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컬처 산업이 구조적 위기에 직면했다는 현장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OTT 중심 정책과 극장산업 붕괴, 민간 투자 위축 등으로 제작 생태계가 마비됐다는 진단이다. 콘텐츠 제작자와 전문가들은 정부의 장기 전략 부재를 지적하며, 민관 협력과 정책적 지원을 통한 산업 재정비를 촉구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 직속 글로벌책임강국위원회 산하 글로벌 K컬처 전략위원회(상임위원장 조재형)는 지난달 30일 국회의원회관에서 ‘K컬처의 위기와 해결 방안’을 주제로 정책 간담회를 열고 콘텐츠 제작자, 아티스트, 전문가 등 25명과 함께 산업 현안을 논의했다.

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K컬처는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불공정 무역 분야로 지목할 만큼 세계적인 경쟁 영역”이라며 “글로벌 확장에 따른 정치·경제적 역풍도 고려해 장기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플랫폼과 콘텐츠 등 문화 영역은 경제안보 전략의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영화 ‘명량’, ‘한산’, ‘노량’ 등을 연출한 김한민 감독은 산업의 구조적 위기를 강하게 지적했다. 그는 “극장 산업은 사실상 붕괴 상태며, 배급을 겸한 대기업들의 고정비 부담으로 제작이 마비되고 있다”며 “문체부나 콘텐츠진흥원은 전략을 제시하지 못하고, 정부는 OTT 중심 정책에만 쏠려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넷플릭스에 종속된 구조를 탈피하려면 민관이 협력해 해외 세일즈 체계를 근본부터 바꿔야 한다”며 “한때 연간 80~120편이던 영화 제작 편수가 현재는 10편 내외로 줄었고, 창작을 포기할 뻔한 적도 있다”고 호소했다.
KAIST 김정호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AI는 위기에 처한 K컬처 산업의 대안이 될 수 있다”며 “시나리오나 시놉시스만 있으면 AI와 디지털 휴먼으로 영상과 음악을 제작하는 시대가 온다”고 말했다. 이어 “기술과 예술이 융합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교육과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제작 현장의 위기를 알리는 발언도 이어졌다. 드라마제작자 황동섭은 “기획된 작품들조차 제작이 멈춰 있고, 리메이크 시장과 광고 수익도 위축됐다”며 “IP 확보와 기술기금 등 시장 활성화를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성일 공연기획자는 “체육진흥기금 부담과 공연 중계 문제 등으로 민간 공연기획자가 설 자리를 잃었다”며 “음반 재고 중심 유통, 팬사인회 중심 마케팅 등 왜곡된 구조가 신인 아티스트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걸그룹 ‘비비업’ 멤버 수연은 “연습생에서 데뷔로 가는 과정 자체가 너무 어렵고, 기회도 부족하다”며 “신인을 배려하는 산업 구조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트레져헌터 박성진 대표이사는 “4천여 크리에이터를 보유하고 있지만 현재는 명맥만 유지하는 수준”이라며 “유튜브 아이돌, 숏폼 콘텐츠 등 뉴미디어 흐름을 담아낼 정책 기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기관이 트렌드만 좇지 말고 생태계를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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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위원장은 “이번 간담회가 K컬처 산업의 ‘역전의 법칙’이 되기를 바란다”며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후속 정책 세미나로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행사에는 고삼석, 김광, 김홍근, 신상수, 강경호 등 글로벌 K컬처 전략위 부위원장단을 비롯해 가수 최유나, 방송작가 정인해 등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