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근 헤리티지랩 디렉터·박사(Ph.D.] 이번 칼럼은 지난 10월 30일 게재한 ‘2023년 문화유산 미디어아트 사업 실태 리포트 1호’의 연속이다. 2호는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개최 예정인 백제역사유적지구 미디어아트다. 공주와 부여, 익산에서 소관 지자체별 각각 개최됐다.
백제역사유적지구는 백제 후기(475~660) 문화를 대표하는 유산으로 웅진시기의 공주 공산성,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사비시기의 부여 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 부여 정림사지, 부여 왕릉원, 부여 나성, 사비후기의 익산 왕궁리유적과 익산 미륵사지로 구성된 연속유산이다.
이들 8개 유산은 과거 백제가 활발한 교류를 통해 중국-백제-일본을 이어주는 고대 동아시아 교류의 중심이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백제가 불교를 확산시키고, 예술, 건축 기술을 발전시킨 모습을 확인할 수 있으며, 공주, 부여, 익산 3개 지역에 분포한다.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올해 진행된 문화재청의 전국 8개 문화유산 미디어아트 중 3개 지역이 백제역사유적지구다. 지난 9~10월 집중적으로 개최됐다. 필자 또한 방문객이자 관찰자로 백제역사유적지구 미디어아트 현장을 방문했다.
헤리티지 미디어아트는 프로젝션맵핑, AR(증강현실)·VR(가상현실)·XR(확장현실), 인터랙티브 아트 등 다양한 미디어를 활용해 선보이는 복합매체예술을 말한다. 무한한 상상력을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는 기법이다. 즉 문화재와 예술, 디지털이 컬래보레이션한 작품이다. 이를 통해 유산의 가치를 시민들에게 확산하고 새롭게 경험하도록 한다. 문화유산산업(Heritage Industry)의 K-콘텐츠라고 할 수 있다.
문화유산 미디어아트 사업의 기능과 역할
내년 5월부터 문화재가 계승과 활용, 미래를 중심축으로 하는 국가유산 체제로 대전환한다. 1962년 문화재보호법 이래 ‘국가유산 기본법’이 신설되며 재화적 성격이 강한 문화재를, 역사·정신까지 아우르는 명칭인 국가유산으로 공식 변경하게 된다. 우리 유산을 미래 환경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산업화의 교두보로 보존관리·활용할 수 있는 변화의 물결이다.
국가유산법 제정은 배현진 국회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이다. 주목할 내용은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 활용과 진흥, 산업화에 관한 내용을 명확히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제4장에 국민 복지 증진, 유산정보 관리, 교육-홍보, 산업 육성이 구체적으로 적시되면서 우리 유산의 디지털 보존과 첨단 복원, ICT 활용 솔루션이 중요해졌다. 시민의 문화적 향유는 물론 콘텐츠, 관광 등 산업화를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가 필요하다. 나아가서는 유산을 통한 국부(國富) 창출, 문화경제를 이뤄야 한다.
그 중심에 대표적 유산 활용 사업이 ‘문화유산 미디어아트’다. 시민들에게 유산의 풍광(風光)과 함께 예술-기술이 융합한 작품을 감상하고 향유하도록 한다. 헤리티지를 디지털 산책으로 경험하는 야외 전시인 셈이다. 이 문화유산 미디어아트 사업의 관광·경제 영향력에 주목해야 한다. 올해까지는 문화유산을 명칭으로 사용하나, 내년부터는 ‘국가유산 미디어아트’가 된다. 헤리티지 미디어아트다.
전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는 K-콘텐츠의 경쟁력과 확장성을 압축하는 분야가 K-관광이다. 우리 유산은 K-관광의 원천으로 국가브랜드를 높이는 ‘헤리티지 기반 K-콘텐츠’다. 대체 불가능한 무기인 K-컬처를 관광산업과 국가유산에 정교하게 탑재시켜 2023-2024 한국방문의해와 함께 유산관광의 기폭제로 삼아야 한다. 유산 가치와 역사적 스토리, 최신의 첨단기술을 어떻게 융복합해 지역의 관광산업을 선순환하도록 할지가 중요한 목표다.
이를 위해서는 그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유산만의 독특한 콘텐츠로 작품을 창작해야 한다. 헤리티지 미디어아트는 현대미술이나 영상예술로서의 일반적 미디어아트와 달리 대상 유산의 고유한 가치와 특성, 장소성을 공감력 있는 스토리로 풀어내 동시대성의 예술작품으로 누리도록 하는 것이 관건이다. 또, 대상 유산의 건축적 특성과 경관적 환경을 최적화한 하드웨어 설계와 시스템 구축이 핵심이다. 궁극적으로는 한 편의 공연물로서 아트쇼, 비엔날레 같은 작품전, 낭만적 디지털 야행으로 구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만 기승전결 서사의 황홀한 스토리, 몰입감 있는 콘텐츠, 최첨단의 웅장한 연출로 대중의 공감을 압도적으로 얻어낼 수 있는 디지털 워킹 투어이자 신기술 융합콘텐츠가 된다.
■미디어아트 공주 공산성 vs 부여 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 vs 익산 미륵사지
전 세계에서 우리 문화는 K-컬처라는 이름으로 환호받고 있다. 한류의 원천이 국가유산이다. 문체부와 반크(VANK)의 조사에 따르면 K-컬처 팬덤은 1억 6천만 명 규모다. 한국 관광의 잠재 수요다. 이들에게 K-헤리티지(유산)를 가고 싶은 나라, 경험하고 싶은 버킷리스트로 각인시켜야 한다.
지난 9월 25일 익산 미륵사지 미디어아트를 참관했다. 공주-부여는 추석 명절을 이용해 9월 29~30일 현장을 둘러봤다. 서로 다른 문화유산과 환경, 개최 여건에서 각각의 콘셉트로 미디어아트가 펼쳐지고 있었다. 궁극적 목표는 다르지 않다. 무엇보다 대규모의 예산이 투입되는 만큼 운영 실태와 결과를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문화유산 미디어아트 사업의 성공은 4개 요인이 있다. 기획(마스터플랜)과 콘텐츠(작품 완성도와 기술 구현력) 그리고 현장 운영, 지역 활성화다. 먼저 첫째는 마스터플랜이다. 사업목적 부합성과 기획의 적정성, 예산계획 등 사업 실행 전반이다. 첨단기술을 유산에 접목해 새로운 방식의 콘텐츠로 개발했는지, 대상 유산의 가치를 제대로 전달했는지, 전체 사업비 대비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운영·홍보·마케팅은 적정한지, 추진계획이 페이퍼로 끝나는 게 아닌 구체적이며 실질적 액션플랜으로 시뮬레이션했는지다.
둘째는 작품 완성도와 기술 구현력이다. 유산 특성을 반영한 미디어아트 작품의 차별성과 관람 몰입의 아트&테크놀로지 실현 가능성이다. 미디어아트가 대상 유산의 가치·의미를 예술적으로 드러냈는지, 전체 프로그램이 개연성 있게 구성됐는지, 유산 여건에 적합한 하드웨어로 미디어아트 시스템을 구축했는지, 경관을 훼손하지 않았는지, 반응형 콘텐츠는 인터랙션이 잘 작동되는지다.
셋째는 현장 운영이다. 관람 편의와 안전관리, 홍보 전략, 방문객 유치 등 수행기관의 역량과 의지다. 대상 유산의 보존관리를 고려한 섬세한 활용 방법인지, 문화재 훼손 방지를 위한 안전관리 시스템이 구축돼 있는지, 관람객 서비스가 적절하게 제공됐는지, 사전홍보는 조기에 시행했는지, 안내판 설치 등 현장 안내체계가 제대로 조성됐는지, 지역주민뿐만 아니라 외지 여행객 방문이 있었는지, 사업의 완성도 제고를 위해 프리 프로덕션 선행을 비롯해 예술성‧공공성 역량을 갖춘 전문가와 협업했는지, 시행사 선정 합리성과 계약 방법이 적합한지다.
마지막 넷째는 지역 활성화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관광산업 효과다. 문화유산의 가치를 확산해 시민들에게 향유 기회가 확대됐는지, 새로운 관광명소로 지역 브랜드가치 상승에 노력했는지, 지역 일자리 창출과 주변 상권 소비 증진에 기여했는지, 지역의 다른 문화자원과 연계가 활발했는지다.
필자는 ICT 칼럼니스트이면서 현장의 Media-Art 디렉터다. 방문했던 세 곳의 현장에서 같은 백제지만 차이를 여실히 느꼈다. 스토리와 연출의 다름은 당연하다. 완성도와 소구력이다. 익산 미륵사지 미디어아트 페스타(익산시장 정헌율)는 ‘용화세계, 백제人 익산’을 주제로 미륵사지 일대와 국립익산박물관 외벽에서 시간의 빛을 시작으로 기억의 빛, 낭만의 빛, 영원의 빛, 추억의 빛까지 5개 테마 15개 콘텐츠로 구성했다.
메인쇼는 동탑과 서탑 사이에 메쉬스크린(길이 40m, 높이 12m)을 고정 설치해 프로젝션맵핑 기반의 미디어파사드를 연출했다. 주말에는 익산시립무용단 30명의 군무로 무왕과 선화공주의 사랑, 백제의 평화와 번성을 담은 융복합 퍼포먼스를 선사했다. 이밖에 개막식과 추석 연휴, 주말에는 총 4회의 드론라이트쇼(300대, 10분)도 진행했다.
두드러진 문제점은 보이지 않았다. 6만 평 미륵사지 전체를 헤리티지 나이트 투어로 구성한 점이 돋보였다. 다만 연못을 활용한 콘텐츠가 없었다는 점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동연지와 서연지가 있는데, 연못을 전방위적 활용한 수상 연출이나 새로운 기술의 미디어로 공간을 채워줄 필요가 있다.
추석 당일인 9월 29일 공주 공산성 미디어아트(공주시장 최원철, 공주문화관광재단 대표이사 이준원) 현장을 찾았다. 금서루와 성안마을에서 ‘백제의 몽, 웅진백제로의 시간여행’을 주제로 찬란했던 백제 문화에 대한 회상과 다시 찬란하게 뻗어나갈 한류를 담았다. ‘웅진백제의 서막’을 시작으로 백제의 재건과 고구려를 격파하고 마침내 강국이 된 백제를 표현하는 ‘갱위강국’ 그리고 백제의 중흥까지 13개의 콘텐츠가 설치됐다.
성안마을 콘텐츠는 지난해 “마치 테마파크의 빛 조형물 같다”는 지적에 대한 개선으로, 올해는 대형 달과 무령왕릉 진묘수를 미디어로 연출해 어느 정도 장소성을 살렸다. 하지만 성안마을 동선 뷰에 따른 콘텐츠 컬러 조절, 주제 연관성, 장소성 등 여전히 개연성에 대한 아쉬움이 남았다.
메인쇼라고 할 수 있는 금서루 미디어파사드에서도 레이저 활용과 다양한 3D 에셋을 통한 화려함만 강조할 게 아니라고 본다. 전체 콘텐츠를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스토리 비주얼 제작과 건축물 쉐입을 강조한 모델링-맵핑으로 본질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다음날인 9월 30일에는 부여 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 미디어아트(부여군수 박정현)를 찾았다. 2021년 정림사지 미디어아트(주관 충남정보문화산업진흥원) 이후 처음 방문했다. ‘소부리(사비의 본래 지명)의 태양’을 주제로 성왕의 사비천도 과정과 천도 이후 다시 부흥하는 백제의 문화를 3개 코스 15개 콘텐츠로 구성했다.
부여군은 지난해부터 1분기가 끝나기 전에 공모를 통해 총감독 1인을 선임, 군수가 직접 위촉해 군 문화재과 담당자와 함께 프로덕션을 조기에 돌입하는 구조다. 그만큼 의사결정이 적확하고 실시설계가 탄탄한 여건이다.
올해는 특히 국보 백제금동대향로 발굴 30주년을 맞아 조형물을 제작해 그것을 피사체로 프로젝션맵핑쇼가 진행됐다. 같은 시기 대백제전의 대표프로그램으로 백제문화단지 인공연못에서 진행된 수상멀티미디어쇼(주관 백제문화제재단)에서도 백제금동대향로 조형물을 활용한 연출이 있었다. 폭죽과 레이저, 조명, 영상, 특수효과 등으로. 저 산만함에 비해서는 2코스 사비의 빛 ‘사비향로’ 콘텐츠가 몰입할 수 있었다.
■국가유산 미디어아트의 탄생, 코리아 디지털 헤리티지
지난 7~9월 문화재청이 전국 지자체를 대상으로 공모했던 2024년 문화유산 미디어아트 사업은 7개 지역이 선정됐다. 올해 진행한 수원화성-강릉대도호부관아, 백제역사유적지구(공주-부여-익산)가 연속 개최하며, 고흥 운대리 분청사기 요지와 진주성이 처음 개최하게 된다.
문화유산 미디어아트 사업은 유산을 유산 자체로의 이미지만 갖고 있던 대중에게 그 가치와 의미를 새롭게 느끼도록 하는 디지털 익스피리언스(Digital Experience)다. 더불어 한국 이미지 제고와 인바운드 관광을 마케팅하는 대한민국의 소프트파워다. 문화유산 미디어아트 사업 실행의 프레임워크는 어느 정도 갖춰졌다.
지금 우리는 디지털이 단순한 일상의 변화와 기술·산업 발전을 넘어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혁신의 기본이 되는 새로운 체제에 직면하고 있다. 이는 또 한 번의 새로운 대변혁이고 과거 18세기 영국의 산업혁명과 20세기 후반 미국의 정보화 혁명에 이은 ‘디지털 혁명’의 시점에 있다. 모두가 디지털 환경에 익숙해진 시대인 만큼, 기술과 문화적 요소를 접목한 독창적이고 매력적인 콘텐츠가 미래산업이다.
문화재 체제도 이제 계승‧활용‧미래의 국가유산 체제로 대전환한다. 이러한 대변혁의 시점에서 변화와 위기에 대한 해법으로 디지털이 부상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은 우리 유산의 미래가치 창출이다. 새로운 산업영역 개척, 일자리 창출, 지역경제의 관광콘텐츠, 미디어 예술작품으로의 향유 증진 등 혁신을 견인하는 원동력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지난 11월 8일 처음으로 ‘대한민민국 밤밤곡곡 100’을 선정해 발표했다. 지역의 매력적인 야간경관이나 밤에만 체험할 수 있는 이색적인 프로그램을 소개해 야간관광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한 것이다.
선정된 100선에는 연중 상시 관람할 수 있는 야간경관, 유원시설, 야시장뿐만 아니라 특정 기간에 진행되는 투어프로그램, 축제/이벤트, 미디어아트도 포함됐다. 올해 진행된 ‘문화유산 미디어아트’ 8개 중에서는 2개가 선정됐다. 부여 문화유산 미디어아트와 익산 미륵사지 미디어아트 페스타. 문화재청과 각 지자체에서는 미디어아트 브랜딩과 체류형 관광 마케팅의 시너지효과까지 확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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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4년 차인 내년부터 문화유산 미디어아트가 ‘국가유산 미디어아트’라는 명칭처럼 그야말로 한국의 유산관광을 브랜딩하는 비전을 제시하고 그 효과를 증명해야 한다. 단편적 축제·행사로 그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방문의 매력요인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휴먼웨어가 중요하다. 외지인 방문의 촉매제로, 우리 지역의 브랜드 콘텐츠로 접근하는 마케팅적 마인드, 장인 정신이 작금의 유산관광에 요구되는 화두다.
기초자치단체 시·군·구 문화관광 부문 예산 내역에서 총사업비 17.4억 원 규모(내년 16억 원)면, 단일 프로젝트로 대형 사업일 것이다. 그러므로 충분한 파급효과 창출이 중점과제다. 매너리즘에서 벗어나 애정과 열정, 디테일로 준비해야 한다. 담당 공무원이 행정가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PD 역할이 돼야 한다. 관광명소 설계자, 디지털 콘텐츠 개발자, 실외 전시 기획자, 유산 활용 계획가로서 프로듀서 정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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