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달간 금융, 제조, 유통, 공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산업 현장에서 AI가 어떻게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고 새로운 아키텍처를 요구하는지 살펴봤다. 데이터 메시, 상황 지속 계층, 클라우드 네이티브, MLOps 등 복잡한 기술적 논의의 중심에는 언제나 효율성, 속도, 그리고 최적화라는 목표가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기술의 향연 속에서 우리가 잠시 잊고 있었던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 있다. 이 모든 혁신은 과연 누구를, 그리고 무엇을 위한 것인가?
기술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우리가 설계하는 아키텍처의 모든 결정에는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가치 판단이 내재돼 있다. AI가 대출 심사를 거절하고, 채용 서류를 탈락시키며, 질병을 진단하는 시대. SW 아키텍트는 이제 단순히 기술적 청사진을 그리는 설계자를 넘어, 그 기술이 사회에 미칠 영향을 먼저 고찰하고 윤리적 가치를 시스템에 내장해야 하는 ‘윤리적 스튜어드(Ethical Steward)’ 로서의 책임을 안게됐다. 이것이 바로 ‘인간 중심의 SW 아키텍처(Human-Centered Software Architecture)’의 핵심이다.
인간 중심 아키텍처는 단순히 사용자 인터페이스(UI)를 예쁘게 만들거나 사용자 경험(UX)을 편리하게 만드는 수준의 논의가 아니다. 이는 시스템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부터 투명성(Transparency), 공정성(Fairness), 책임성(Accountability), 그리고 인간의 주체성(Human Agency) 이라는 가치를 보장하는 설계 철학이다.
우리가 14편에서 다룬 설명가능 AI(XAI) 는 바로 이 ‘투명성’을 아키텍처로 구현한 대표적인 예다. AI가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그 이유를 인간이 이해할 수 있도록 데이터 계보와 판단 근거를 추적하고 제시하는 능력은, 이제 선택이 아닌 모든 AI 시스템이 갖춰야 할 기본 요건이 되고 있다.

‘공정성’ 의 가치는 9편에서 논의한 데이터 메시와 연방형 거버넌스와 깊이 연결된다. 데이터에 잠재된 편향(Bias)이 AI를 통해 증폭돼 특정 성별, 인종, 지역에 불공정한 결과를 낳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데이터의 수집, 정제, 활용 전 과정에 책임 있는 거버넌스가 아키텍처 수준에서부터 설계돼야 한다. 데이터 상품의 품질을 해당 도메인이 직접 책임지는 데이터 메시의 철학은 이러한 공정성을 확보하는 중요한 출발점이다.
궁극적으로 인간 중심 아키텍처는 기술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의사결정을 돕고 역량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돼야 한다. 10편에서 다룬 ‘상황 지속 계층’ 이 고객의 모든 맥락을 이해해 자동으로 모든 것을 처리해주는 ‘전지전능한 비서’가 되는 것은 위험하다. 이 계층은 어디까지나 인간이 최적의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가장 정확하고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는 ‘증강 지능(Augmented Intelligence)’의 조력자 역할을 해야 한다. 언제든 인간이 개입해 AI 제안을 수정하고 최종 결정을 내릴 수 있는 ‘Human-in-the-loop’ 메커니즘은, 인간의 주체성을 보장하는 핵심적인 아키텍처 패턴이다.
결국 AI 시대의 SW 아키텍트는 “이것을 기술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넘어, “우리가 이것을 만들어야만 하는가? 이 시스템이 인간의 존엄성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라는 질문을 가장 먼저 던져야 한다. 가장 뛰어난 기술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다. 우리가 설계한 복잡한 아키텍처가 사용자에게는 그저 자연스럽고, 신뢰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경험으로 느껴지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기술을 넘어 사람을 향하는 아키텍처의 진정한 목표다.
지금까지 우리는 AI 네이티브로 가기 위한 거시적인 아키텍처 전략들을 살펴보았다. 다음 편에서는 좀 더 구체적인 기술의 세계로 들어가, 시스템 곳곳에 스며든 AI가 어떻게 기존의 기술 부채를 해결하고 시스템을 더욱 건강하게 만드는지, ‘Smell of ML’ 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통해 다층적 지능형 시스템의 세계를 탐험해 보겠다.
◆ 나희동 크리스컴퍼니 대표는...
-정보관리기술사 (54회), SW아키텍트 (CPSA), 수석감리원
-전남대학교 산업공학과,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컴퓨터공학 석사
-CMU SEEK 1기 MSE, UTD SW MBA 수료
-전/투이컨설팅 SW아키텍처 담당 이사, 마르미III 개발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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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싸이버로지텍 기술연구소 및 플랫폼사업본부 상무
-전/동양시스템즈 솔루션사업본부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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