또한 사무실은 우발적인 학습 효과가 있어서 직접적인 대화보다는 주위 사람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원했던 것을 우연히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개인마다 다른 작업 패턴을 무시하는 것도 큰 이유가 됐다. 자료를 가득 쌓아놓고 제안서 작업을 하는 사람에게 매일 아침 사물함에서 자료를 가져오게 하는 것도 못할 짓이다. 결국 자리는 영토 분쟁이 일어나고, 높은 직급을 가진 사람들은 직급을 내세워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 했고 결국 말단들만 불편함을 겪었다고 한다.그러면 '핫 데스킹'의 문제점을 파악한 회사들은 어떻게 했을까? 파티션으로 나뉘어진 획일적인 사무실을 길, 공원, 광장, 호텔 등 도시와 같은 기능을 하는 장소를 포함시켜서 설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사무실을 새로 설계하는 것을 회사를 새로 세우는 것과 같다고 보고, 좀더 동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든 것이다. 이러한 설계의 바탕에는 사무실의 구성원들을 단순한 정보 제공자가 아니라 서로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소스로서 본다는 의식이 깔려있는 것이다. 사람들을 묶고 있는 연결고리를 함부로 끊는 것은 더 강하게 서로를 묶는 것만큼 위험하다고 할 수 있겠다.사무실 임대료가 비싼 한국에서는 꿈꿀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하지 말자. 사무실의 배치와 구조는 곧 회사 시스템의 반영이다. 회사가 이사하면 A4 한 장에 자리 배치를 그려놓고 몇 사람이서 주먹구구식으로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사무실의 배치는 공장 기계를 배치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중요성을 가진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일 년에 서너 번도 넘게 짐을 싸고 있다면 할 말은 없다. 남 이야기가 아니니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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