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로봇을 가장 많이 쓰는 나라다. 또 앞으로도 더 많은 일손을 로봇에 의존해야 하는 사회다. 국내 로봇 제조 경쟁력은 빠른 속도로 일본 등 선두 국가들을 뒤쫓는 중이다. 하지만 부품 기술은 여전히 한계에 봉착해 새해 정책적 R&D 역량을 집중해 국산화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우리나라 산업용 로봇 밀도는 세계 1위다. 로봇 밀도는 노동자 1만 명당 로봇 대수를 뜻한다. 국제로봇연맹(IFR)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21년 우리나라 로봇 밀도는 1천 대로 세계 평균(141대)의 7배에 달했다.
높은 로봇 밀도에도 불구하고 제조용 로봇산업 경쟁률은 일본과 미국, 중국, 독일 등 주요 국가에 비해 한참 부족한 상황이다. 화낙과 KUKA, ABB 등 글로벌 선도 기업이 지배적인 위치를 점유하고 있어 후발 주자들은 진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내에서는 HD현대로보틱스와 두산로보틱스, 레인보우로보틱스 등이 이 분야에서 주요 업체로 꼽힌다.
로봇 부품과 원천 기술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점도 숙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제조용 로봇은 모터와 감속기, 제어기 등 주요 핵심부품이 전체 원가의 56.3%를 차지한다. 이 부품들은 대부분 일본이나 중국, 독일에서 사온다. 때문에 글로벌 공급망 혼란이 발생할 경우 타격을 받을 우려도 제기된다.
지난해 산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로봇 분야 핵심 부품 국산화율은 절반을 밑도는 수준이다. 감속기가 35.8%로 가장 낮았고, 모터 38.8%, 센서 42.5%, 제어기 47.9%에 불과했다. 특히 고정밀 감속기와 서보모터는 일본 기업이 글로벌 시장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다.
감속기는 특히 대일 의존도가 약 70%로 높은 편이다. 로봇용 고정밀 감속기는 하모닉드라이브시스템(HDS), 니덱드라이브테크놀로지 등 주요 업체가 세계 시장 대부분을 선점했고, 중국 리더드라이브가 뒤를 잇고 있다.
국내에서는 에스피지와 에스비비테크 등 업체가 고정밀 감속기를 양산해 국내 업체에 일부 공급하기도 했으나, 공시에 따르면 두 업체 모두 정밀 감속기의 수출 비중은 여전히 미미하다.
모터도 상황은 비슷하다. 야스카와와 파나소닉, 화낙 등 선두 업체가 세계적으로 입지를 다졌다. 국내에서는 LG전자 사업부에서 출발한 하이젠모터 등 일부 업체가 국내 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다만 부품 산업 성장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업계는 진단하고 있다. 글로벌 로봇 산업이 성장함과 동시에 지형이 변화하고 있어서다. 최근 수년간 협동로봇이 주목을 받으며 소형·고정밀 부품 수요가 급격히 늘어난 점이 후발 주자에 긍정적이라는 설명이다.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은 지난 10월 ‘글로벌 로봇산업 지형 변화 및 국내 정책 대응 방향’ 보고서를 발간하고 국내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핵심기술 내재화 ▲전문인력 양성 ▲서비스 신시장 창출이 중요하다고 봤다.
보고서 자문을 맡은 박상수 산업연구원 기계ˑ방위산업실장은 “로봇 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가치사슬 전반의 역량을 끌어올려야 한다”며 “로봇 완제품·부품 기업이 공동 개발한 제품의 성능과 품질을 검증하는 수요 연계형 실증ˑ보급 사업 확대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새해가 중요하다. 정부가 5년마다 수립하는 ‘지능형 로봇 기본계획’의 4차 계획을 정하는 시기가 도래하기 때문이다. 국내 로봇 부품 업체들의 경쟁력 제고를 돕는 지원책이 담길 것으로 업계는 기대하는 분위기다.
손웅희 한국로봇산업진흥원장은 지난 9월 로봇 부품기업 간담회에서 “로봇부품 시장은 지속적으로 성장 추세이나 국내 기업 시장 경쟁력은 일본의 시장 선점과 중국의 추격으로 어려운 상황”이라며 “진흥원이 현장 목소리를 청취하고 로봇산업 성장 토대를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4일 국내 로봇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첨단로봇 산업전략회의를 개최하고 ‘첨단로봇 산업 비전과 전략’을 발표했다. 전략에 따르면 정부는 2030년까지 민관합동으로 로봇 산업에 3조원 이상을 투자해 기술·인력·기업 경쟁력을 강화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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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통해 5개 하드웨어 기술(감속기, 서보모터, 그리퍼, 센서, 제어기)과 3개 소프트웨어 기술(자율조작, 자율이동, 상호작용) 등 8대 핵심기술 확보를 추진한다. 로봇 자체생산 능력도 2021년 44.4% 수준에서 오는 2030년 80%까지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방문규 산업부 장관은 “로봇산업이 글로벌 수준 기술력을 확보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으로서 ‘K-로봇경제’를 실현할 수 있도록 투자 확대와 해외 신시장 창출 등을 위해 범정부적으로 정책 역량을 결집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