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특수에 정책 수혜까지…에너지 시장 새해도 뜨겁다

[2026 전망 ⑯에너지] 전력 수요 폭증에 전력기기 수요↑…에너지믹스 정책 본격화

디지털경제입력 :2025/12/30 12:04    수정: 2025/12/30 12:27

2025년 한국 ICT 산업에 '성장 둔화'와 '기술 대격변'이 공존한 해였다. 시장 침체 속에서도 AI·에너지·로봇·반도체 등 미래 산업은 위기 속 새 기회를 만들었고, 플랫폼·소프트웨어·모빌리티·유통·금융 등은 비즈니스 모델의 전환을 꾀했다. 16개 분야별 올해 성과와 과제를 정리하고, AI 대전환으로 병오년(丙午年) 더 힘차게 도약할 우리 ICT 산업의 미래를 전망한다. [편집자주]

새해는 인공지능(AI) 인프라 확장이 전력 수요를 자극하고, 그 수요가 다시 재생에너지·전력망을 동시에 흔드는 해가 될 가능성이 크다. 전력기기·전선 등 하드웨어(심장)와 AI·가상발전소(VPP) 등 소프트웨어(두뇌)가 함께 커지는 '에너지 인프라 특수' 현실화는 결국 정책 실행 속도와 계통 병목 해소 능력이 좌우할 전망이다.

문제는 전력이 생산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이다. AI 데이터센터와 첨단 제조시설은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요구하지만, 전기를 보내는 송전망과 변전 설비가 따라가지 못하면 수요가 투자로 곧바로 연결되기 어렵다. 결국 AI발 전력 수요를 흡수하려면 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HVDC·변압기·케이블 등 ‘그리드(전력망)’ 투자가 병행돼야 한다는 의미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이재명 정부는 에너지 믹스를 유지하되 재생에너지를 기반으로 체계를 전환하겠다는 기조를 분명히 하고 있다. 실제로 정부는 2035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53~61%로 확정했으며, 배출권거래제(ETS) 할당계획도 함께 의결했다. 이 같은 정책 조합은 재생에너지 확대 의지를 보여주는 신호로 해석된다.

빅테크 올라탄 전력기기·전선, 새해 더 좋다

정책 기조가 재생에너지 ‘확대’에 방점이 찍힐수록, 시장에서는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전력 인프라 투자(계통 보강·장거리 송전·변전 설비)가 동시에 커질 수밖에 없다. 이 지점에서 전력기기·전선 업종은 AI 수요와 정책 드라이브가 겹치는 대표 수혜 섹터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에너지 인프라 투자에서 가장 직접적인 수혜로 꼽히는 축은 초고압 직류송전(HVDC)·초고압 변압기·케이블 등 전력망 핵심 장비다.

정부와 한전은 재생에너지 밀집 지역(서남권 등)에서 생산된 전력을 수도권으로 안정적으로 보내기 위한 ‘에너지 고속도로’ 성격의 계통 확충을 추진하고 있으며, HVDC 기술 국산화와 대형 프로젝트 속도전이 동시에 거론된다.

초고압 변압기 (사진=효성중공업)

업계에서는 AI 데이터센터 확산과 북미·유럽 전력망 투자 확대가 맞물리면서 변압기·개폐기 등 중전기기 ‘슈퍼사이클’이 새해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국내 주요 전력기기 업체들의 수주잔고는 큰 폭으로 늘고 있다. HD현대일렉트릭·효성중공업·LS일렉트릭·일진전기 등 국내 주요 전력기기 4사 올해 3분기 말 기준 수주잔고는 합산 30조원을 넘어섰다.

국내에서는 중장기적으로 에너지고속도로 사업 수혜 기대감도 있다. 정부는 2030년 에너지고속도로를 적기에 구축하기 위해 HVDC 핵심 기자재 설계·제작·시험 역량을 갖춘 중전기기 제작업체 중심 산·학·연 협력체계 구성하고 내후년까지 핵심 기자재 기술개발을 목표로 한다. 

전력기기 업계 관계자는 "올해보다 새해 수주 실적이 더 좋을 것으로 기대된다"며 "미국에 데이터센터가 가장 많지만, 최근에는 빅테크 기업들이 아세안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어 시장 확대가 예상되고 있다"고 말했다.

재생에너지 르네상스 다시 온다....전기료 인상은 숙제

정부가 탄소중립 필요성을 재차 강조하면서 국내에서는 태양광을 비롯한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수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새해 재생에너지 관련 예산을 올해보다 42% 늘린 1조 2천703억원으로 편성하며 정책 드라이브를 분명히 했다.

이번에는 태양광뿐 아니라 풍력, 히트펌프 등 전기화 분야까지 지원 범위가 넓어졌다는 점에서 시장의 기대가 더 크다. 정부는 태양광 이격거리 규제를 개선하고 영농형 태양광 특별법 제정 등을 통해 설치 여건을 완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기후에너지부는 도시가스 난방의 전기화를 목표로 2035년까지 히트펌프 350만대 보급 계획을 발표했으며, 이에 따라 새해부터 관련 보조금이 본격적으로 집행될 전망이다.

신안우이 해상풍력 조감도 (사진=한화오션)

풍력 분야에서도 공급 확대 신호가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대규모 육상풍력 경쟁입찰을 공고하며 시장 활성화에 힘을 싣고 있으며, 올 하반기 공고된 230MW 규모 육상풍력 입찰 결과는 새해 초에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인허가 문제로 해상풍력 입찰은 이번 공고에서 제외됐지만, 정부는 조만간 해상풍력 입찰도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정책 지원과 제도 개선이 맞물리면서 새해 재생에너지 보급에는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전환 속도가 빨라질수록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기업들은 특히 비용 상승 요인이 전기요금 인상으로 전가되거나, 탄소비용 부담으로 연결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조영준 대한상공회의소 지속가능경영원장은 “새해는 정부가 추진하는 굵직한 에너지 정책들이 본격적으로 실행되는 중요한 해가 될 것”이라면서도 “수백 년간 이어온 에너지 체계를 급격하게 전환할 경우 에너지 안보나 경제 문제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이해관계자와 전문가들의 충분한 논의를 거쳐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2035 NDC와 제4차 배출권거래제 할당계획에 따라 새해부터 유상할당이 늘어날 텐데, 산업계는 비용(가격) 인상 압박을 받을 수 밖에 없다”며 “국내 기업들이 중국 업체들과의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는 상황에서 비용 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RE100 산단 본격 시동....기업 유인책이 관건

새해 에너지 정책의 또 다른 축은 RE100 산업단지(이하 산단)이다. 정부는 새해 RE100 산단 착공을 예고했다. 산단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공급'이 아니라 ‘수요' 즉 기업 유인이 필요한 만큼 확실한 '당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업계에서는 입주 기업이 체감할 수 있는 패키지가 함께 갖춰져야 한다고 본다. 구체적으로는 ▲재생에너지 조달의 확실성 ▲전력요금·계통비용의 예측 가능성 ▲인허가·입지·정주여건을 묶은 지원 ▲글로벌 규범(RE100·공급망 탄소 규제) 대응 지원 등이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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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산업단지 전경 (사진=새만금개발청)

조영준 원장은 "기업마다 필요한 혜택이 다르겠지만, 파격적인 규제 완화와 혜택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재생에너지를 단순히 더 싸게 공급해주는 것만으로는 대규모 투자를 이끌어내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도 "특별법 제정에 따라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새만금, 울산, 해남 등 어느 지역이 RE100 산단으로 선정될 지 큰 관심사"라며 "결국 RE100 산단 내에 반도체 공장이나 AI 데이터센터 같은 대형 전력 수요처 들어가야 할텐데, 이를 위해서는 특별법에 전기요금 할인 외에도 특목고 설립과 택지개발 등 정주여건을 포함한 유인책이 함께 담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