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상속세율에 영속 기업 없다…차기 국회서 손볼까

尹 대통령 개편 당위성 언급…"여당 총선 승리 시 법 개정 수월 전망"

디지털경제입력 :2024/04/02 17:45    수정: 2024/04/03 10:59

재계 상속세 개편 건의가 수년째 이어지는 가운데 올해 세법 개정에서 상속세 개편이 이뤄질지 관심이 쏠린다.

2일 경제계에 따르면 오는 7월 정부는 올해 세법 개정안 개편에 나선다. 경제계의 오랜 요청에 따라 상속세 완화 논의가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올해 초 윤석열 대통령도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상속세 개편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2일 서울 영등포구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2024년 경제계 신년인사회에서 박수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통상 재계 거목들의 별세 소식 이후에는 상속세 이슈가 뒤따른다. 그룹의 경영권을 넘겨받기 위해 총수의 지분을 상속받으려면 천문학적인 비용을 국가에 내야 하기 때문이다. 4대 그룹인 삼성과 LG 오너일가도 상속세로 인한 속앓이(?)가 적지 않다.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회장과 고 구본무 LG그룹 선대회장 타계 후 오너일가는 상속세 마련에 꽤나 어려움을 겪었다.

■ 삼성家, 매년 수 조원대 상속세 마련 진땀…효성家도 대출 불가피

지난 2020년 이건희 회장 타계 이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비롯한 오너일가는 2021년부터 5년 간 분할 납부를 하고 있다. 이들이 내야 할 상속세는 12조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년 상속세 마련을 위해 계열사 지분을 매각하거나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고 있다. 경영권 약화 위험을 무릅쓰고 지분을 매각할 만큼 상속세가 과하다는 평가가 재계 안팎에서 나오는 이유다.

LG그룹 오너일가는 상속세 문제로 세무당국에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구광모 회장역시 대출 등을 활용해 지난해 7천200억원 상속세를 완납하긴 했다. 하지만 '상속세 일부가 과다하다'는 취지로 소송을 낸 것이다. 비상장사인 LG CNS 지분의 가치평가를 두고 세무당국과 의견차를 보인 이유에서다. 구 회장 일가가 소송에서 승소할 경우 환급받을 수 있는 금액은 10억원 안팎으로 알려졌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부터),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제일모직 사장, 홍라희 여사 (사진=뉴스1)

최근 별세한 고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의 가족 역시 상속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조 명예회장은 효성(10.14%), 효성티앤씨(9.09%), 효성화학 (6.16%), 효성중공업(10.55%), 효성첨단소재(10.32%) 등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비상장 계열사 지분과 부동산 등을 포함하면 재산 규모는 최소 7천억원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

상속세율 60%(최대주주 할증 포함)를 적용받으면 상속세만 4천억원이 넘는다. 조현준 회장과 조현상 부회장 등이 상속세 마련을 위해 지분 매각 또는 주식담보대출이 불가피할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 韓 OECD 국가 중 상속세 1위…코리아디스카운트 원인 지목

재계는 과도한 상속세로 인한 부담을 줄곧 지적하며 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달에도 주요 경제단체는 우리나라 상속세 최고세율이 G7국가 평균(31%)의 2배라며 국회에 상속·증여세법 개정 관련 의견서를 제출했다.

현행 상속세는 사망자의 유산을 기준으로 10~50%의 5단계 초과누진세율로 과세하고, 최대주주 등으로부터 주식을 상속받을 경우에는 평가액에 할증평가(20% 가산)를 적용해 최대 60%의 세율처럼 적용될 수 있다. 최고세율(50%)은 OECD 회원국 중 일본(55%)에 이어 2위지만, 대주주 등으로부터 주식을 상속받을 경우 가장 높은 수준이다.

한국 vs G7 상속세 최고세율 추이 비교 (직계상속 기준) (자료=대한상의)

높은 상속세율 탓에 기업의 지속적 경영이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상속세 마련을 위해 주식을 매각하는데, 지분율 저하로 인해 경영권 유지에 어려움을 겪게 되며 심각한 경우 회사를 매각하게 되는 경우까지 발생하기 때문이다.

임동원 한경연 연구위원은 “우리나라만 최대주주에게 획일적인 할증평가를 실시하고 있는데, 이는 경영권 프리미엄이 이미 주식에 포함돼 있다는 점에서 세법상 실질과세원칙에 위배된다”며 “기업승계 시 상속세는 기업실체 변동없이, 단지 피상속인의 재산이 상속인에게 무상으로 이전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과세로서 기업승계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상속세를 납부하는 과정에서 국가가 소유하는 국영기업이 되거나 주주가 바뀌는 사례는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고 김정주 넥슨 창업자 사망 이후 유족들은 상속세로 NXC 지분을 정부에 납부했다. 그 결과 기획재정부가 NXC 2대 주주가 됐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지난해 상속·증여세 문제 때문에 셀트리온이 국영기업이 될 것이라고 말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 현실적 개편 방안은?…총선 결과 주목

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상속세가 있는 국가는 24개국인데 이 가운데 20개국은 상속인 각자가 취득하는 재산을 기준으로 과세하는 '유산취득세' 방식을 취하는 반면, 한국이 포함된 4개국은 피상속인이 남긴 재산 전체를 기준으로 하는 '유산세' 방식을 적용한다. 이에 유산취득세 전환, 자본이득과세 등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정부도 유산취득세 전환과 공제액 상향을 검토 중이다. 임동원 연구위원은 "개인 입장에서는 유산취득세가 유리한 제도이며, 현실적으로 가장 빨리 도입될 가능성이 높다"며 "기업 입장에서는 최대주주할증평가 폐지가 좋으며, 장기적으로는 상속세 폐지와 자본이득세 전환으로 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상속세 최고세율 및 GDP 대비 상속증여세수 비중 비교 (자료=한경협)

대통령의 상속세 완화 언급이 있었던 만큼 재계에서는 기대감이 커지는 분위기다. 

기획재정부는 상속세 개편팀을 편성해 다양한 논의와 검토를 하는 상황이다. 다만, 총선에서 여당이 아닌 야당이 과반 이상을 차지할 경우 변수는 남아있다. 야당 측은 상속세 완화를 선거용 감세라고 지적하며 못 마땅한 기색을 내비쳤기 때문이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G7 국가처럼 당장 최고세율을 30%로 낮추는 것은 어렵겠지만, 단계적으로 낮춰나가야 한다"며 "사실 상속세는 전체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한 자릿수에 불과하지만, 국민 감정 등 때문에 세율이 높은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소득세와 법인세를 이미 투명하게 다 내는 상황에서 또 추가해서 내는 것은 다른 국가보다 불합리한 측면이 있다"며 "상속세 과부담은 여·야 모두 납득할 수 있는 사유"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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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원 연구위원은 "여당과 야당 중 (어느 당이 다수당이 되더라도)일방적으로 세법 개정에 유리하다고 볼 순 없겠지만, 아무래도 대통령의 언급이 있었으니 여당이 과반수 의석을 차지해야 상속세 개편 가능성이 높아질 듯하다"며 "과거엔 상속세를 내지 않던 국민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아파트를 보유하면 상속세를 내야 하는 상황이 됐기 때문에 자신의 일이 된 만큼 관심을 가지는 분위기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