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국정 생중계’가 화제다. 국무회의에 이어 정부 부처 업무 보고까지 유튜브와 KTV를 통해 날 것 그대로 중계되고 있다.
파격적인 만큼 다양한 얘기들이 쏟아지고 있다. 유전자변형식품(GMO) 관련 질문에 명쾌한 답변을 내놓은 변상문 농식품부 식량정책국장은 '콩GPT'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반면 외화 밀반출 관련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한 이학재 인천공항공사 사장은 공개 질책을 면치 못했다.
반응도 천차만별이다. 지지층에선 “역시 행정의 달인답다”고 열광하고 있다. 대통령의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일부 관료들을 질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또 다른 한 켠에선 “공개적 망신주기 아니냐”는 비판도 고개를 들고 있다. “전 정부 때 임명된 기관장을 타깃으로 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들린다.
나 역시도 국정 생중계를 관심 있게 봤다. 보면서 “대통령의 업무 파악 능력은 참 대단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더불어 “저런 상사 모시려면 쉽지 않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렇다고 ‘정부 부처 업무보고 생중계’를 평가할 생각은 없다. 그건 각자 판단할 몫이라고 생각한다. 국민 입장에선 파격적인 회의 진행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 지 지켜보는 것도 한 가지 관전법이 될 것 같다.
전국민에게 공개된 사안, 기자는 뭘 보도해야 하나
이번 논란을 지켜보면서 “국정 생중계 시대에 저널리즘의 역할은 무엇일까”란 생각을 하게 됐다.
그동안 국무회의와 주요 부처 회의는 요약 브리핑을 통해 공개됐다. 정부가 ‘알리고 싶은 것’만 알렸다. 실제 어떤 논의와 설전이 오고 갔는지, 그 과정에서 대통령은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드러 나지 않았다.
기자들의 역할은 명확했다. ‘공식 브리핑’을 전달해주기도 하지만, 다각적인 취재를 통해 공개되지 않은 것들을 알아내려고 노력했다. 그 역할을 충실하게 하는 기자들이 단독 기사를 쓸 수 있었다.
그런데 ‘생중계 시대’가 되면서 이런 역할의 가치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국민들이 회의 장면을 ‘날 것 그대로’ 바로 볼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질문을 던져 봤다.
“모든 장면이 공개된 시대에 기자는 무엇을 해야 할까.”
생중계 됐으니 굳이 기사 쓸 필요가 없는 걸까? 아니면 안 본 사람도 많으니, 잘 요약해주는 것도 의미가 있는 걸까?
다 공개됐으니, 단순 전달 보도의 가치가 반감된 건 분명하다. 많은 국민이 지켜 본 회의 내용을 ‘받아쓰기’ 하느라 소중한 시간을 다 흘려보내는 건 ‘가성비’ 떨어지는 일이다. 그 동안 해 왔던 보도와는 완전히 다른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회의 석상에서 논란이 됐던 내용을 집중적으로 다룰 수도 있다. 지난 회의 때 나왔던 ‘환빠 논쟁’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이재명 대통령이 ‘환단고기’를 거론한 이후 논란이 계속 커지고 있다.
하지만 그 문제 또한 지엽적인 주제다. “국정 생중계를 어떻게 보도할 것인가”란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다.
그렇다면 ‘국정 생중계 시대’ 저널리즘은 어느 쪽을 지향해야 할까?
분석과 해석에 초점 맞춘 지혜의 저널리즘이 필요한 것 아닐까
이런 질문을 던지면서 미국 언론학자 미첼 스티븐스가 제기했던 ‘지혜의 저널리즘(wisdom journalism)’을 떠올리게 됐다. ‘지혜의 저널리즘’은 스티븐스가 ‘비욘드 뉴스’에서 제기한 이론이다.
지혜의 저널리즘을 ‘세계를 이해하는 우리의 능력을 한층 강화해주는 저널리즘’이라고 스티븐스는 설명하고 있다. 단순한 사실보다는 분석과 해석 쪽에 초점을 맞추는 보도라는 의미다.
이를테면 이런 설명이다.
“이제 ‘누가’ ‘무엇을’ ‘언제’ 그리고 ‘어디서’가 인터넷에 과다 노출되면서 싸구려로 전락함에 따라 ‘왜’가 더 많은 가치를 갖게 됐다. 그것을 위해선 생각을 해야만 한다. 때론 전문 지식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은 전통 저널리즘에서 자주 실종되는 요소, 즉 설명을 해 준다. 취재원에 적용하게 되면 동의하건 혹은 반대하건 간에 ‘왜’는 저널리스트로 하여금 누가 어떤 주장을 했다는 단순한 속기술 보도 이상을 얻도록 해 준다. 더 깊은 이해를 향해 갈 수 있도록 해 준다.” (<비욘드 뉴스>, 137쪽)
육하원칙이 싸구려로 전락했다는 저자의 설명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는 여전히 중요하다. 모든 저널리즘의 출발점이나 다름 없다.
하지만 ‘생중계 시대’ 언론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건 부인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기자의 역할을 ‘발언의 정책적 함의’부터 분석하고, 회의에서 나온 얘기들의 실행 가능성을 검증하는 쪽에 좀 더 힘을 기울여야 하는 것 아닐까?
말하지 않은 것은 무엇이며, 말한 것들 중 이전 발언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은 없는 지 검증하는 역할도 필요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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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부처 업무보고 생중계’는 보는 관점에 따라 여러 해석이 가능한 사안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공통적으로 지적할 수 있을 것 같다. 적어도 지금까지 계속해 왔던 보도로는 달라진 회의 방식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할 가능성이 많다는 점이다.
결국 기자들은 ’전통적인 사실보도’만으론 더 이상 부가가치를 갖기 힘든 현실에 직면한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사실 뒤에 숨어 있는 ‘의미’와 ‘배경’을 분석하고 해석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뼈아픈 자기 각성이 뒤따라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