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은 이제 산업과 제도의 작동 원리를 통째로 바꾸는 '국가 메타 인프라'입니다. 기술 하나로 승부하던 시대는 끝났고 인재·안보·글로벌 연대를 포괄하는 전방위 체제 설계 없이는 생존이 어렵습니다. 오는 6월 대선을 앞둔 가운데 단기 흐름에 휘둘리지 않고 학계·산업계·기술 현장의 전문가들과 함께 10년 단위의 전략 아젠다를 제안하고자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하정우 과실연 공동대표는 30일 서울 강남구 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과학기술·AI 정책 미디어데이'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날 행사는 오는 6월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차기 정권의 AI 정책 방향성을 선제적으로 제시하기 위해 마련됐다. 바른 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과실연)과 산하 프론티어 AI 정책연구소, AI미래포럼이 공동 주관했으며 AI 분야 정책 발표는 하정우·김승일 공동대표가 맡았다.
이날 공개된 정책 아젠다는 ▲인프라 ▲인재 ▲생태계 ▲거버넌스 ▲글로벌·안보 등 5개 분야에서 총 11개 과제로 구성됐다. 과실연은 AI를 '국가 전략 기술'로 규정하고 컴퓨팅 인프라 구축부터 글로벌 연대까지 전방위 정책을 통해 한국이 AI 3대 강국으로 도약할 기반을 마련할 것을 주문했다.

AICF부터 AI 탈피오트까지…'칩-인재' 묶는 10년 로드맵 제시
이날 하정우 공동대표는 AI 국가 전략화의 출발점으로 'AI 컴퓨팅 파운데이션(AICF)' 구축을 제시해 인프라 고도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AICF란 그래픽처리장치(GPU)와 국산 신경망처리장치(NPU)를 포함한 AI 가속기 인프라를 국가 단위로 통합 구축해 연구개발과 산업 확산을 동시에 지원하는 기반 체계다.
과실연은 AICF 체계를 오는 2030년까지 50만 장 규모로 조성하고 민간·학계·스타트업이 저비용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공공-민간 연합 형태의 운영 모델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정우 공동대표는 "산업 구조가 AI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구조로 이미 바뀌었다"며 "오는 2030년까지 세계 톱5 수준 GPU·NPU 50만 장 규모의 인프라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인프라 전략으로는 '글로벌 수준의 오픈소스 AI 생태계' 육성이다. 과실연은 향후 AI 패권 경쟁에서 '오픈소스 생태계'가 결정적 변수라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 정부 R&D 평가에 오픈소스 기여도를 반영하고 범용인공지능(AGI)을 목표로 한 국제 공동 프로젝트도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 공동대표는 "AICF는 이러한 프로젝트들의 공공 인프라로 활용돼야 한다"며 "다문화 포용형 AI 생태계 구축의 기반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인재 확보 역시 강조됐다. 과실연은 'AI 원천기술·과학AI 연구·글로벌 협력'을 축으로 국가 주도 연구기관 두 곳의 설립을 제안했다. AGI 연구에만 전면 집중하는 국가 초지능연구소(NASII)와 기초과학 난제 해결을 위한 국가 과학AI연구소(NSAI)를 각각 설립해 글로벌 공동연구에 필요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구상이다.

하 공동대표는 "기초과학과 AI는 분리할 수 없고 AI는 이미 유럽과 미국에서도 '주권 기술'로 간주되고 있다"며 "우리도 이제 단순한 활용이 아니라 원천 기술 개발 주체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들 연구기관의 성과 평가 방식도 기존 논문 중심 지표에서 벗어나 기술의 사회적·산업적 기여도, 오픈소스 확산력 등을 핵심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인재 전략으로는 '글로벌 최고 수준 AI 인재 확보'가 제시됐다. 과실연은 오는 2030년까지 글로벌 AI 연구자 상위 2천 명 중 5% 이상을 한국 국적 또는 국내 활동 인재로 확보해야 한다는 목표를 내놨다.
이를 위해 김승일 공동대표는 해외 인재 유치를 위한 '패스트트랙 비자' 제도 도입, 교포 AI 과학자 귀국 유도 정책, 기업-학교 연계형 AI 하이브리드 대학원 설립 등을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장기 지원, 자율권 보장, 산학 겸직 허용, 파격적 보상 등 R&D 인재 유치를 위한 구조적 제도 설계도 함께 제시됐다.
중단기 실행 방안으로는 병역 특례 확대와 AI 전문사관 제도 도입이 제안됐다. 과실연은 이를 이스라엘의 유사 프로그램을 본따 'AI 탈피오트 프로그램'으로 명명하고 고급 인재가 군 복무 중에도 기술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 공동대표는 "AI에 대한 대중 활용 역량을 국가 경쟁력으로 연결하기 위해 전 국민 AI 리터러시 강화를 주요 아젠다로 포함시켰다"며 "자연어 기반 LLM 기술 확산에 맞춰 누구나 AI를 활용해 생산에 참여할 수 있는 실습 중심 교육 환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AI 생태계 전략의 핵심 방향으로는 '산업 AI전환(AX) 중심의 고속 성장'을 제시했다. AI 기술을 산업 현장에 확산시키기 위해 지방정부, 중소·중견기업, 지역 거점대학이 삼각축이 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한 주요 전략으로는 ▲국부펀드 규모 확대 ▲AI 스타트업 육성 투자 ▲지역 국립대의 AI 거점화 ▲과학기술원 연계 체계 구축이 제시됐다. 이들 수단을 통해 지방과 산업 현장의 AI 전환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와 함께 산업별 AI 챔피언 제도, AI 바우처 제도, 지역 단위 AI 규제 샌드박스, 국산 NPU 기반 산업 실증 사업, 재직자 중심의 전환 교육 프로그램 등도 생태계 조성을 위한 실행 과제로 포함됐다. 중소·중견기업과 지역 산업 단지의 AI 도입을 촉진하고 교육과 실증을 연계해 실질적인 산업 전환 효과를 꾀해야한다는 구상이다.
김승일 공동대표는 "AI는 중앙정부만으로 구현할 수 없다"며 "지방 주도의 산업 전환이 전체 AI 경쟁력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AI, 기술 아닌 체제 문제"…AI부·국방 전략본부·글로벌 협력안 제시
AI 정책 체계와 글로벌 연대 전략도 이번 제언의 주요 축으로 제시됐다. 과실연은 특히 현존하는 AI 정책연구소 소속의 정부·학계·산업계 전문가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국가 AI 정책연구소' 설립을 제안했다. 이 기관은 기술·법률·사회 영향력·글로벌 정책을 아우르는 허브로, 산발적으로 흩어진 정책연구 역량을 통합하는 구심점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제언이다.
거버넌스 체계 개편도 핵심 과제로 꼽혔다. 과실연은 AI 기술이 과학기술 범위를 넘어 사회·경제·문화·안보 전반을 관통하는 국가 인프라로 기능하고 있다고 보고 이를 전담할 'AI디지털혁신부' 신설을 제안했다.
하정우 공동대표는 "AI가 모든 산업·행정 시스템을 관통하는 만큼 기술만이 아닌 예산과 조직 권한을 갖춘 전담 거버넌스 체계가 필수"라며 "단순 조정 조직으로는 속도전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AI디지털혁신부 장관이 국가 최고인공지능책임자(CAIO)를 겸임하고 각 부처·지자체의 CAIO를 지휘하는 구조가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AI 기술이 야기할 사회적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제도 마련도 함께 강조됐다. 과실연은 국회 내 초당적 AI 특별위원회 및 정책연구회 신설, 민간 전문가 및 시민단체 참여를 통한 입법 공론화 절차 마련을 요청했다.
AI 안전성에 대한 논의도 확장돼야 한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이에 현재 전자통신연구원(ETRI) 산하에 있는 AI 안전연구소를 영국의 선례를 따라 'AI 안보연구소(AI Security Institute)'로 확대 개편해야 한다는 제언으로, 기술 안전을 넘어 사이버보안 및 국가 안보 차원의 연구를 수행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제적 AI 경쟁 구도 속에서 새로운 글로벌 연대 전략을 통해 한국이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하 공동대표는 "동남아·중동·중남미 등 AI 생태계가 미성숙한 국가들과의 공동 프로젝트를 추진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다국어·다문화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글로벌 오픈소스 프로젝트 '다문화 포용 AI' 선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AI 관련 국제기구 참여 확대, 중동·동남아 등에의 AI 특사 파견, 국제연합(UN) 및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의 협력 구조도 함께 제안됐다.
AI의 안보 역할도 정책 제안에 포함됐다. 과실연은 국방 전용 AI 컴퓨팅 인프라와 클라우드를 조성하고 이를 통해 기업, 연구소, 대학, 국방 조직이 데이터와 기술을 공동 연구·개발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국방 R&D 예산의 일부는 기술 변화에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는 구조로 개편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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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AI 기반 국방 경쟁력을 체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국가안보실 산하에 '국방 AI 전략본부'를 신설하고 국방 AI 협력체계 및 동맹 강화를 위한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는 제언도 함께 나왔다.
김승일 과실연 공동대표는 "AI는 이제 국가 안보의 핵심 기술"이라며 "정책과 조직 모두 그에 걸맞은 전환이 시급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