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트로픽이 인공지능(AI) 에이전트와 현미경·로봇팔 등 물리 장비를 연결하는 공통 규격을 내놓으며 실험실과 제조 현장 공략에 나섰다. AI가 문서 작성과 코딩을 넘어 실제 장비를 움직이고 실험까지 수행하는 단계로 확장되면서 오픈AI·구글·마이크로소프트(MS)와의 자율 연구 경쟁도 거세지고 있다.
앤트로픽은 27일(현지시간) 공식 뉴스룸을 통해 AI 에이전트가 물리 장비를 안전하게 작동하도록 지원하는 공유 규격 '모델 하드웨어 스탠더드(MHS)'의 연구 프리뷰를 공개했다. MHS는 현미경과 액체처리장비, 로봇팔 등 여러 실험·제조 장비를 AI 에이전트가 동시에 제어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으로, 적용 범위도 신약 개발을 위한 반복 실험부터 양자컴퓨터의 레이저 보정까지 넓다.
현재 실험실이나 제조시설에선 장비마다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가 달라 여러 장비를 함께 쓰려면 별도의 통합 작업이 필요하다. 서로 통신하지 못하는 장비도 많아 전문 인력이 장비별 맞춤형 연결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수주에서 수개월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MHS는 이 과정에 공통 드라이버를 적용해 장비 연결 방식을 표준화한다. '온도를 읽는다'거나 '온도를 설정한다'와 같은 기본 명령을 공통 형식으로 바꾸고, 각 장비가 무엇을 측정하고 조정할 수 있는지와 안전 한계도 AI가 인식하도록 한다. 앤트로픽은 기존에 수주에서 수개월 걸리던 통합 작업을 수시간 또는 수분 수준으로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장비가 연결되면 AI가 실험 과정도 조율할 수 있다. 여러 장비에서 데이터를 받아 작업 순서를 정하고 실험 결과에 따라 매개변수를 실시간으로 변경하는 방식이다. 일부 장비 오류는 사람의 개입 없이 감지하고 복구할 수도 있다. 장시간 반복 작업은 여러 장비 명령을 코드 파일로 묶어 실행해 AI가 모든 단계에서 다시 추론하지 않아도 처리하도록 했다.
앤트로픽이 MHS에서 노리는 것도 개별 연구실의 자동화보다는 AI와 물리 장비를 연결하는 공통 인터페이스 확산에 가깝다. MHS는 특정 AI 모델에 종속되지 않도록 설계됐으며 다른 AI 에이전트도 표준 프로토콜을 이용해 접근할 수 있다. 앤트로픽이 AI와 데이터베이스·기업용 소프트웨어를 연결하기 위해 만든 '모델 컨텍스트 프로토콜(MCP)'도 MHS에서 지원하는 연결 방식 중 하나다.
앤트로픽은 MCP를 통해 AI 에이전트와 기업 데이터·소프트웨어를 연결한 데 이어 MHS로 그 범위를 하드웨어 제어까지 넓히고 있다. MHS가 확산되면 AI 업체가 장비 제조사마다 별도 연동 기술을 만드는 대신 공통 규격으로 다양한 장비를 제어할 수 있어 AI와 하드웨어 간 표준 경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초기 생태계에는 연구기관뿐 아니라 클라우드·로봇·바이오 장비 업체들이 합류했다. 아마존웹서비스(AWS)는 AI 에이전트와 물리 장비를 연결하는 '스트랜즈 로봇'을 통해 MHS를 지원할 예정이다. 다나허와 키아젠, 테칸, 유니버설로봇도 MHS 적용 기술을 개발하거나 시험하고 있다.
국내에선 두산로보틱스가 MHS를 자사 로봇팔에 적용해 자동 품질보증과 여러 로봇 간 작업 조율을 시험하고 있다. 허깅페이스도 로봇 개발 라이브러리 '르로봇'에 MHS 지원을 추가하고 있으며 라즈베리파이 역시 관련 제품으로 적용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AI를 실제 실험과 연결하려는 경쟁은 앤트로픽에 앞서 주요 AI 기업에서도 진행돼 왔다. 오픈AI는 깅코바이오웍스와 GPT-5를 로봇 실험실에 연결해 AI가 실험 조건을 설계하고 결과를 분석한 뒤 다음 실험을 다시 정하는 자율 연구 방식을 시험했다. 구글 딥마인드도 'AI 코-사이언티스트'를 통해 여러 AI 에이전트가 과학적 가설을 만들고 서로 평가·수정하도록 하는 연구 자동화를 추진하고 있다.
MS는 과학 연구용 에이전트 플랫폼 'MS 디스커버리'를 중심으로 연구 데이터와 AI 모델, 시뮬레이션을 연결하는 데 힘을 싣고 있다. AI가 연구자의 질문에 답하는 수준을 넘어 가설 생성과 실험 설계, 장비 제어, 결과 분석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묶는 방향으로 경쟁 영역이 넓어지는 셈이다.
이 같은 기술은 제약·바이오뿐 아니라 소재, 반도체, 배터리, 양자컴퓨팅 등 반복 실험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한 산업에서 활용도가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실험 조건을 바꿔가며 장시간 반복해야 하는 연구에서 AI가 실시간으로 결과를 판단하고 다음 작업을 지시할 경우 연구개발 기간과 비용을 줄일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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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MHS는 아직 초기 연구 프리뷰 단계다. 앤트로픽도 클로드가 텍스트와 이미지를 통해 물리 세계를 학습한 만큼 공간·물리 추론 능력에 한계가 있어 전문가 감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가 없는 장비는 아직 MHS로 제어할 수 없으며 안전성 평가와 오용 방지 장치도 추가로 마련하고 있다. 앤트로픽은 연구 프리뷰에서 확보한 결과를 토대로 관련 안전 가이드와 함께 MHS를 오픈소스로 공개할 계획이다.
앤트로픽은 "MHS가 연구자와 엔지니어들이 장비를 활용하는 모든 분야에서 발견과 실험의 속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