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AI 반도체 스타트업 대표주자인 사피온과 리벨리온이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합병을 결정했다. 이번 합병 추진은 국내 AI 반도체 기업간 대승적 통합을 통해 글로벌 AI인프라 전쟁에 나설 국가대표 기업을 만들겠다는데 양사가 합의한 결과다.
이를 두고 반도체 업계에서는 “잘한 결정”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국내 AI 반도체기업이 전세계 AI 반도체 시장에서 90%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엔비디아와 경쟁에서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우려하고 있는 상황에서, 두 회사가 합병을 통해 기술을 강화하고 덩치가 커지면 승산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김형준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 단장은 “양사가 합병을 결정한 것은 잘한 일”이라며 “스타트업인 사피온, 리벨리온은 각자 칩을 개발하고 성과를 내는데 많은 부담이 있었을 것이다. AI 반도체 개발에는 수백원 규모의 엄청난 비용이 드는데, 시리즈 A, B 투자를 받아서 칩을 한 두개 개발하고 나면 남는 금액이 없다. 양사의 합병은 재정적인 측면에서 더 단단해질 수 있고, 설계 인력에서 ‘맨 파워’가 늘어나니까 더 좋은 칩을 설계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 SKT 전략적 투자자로, 경영은 리벨리온에서 담당…3분기 통합법인 출범
사피온과 리벨리온은 실사와 주주동의 등 필요한 절차를 거쳐 3분기 중으로 합병을 위한 계약 체결을 마무리하고 연내 통합법인을 출범시키겠다고 밝혔다. 통합법인명은 아직 미정이며, 법인 출범 시기에 맞춰 결정할 예정이다. 합병 이후 경영은 리벨리온에서 담당하기로 했다. 합병법인 대표는 박성현 대표가 유력하다.
AI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양사는 앞으로 약 1~2주 실사 기간 동안 기술 개발을 잠시 중단(홀드)하고, 서로의 기술을 비교하고, 인력을 평가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라며 “실사를 통해 양사의 기술 중 한쪽을 살릴지, 새로운 칩을 만들 것인지 등을 고민해 봐야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면 통합하는 절차에 들어가게 된다”고 덧붙였다.
리벨리온 관계자는 “오늘 사내 직원들에게 합병에 대해 공개하는 시간을 가졌다”라며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AI 반도체 경쟁력 확보 측면에서 긍정적인 분위기다”라고 말했다.
양사의 합병은 SK가 먼저 제안한 것으로 알려진다. 업계 관계자는 “SK는 사피온 기술에 대해 긴가민가하고 있었는데 리벨리온의 기술력이 낫다고 판단하고 합병을 제안한 것 같다”고 전했다.
양사의 합병은 사피온-SK텔레콤, 리벨리온-KT 전략적 투자자 진영이 힘을 합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사피온과 리벨리온은 각각 개발한 AI 반도체를 SK텔레콤과 KT 클라우드에 적용해 왔고, 차세대 칩 또한 실증 테스트를 실행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향후 2~3년이 우리나라가 글로벌 AI 반도체 시장에서 승기를 잡을 ‘골든타임’으로 보고, 빠른 합병이 필요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SK텔레콤 측은 “SK텔레콤은 합병 이후에도 전략적 투자를 이어가고, 글로벌 AI반도체 시장 진출과 대한민국 AI반도체 경쟁력 향상을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고 전했다. 사피온의 주주사인 SK스퀘어와 SK하이닉스도 대한민국 AI반도체 발전을 위해 합병법인 지원에 나설 방침이다. 또 리벨리온 투자자인 KT도 세계적 수준의 AI반도체 기업 탄생을 위해 이번 합병 추진에 뜻을 모았다고 밝혔다.
■ 사피온-리벨리온, AI 반도체 3총사로 주목
사피온과 리벨리온은 퓨리오사AI와 함께 국내 AI 반도체 3총사로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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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온은 2016년 SK텔레콤 내부 연구개발 조직으로 출발해 2022년 분사한 AI 반도체 팹리스 기업이다. 당시 SK ICT 연합 3사(SK텔레콤, SK하이닉스, SK스퀘어)가 공동 투자해 출범했다. 사피온은 지난해 11월에는 추론용 NPU 시장을 겨냥한 차세대 칩 X300(7나노, TSMC 생산)을 출시해 올해 양산을 앞두고 있다.
리벨리온은 2020년 박성현 대표와 오진욱 CTO 등이 공동 창업한 AI반도체 팹리스 스타트업이다. 창립 이후 3년간 ‘아톰(5나노, 삼성전자 파운드리)’ 등 2개 제품을 출시하며, 기업가치 8800억원을 인정받았다. 현재 리벨리온은 거대언어모델 시장을 겨냥한 차세대 AI반도체 ‘리벨(REBEL)(4나노, 삼성전자 파운드리)’을 올해 4분기 출시를 목표로 개발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