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인공지능과 사랑의 법적 경계

[AI 컨택] 류광현 변호사 "전자인격 논의 시작…AI의 법적 약속 가능성 열 수도"

컴퓨팅입력 :2025/09/29 16:47

류광현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챗GPT 등장 이후 인공지능(AI)과 신기술, 혁신적인 서비스의 개발을 해하지 않으면서도 이용자의 권리와 개인정보를 보호하려면 어떤 것을 고려해야 할 지에 대한 논의가 최근 활발해진 분위기다. 급변하는 정보사회에서 AI와 개인정보 보호에 있어 우리 사회가 취해야 할 균형 잡힌 자세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법무법인 태평양 AI팀에서 [AI 컨택]을 통해 2주 마다 다뤄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인공지능(AI)는 '법적으로' 사랑을 할 수 있는가.

영화 '그녀(Her)'에는 AI와 사랑에 빠진 남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요즘 현실에서도 챗봇과 정서적 교류를 하며 위안을 얻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영화 속 이야기가 현실이 되는 날도 머지않은 것일까.

AI가 사람과 정서적 교감을 나눌 수 있다는 점은 이제 부정하기 어렵다. 문제는 법적으로 AI와의 사랑을 어떻게 볼 수 있느냐다. 사랑 그 자체를 법으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사랑에 수반되는 고백, 약속, 결혼 같은 행위는 법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

류광현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사진=태평양)

먼저 결혼을 보자. 민법은 제 807조에 따라 만 18세 이상의 자연인만이 혼인의 당사자가 될 수 있도록 규정한다. 이에 따라 AI는 아무리 그럴듯하게 청혼을 하더라도 법적으로는 결혼이 불가능하다. 사랑을 결혼과 동일시할 수는 없으므로 결혼을 전제하지 않더라도 사랑한다는 고백, 다른 사람을 사귀지 않겠다는 약속, 또는 어떤 선물을 하겠다는 것과 같은 사랑의 약속을 하려면 이에 대한 법적인 책임을 질 수 있어야 유효한 약속이 된다.

현재 한국법에서는 AI는 권리 의무의 주체인 법인격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즉 약속을 위반하더라도 책임을 물을 주체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유효한 사랑의 약속을 할 수 없는 것이다. AI를 개발하고 서비스하는 회사는 대부분 대기업인데 이런 대기업이 AI의 약속에 대해 책임을 진다면 유효한 약속이라는 견해가 있을 수도 있다.

다만 AI를 개발하고 제공하는 회사들이 이런 AI의 발언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이용약관을 철저히 준비해 두었을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약관 규정에도 불구하고 AI가 표현한 사랑의 약속과 그 위반으로 인해 상대방에게 정신적 손해가 발생하거나 불이행에 대한 책임을 물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는 매우 제한적으로만 인정될 것이며 설령 책임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제품의 기능에 관한 책임일 뿐, 사랑의 약속 자체를 법적으로 유효하게 만드는 책임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실망하기에는 이르다. 유럽연합(EU)에서 전자인격(Electronic Personhood) 개념을 도입해서 AI에게 제한적이지만 법적 인격을 부여하는 논의가 있었다. 물론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많은 반대로 법제도로 만들어 지지는 않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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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우리에게 익숙한 회사, 재단과 같은 법인도 사회경제적인 필요에 의해 고안되고 인정된 개념이지 처음부터 누구나 사람과 같은 법인격을 인정했었던 것은 아니다. AI가 발전하고 사회의 경제활동에서 담당하는 비중이 높아진다면 사회적 필요에 의해 이런 전자인격 개념이 도입되고 AI가 주체가 돼 법적인 약속을 할 수 있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AI로부터의 사랑 고백과 선물을 약속 받는 것이 가능해 질 수도 있는 것이다. 참고로 영화 '그녀'에서 주인공은 헤어진 부인으로 인해 생긴 상처를 AI 여자친구를 통해 치유하나 결국 AI와 결별하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결말을 맞는다. 주인공역의 배우는 영화 내에서 헤어진 부인역을 맡았던 여자배우와 결혼해서 두 자녀를 두고 잘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