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레고처럼 조립된다"...법정 증언 주의해야 하는 이유

더블린대 연구팀 "피해자-피고인 모두 외부 정보에 기억 왜곡될 수 있어"

과학입력 :2025/10/06 16:00    수정: 2025/10/06 16:14

성폭력 사건의 진술은 종종 결정적 증거로 작용하지만, 기억은 생각보다 훨씬 불완전한 정보라는 사실이 새 연구에서 다시 확인됐다.

'사이언티픽 리포트' 국제 학술지와 '더 컨버세이션' 등 외신에 따르면, 최근 아일랜드 더블린대 연구팀은 피해자와 피고인 모두 외부 정보에 의해 기억이 왜곡될 가능성이 거의 동일하다는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데이트 상황'을 가상 체험시킨 뒤 기억 왜곡 실험

기억은 왜곡되거나 사라지기 쉽다.(제공=클립아트코리아)

연구를 주도한 시아라 그린(Ciara Greene) 교수팀은 피험자들에게 1인칭 시점으로 촬영된 데이트 장면 영상을 보여주며 실제 상황처럼 몰입하게 했다.

이후 참가자들에게 “영상 속 데이트에서 성폭력 신고가 접수됐다”고 알린 뒤, 무작위로 ‘피해자 역할’ 또는 ‘용의자 역할’을 부여했다. 그리고 실험자는 목격자 진술을 들려줬는데, 이 진술에는 일부러 잘못된 정보가 섞여 있었다.

예를 들어 “바텐더가 용의자가 술을 억지로 권했다고 말했다”, “택시기사는 피해자가 매우 적극적이었다고 말했다” 등의 왜곡된 묘사가 포함됐다.

이후 참가자들은 자신이 본 영상을 얼마나 정확히 기억하는지, 그리고 목격자의 진술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는지를 평가받았다.

누구의 기억도 완벽하지 않았다

분석 결과, ‘피해자 역할’을 맡은 사람과 ‘용의자 역할’을 맡은 사람 모두 잘못된 정보에 비슷한 정도로 영향을 받았다. 즉, 외부 정보가 주어질 경우 기억의 혼동은 양쪽 모두에게 동일하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린 교수는 “많은 사람들이 기억을 컴퓨터 파일처럼 ‘꺼내보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는 레고 블록처럼 조각조각 재조립하는 과정에서 기억을 만든다”며 “이 재조립 과정에서 오류가 생기면, 잘못된 정보가 실제 기억처럼 굳어버리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피해자보다 용의자의 말이 더 신빙성 있어 보일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기억을 컴퓨터 파일처럼 ‘꺼내보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는 레고 블록처럼 조각조각 재조립하는 과정에서 기억을 만든다."(제공=클립아트코리아)

그린 교수는 법정에서 이런 현상이 피해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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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재판에서는 피해자나 목격자의 기억을 검증하기 위해 전문가가 종종 증언하지만, 대부분 피고인 측이 부른 전문가가 ‘기억의 불완전성’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상황에서는 피해자나 증인의 기억은 불안정하고, 반대로 용의자의 기억은 절대적인 것처럼 보일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또 “기억은 증거의 한 형태로 존중받아야 하지만, 동시에 얼마나 쉽게 오염될 수 있는지도 이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