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기술이 발전하려면 금융권이 솔루션 구매 비용을 많이 써야 한다. 그러나 블록체인은 탈중앙화돼 있어 은행 같은 중앙화된 회사로선 접근하기 어려운 측면이 많았다. 토큰증권이 등장하면서 은행이 블록체인을 사업에 접목할 아주 좋은 기회가 생겼다."
류창보 농협은행 기업디지털플랫폼부 신사업제휴팀장은 27일 개최된 '차세대 웹 컨퍼런스'에서 이같이 말했다. 류창보 팀장은 사내에서 가상자산, 핀테크 기업과의 제휴를 통한 신사업 업무를 담당해왔다. 류 팀장을 비롯해 그동안 은행 내 블록체인 담당 인력들이 다양한 사업 모델을 모색했지만 성과가 여의치 않았는데, 토큰증권 시장이 열리면서 적합한 활용처를 찾았다는 것이다.
류 팀장은 우선 은행이 블록체인 활용을 시도했으나 크게 성과를 거두지 못한 사례들을 소개했다. 블록체인 기반으로 원리금수취권 증서를 만들어 모바일로도 조회할 수 있는 기술을 구현했지만, P2P 대출 시장이 기대보다 활성화되지 못해 2년만에 사업을 접어야 했다. 모바일 출입증도 직원들의 편의성을 높일 아이디어로 시도됐지만, 지역 지점들마다 사용하는 보안 회사들이 다르다는 현실적 어려움 때문에 실제 서비스로 도입되지 못했다.
그동안 블록체인을 꼭 써야 할 영역을 찾지 못한 은행 담당자들이 최근 주목하고 있는 분야가 토큰증권이라고 했다. 실물 또는 무형의 자산 권리를 증권화하고, 이 증권을 디지털화하는 과정에서 블록체인을 연계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다.
시장 가능성도 높게 평가되고 있다. 하나금융연구소는 토큰증권 시장이 오는 2030년까지 367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 2월 금융 당국이 토큰증권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제도권 편입이 추진되는 가운데, 사업 특성상 증권사들이 향후 시장 흐름을 주도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와 달리 법규 상 가능한 업무만 할 수 있는 은행이 진입 가능한 시장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갖는 시선이 있다.
이에 대해 류 팀장은 "증권과는 다른 방향에서 사업 기회가 있다고 보고 있다"며 "은행이 제공하는 계좌, 결제 기능은 일종의 플랫폼 비즈니스로, 분산원장이나 전자지갑 등의 형태를 빌어 제공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위원회 토큰증권 가이드라인에도 생태계 플레이어 중 하나로 은행이 명시된 부분이 있다고 첨언했다.
농협은행의 사업 추진 전략도 소개했다. 조각투자 사업자들의 토큰증권 발행을 지원하는 것이다. 류 팀장은 "당국 가이드 상 조각투자 사업자는 투자 예치금을 외부기관에 분리 보관하도록 돼 있다"며 "이를 지원하는 API를 제공하고 있고, 향후 분산원장 기반 플랫폼도 제공해 조각투자 사업자들이 별도 블록체인을 구축하지 않고도 자산을 토큰화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농협은행을 비롯한 토큰증권 사업 컨소시엄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증권이라는 사업 특성상 개별 은행이 아닌 은행권이 연합해 서비스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초기엔 농협은행이 컨소시엄을 주도했지만, 현재는 은행연합회가 주도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이런 결과 조각투자 전용 API를 구축했고, 올해 들어 7개 사업자와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류 팀장은 "2015년부터 금융 서비스를 API로 제공해왔는데 조각투자 사업자에 필요한 패키지 서비스를 API로 구축했다"며 "시장에 진입하려는 사업자 입장에서 가격에 특히 이점이 있는 서비스이고, 농협 외 은행 계좌도 사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저희가 자체 고안한 투자자 보호 장치도 적용돼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조각투자 대상이 되는 자산 특성에 따라 커스터마이징을 지원하고, VAN사를 경유하지 않는 구조로 전용선 비용도 절감할 수 있는 점도 이점으로 꼽았다.
조각투자 사업자 입장에서 은행 담당자와 신속하게 소통할 수 있는 체제를 갖췄다는 것도 강조했다.
류 팀장은 "신사업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이 주인(담당자) 찾기"라며 "제휴사인 빗썸이 요청한 업무사항에 대해 8개월이 걸려 담당자를 찾은 적도 있었는데, 조각투자 API의 경우 이런 정비가 끝나 빠른 사업 진행이 가능하다"고 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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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은행이 검토하고 있는 디지털화폐(CBDC)가 도입될 경우, 토큰증권 산업에 긍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란 전망도 밝혔다.
류 팀장은 "현재는 투자자에 할당한 가상계좌에서 사업자 쪽으로 자금이 이동하고, 자금을 다시 법인통장으로 빼 정산을 한 뒤 조각투자 증권을 투자자에게 지급하는 방식이라 복잡할 수밖에 없다"며 "CBDC가 도입되면 예금토큰과 증권토큰을 맞바꾸는 간단한 방식으로 구현할 수 있고, 한은의 CBDC 도입 검토 계획에도 이런 부분이 언급돼 있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