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유통 업계는 온·오프라인 경쟁 경계가 흐려지는 ‘빅블러’ 현상이 가속화됐다.
이커머스 기업 쿠팡은 올해 3분기까지 마트, 백화점 등 오프라인 전통 유통 채널 실적을 훌쩍 뛰어넘으며 유통시장 판도를 뒤흔들었다. ‘이마롯쿠(이마트+롯데+쿠팡)’ 구도가 ‘쿠이마롯’로 재편되는 모양새다.
그런가하면 공정거래위원회는 화장품 유통 채널 CJ올리브영을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단정할 수 없다고 판정했다. CJ올리브영의 경쟁 시장을 오프라인으로 한정할 수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또 패션 플랫폼 무신사는 내년 오프라인 매장을 대폭 늘리겠다고 선언했다.
물론 이런 변화가 하루 아침에 이뤄진 건 아니다. 2023년이 시작되기 전부터 유통 시장의 온오프라인 경계가 무너질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었다.
삼정 KPMG는 지난해말 보고서에서 "유통 업계 전반에 걸쳐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빅블러 현상은 온오프라인간 경계 붕괴"라고 진단했다.
당시 이 보고서는 "전통적인 오프라인 기업이 온라인에서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기도 하고 이커머스 기업은 반대로 오프라인으로 영토 확장에 골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온라인은 온라인끼리, 오프라인은 오프라인끼리 경쟁했던 시대가 서서히 저물고 있는 셈이다. 이에 따라 내년 유통 시장 경쟁 구도는 한층 다각화될 전망이다. 이커머스끼리의 경쟁보다는 쿠팡과 이마트, 롯데쇼핑 등 전통 업체와의 경쟁이 심화되는 한편, 알리익스프레스·테무 등 중국 쇼핑 플랫폼 약진도 예상된다.
화장품·패션 버티컬 영역에서도 온·오프라인 구분이 사라지며 오프라인 사업자로 꼽혔던 CJ올리브영, 패션 온라인 플랫폼 무신사의 온·오프라인 종횡무진 활약이 전망된다.
‘이마롯쿠’도 옛말…쿠팡, 이마트 영업익 10배 능가
올해 1분기부터 3분기까지 쿠팡은 이마트, 신세계, 롯데쇼핑, 현대백화점 등 전통 유통 업체를 압도하는 실적을 거뒀다. 특히 3분기까지 쿠팡의 누적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이마트 영업이익의 10배를 넘길 정도다.
쿠팡은 올해 ▲1분기 매출 58억53만 달러(7조3천990억원)·영업이익 1억677만 달러(1천362억원) ▲2분기 매출 58억3천788만 달러97조6천749억원)·영업이익 1억4천764만 달러(1천940억원) ▲3분기 매출 61억8천355만 달러(8조1천28억원)·영업이익 8천748만 달러(1천146억원)를 기록했다.
3분기까지 쿠팡의 누적 매출은 23조1천767억원·누적 영업이익은 4천448억원으로, 첫 연간 흑자가 가시화된 상황이다. 같은 기간 ▲이마트 누적 매출은 22조1천161억원·영업이익 386억원이다.
이마트의 위기감은 지난달 창립 30주년 기념식 행사 때 한채양 대표 발언에서도 묻어났다. 한 대표는 “과거 30년의 영광을 뒤로하고 새로운 30년을 준비해야 한다. 최근 몇 년간 유통 환경은 급변했는데 이마트가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부분도 있다"고 언급했다.
내년 이마트는 5개 이상 점포 부지를 확보해 신규 매장 출점을 재개하고, 한채양 대표가 경영을 맡고 있는 이마트, 이마트24, 이마트에브리데이 3사 시너지 강화로 경쟁력을 회복하겠다는 복안이다.
이외 올해 3분기까지 ▲신세계 연결 기준 누적 매출 4조6천368억원·영업이익 4천338억원 ▲롯데쇼핑 연결 누적 매출 10조9천230억원·영업이익 3천60억원 ▲현대백화점 연결 누적 매출 3조722억원·영업이익 2천75억원을 기록했다.
화장품·패션, 온·오프라인 경쟁 구분 사라져
화장품과 패션 유통 시장 경쟁의 온·오프라인 구분이 사라진 것도 올해 나타난 특징 중 하나다.
CJ올리브영은 과거 롯데쇼핑 ‘롭스’, GS리테일 ‘랄라블라’와 오프라인 헬스앤뷰티(H&B) 스토어 경쟁 3사로 묶였지만, 쿠팡·컬리·무신사 등 다양한 온라인 채널도 화장품을 취급하며 경쟁 시장이 넓어졌다.
최근 공정위에서도 이 시장 상황을 받아들여, CJ올리브영이 시장 지배적 사업자인지 불확실하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시장지배적지위 남용으로 최대 5천800억원이 점쳐지던 CJ올리브영에 부과된 과징금 규모도 약 19억원 수준으로 줄었다.
CJ올리브영은 이달 8일 공정위로부터 행사 독점, 납품가격 민환원 등 대규모유통업법 위반으로 과징금 18억9천600만원과 법인 고발 처분을 받은 바 있다.
온라인 패션 플랫폼 무신사는 오프라인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나섰다. 무신사는 내년 무신사스탠다드 매장을 30호까지 확장할 계획이다. 현재 무신사스탠다드는 ▲홍대 ▲강남 ▲동성로 ▲성수 등 4호점까지 운영 중이며, 조만간 ▲부산 서면에도 개점할 예정이다.
한문일 무신사 대표는 지난달 간담회에서 “자신의 브랜드와 상품을 오프라인 보여주고 싶은 수요는 많으나, 아주 소수 브랜드만 백화점에 초대받거나 매장을 연다. 더 많은 브랜드가 제품을 오프라인에서 보여주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며 “오프라인 매장은 단순히 판매하고 돈을 버는 곳뿐 아니라, 중요한 마케팅 수단”이라고 언급했다.
내년 유통 시장, '소비 심리' 위축 가운데 경쟁 치열·다각화될 듯
내년 유통 시장은 고물가·고금리로 소비 심리 위축이 계속되는 가운데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달 2024년 소비시장 전망 조사를 발표하며, 내년 소매시장은 올해보다 1.6% 성장하는 데 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커니코리아 안태희 부사장은 '2024 유통산업 전망 세미나'에서 내년 유통 트렌드 키워드로 ▲온·오프라인 매장을 광고플랫폼으로 활용하는 '리테일미디어 플랫폼' 확산과 함께, ▲신규 수익원 확보 및 비용절감을 통한 '수익중심 기조 강화' ▲편리한 쇼핑경험 제공·유통비용 감축이 가능한 '리테일테크 고도화' 등을 제시했다.
대한상의는 "고물가·고금리 상황이 내년에도 이어지면서 소매시장이 성장 정체기에 접어들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면서 "한정된 수요를 둘러싼 시장 내 생존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올해를 기점으로 유통 시장의 온·오프라인 경계가 사라진 경쟁 양상이 본격화됐고 봤다. 또한 알리익스프레스·테무 등 중국 플랫폼 약진이 예상되는 가운데 내년 유통 시장 경쟁이 더 복잡해지고 다각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통 업계 한 관계자는 "이전에는 쿠팡·네이버·신세계(SSG닷컴·지마켓)' 이커머스 3강 구도로 비춰졌다면, 올해는 온·오프라인 구분이 사라지며 '이마롯쿠' 경쟁이 본격화됐다"며 "추후 '이커머스'라는 단어를 따로 쓸 필요 없이 '커머스'로만 업계를 통칭할 것으로 전망한다. 장기적으로는 일부 선두 업체만 남고, 나머지 업체들은 정리되는 수순을 거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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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유통 업계 관계자는 "내년 유통 시장은 경쟁이 다각화될 것 같다"며 "온·오프라인의 경계가 사라지고, 알리익스프레스·테무 등 글로벌 플랫폼과의 경쟁까지 가세하며 복잡한 양상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이외 유통 업계 한 관계자도 "온라인 업체는 오프라인 진출을, 오프라인 업체는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하면서 온·오프라인간 경계 없는 유통과 소비가 본격적으로 확산한 한 해였다"며 "내년에도 소비자 접점을 확대하고, 차별화된 고객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유통 업체들의 노력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