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장법(DMA)은 유럽 연합(EU)에서도 시기상조라고 평가받는 법입니다. 이 법을 그대로 벤치마킹해 소프트웨어(SW) 기업과 빅테크를 규제하자는 일부 공공기관 관계자들의 의견에 대해선 더 시기상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성균관대학교 남태우 행정학과 교수는 29일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IT서비스학회 특별세미나' 토론 세션에서 이처럼 어필했다. 이어 SW 기업들과 플랫폼 기업들을 무작정 강하게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재 기능과 성격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세미나는 '전 세계 인공지능(AI) 산업 패권주의 경쟁의 시기, 자국 플랫폼 보유 국가가 취해야 할 올바른 정책 방향'이라는 대주제로 열렸다. 발제와 토론에는 한국인터넷기업협회 노재인 연구위원, 한국외국어대학교 최요섭 유럽연합학과 교수,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장창기 IT융합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 등이 참가했다.
참여자들은 DMA의 성격을 강하게 우려했다. DMA는 소비자와 판매자를 중개하는 게이트키퍼 플랫폼 기업의 독점 영업활동을 방지하기 위해 지난 3월 EU가 제정한 법안이다. ▲운영체제(OS) ▲가상비서 ▲클라우드 컴퓨팅 ▲검색엔진 등 총 10개의 분야에서 법이 적용된다.
DMA에서 게이트키퍼는 시가총액 750억 유로(약 111조 2천437억원)이거나 최근 3년간 EU에서 75억 유로(약 11조1천180억원) 매출을 내며 월간 이용자가 4천500만명을 넘어서면 선정된다. EU 집행위원회는 미국 알파벳, 아마존, 애플,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중국 바이트댄스 등 6개 사를 게이트키퍼로 지정했다.
문제는 DMA의 '사전규제' 성격이다. DMA 상 게이트키퍼에 선정된 기업은 법 위반 시 글로벌 연 매출 10%, 최대 20% 과징금을 받을 수 있다.
최 교수는 "현 DMA 법안은 사전규제 성격이 강해 상당히 경직됐다"며 "SW 스타트업의 시장 진입 문턱이 높아지고 기존 기업들도 잠재적 경쟁이 저해되는 등 혁신이 저해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또한 "DMA는 EU에서 통상적으로 이뤄지는 법 제정 전 '지침' 단계가 없어 마치 임상실험 없이 도입된 법과 같다"며 "법 적용에 대한 효과를 알 수 없다는 큰 문제가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노 연구원은 AI 규제를 예로 들며 문화체육관광부·개인정보위원회·과학기술정보통신부·방송통신위원회가 각각 강한 규제를 만들려고 하는 분위기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일본이 소프트뱅크에 직접 투자를 하며 AI나 시스템 통합(SI) 등 국가 주도로 플랫폼·IT서비스 개발에 공들이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라는 것이다.
이어 "정부가 우리나라 현실을 크게 고민하지 않은 채로 SW와 플랫폼 시장을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밀어붙이고 있다는 우려가 든다"며 "한국은 ICT 의존도 비율이 유럽, 미국에 비해 높아 DMA 같은 사전규제가 도입되면 경제적 부작용 등 타격이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남 교수는 우리나라도 충분히 플랫폼과 공공 SW 등에서 패권국가의 지위에 설 수 있다고 바라봤다. 한국이 데이터 강국이 된다면 하위국을 이끌며 패권주의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것이 남 교수의 생각이다. 이어 국회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데 국회가 의제 세팅 등 제 몫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관련기사
- 리미니스트리트 "다수 IT기업, 현재 유지보수 모델 불만족"2023.11.02
- 韓·美 플랫폼 전문가 "DMA, 한국 도입 부적절"2024.08.21
- 채효근 ITSA 부회장 "모호해진 SW, 명확한 정책 기준 마련해야"2024.04.22
- 엄격했던 '금융권 망 분리' 완화…MSP·IT서비스 기업 '솔깃'2024.08.22
장 선임연구원은 "디지털 플랫폼 시장은 계속해서 진화해 플랫폼의 초기 진입·지속적 성공을 구상할 수 없다는 특징이 있다"며 "디지털플랫폼정부 정책 및 국가 산업 관련해선 이러한 디지털 시장의 특징이 반영돼야 한다"고 발언했다.
이정훈 한국IT서비스학회장 겸 연세대학교 정보대학원 교수는 "한국의 IT서비스 산업 방향에 대해선 전 세계가 주목 중"이라며 "강한 규제보단 산업이 발전하는 방향으로 법 제정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