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광장시장 먹자골목은 주말뿐 아니라 평일 낮에도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가득 하다.
점심 식사를 하러 온 직장인들은 물론 우리나라로 여행을 온 외국인들이 빈대떡, 마약김밥, 순대, 떡볶이 등 다양한 음식들을 맛보기 위해 광장시장을 찾기 때문이다.
23일 목요일 오후에도 광장시장은 음식을 먹으려고 긴 줄을 서는 손님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상인들도 손님들 맞이에 정신 없이 분주했다. 광장시장 한가운데 다닥다닥 붙어 있는 점포들. 열 걸음도 채 움직일 수 없는 그 작은 한 칸 안엔 이마에 머리띠를 동여맨 상인들이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수제비를 끓이고 빈대떡을 굽는다.
손님들이 많다는 것은 상인들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이다. 이날도 손님들을 환한 미소로 맞이하는 상인들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환한 얼굴과 달리 속이 타들어 가는 일도 있다고 한다. 바쁜 틈을 타 계좌이체를 해주는 척 '먹튀(먹고 튄다는 뜻의 신조어)'하는 얌체 손님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 먹고 이체하는 척…"자기 계좌에 셀프이체도"
"언제 한번은 계좌이체 할 줄 모른다고 은행 가서 돈 뽑아오겠다 해놓고 안 온 사람도 있었어. 나쁜 손님들 때문에 우리만 더 나쁜 사람이 돼가는 것 같아"
광장시장에서 칼국수를 파는 60대 여성 정모씨는 힘이 푹 빠진 얼굴로 기자에게 푸념을 늘어놓았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일하러 나오고 밤 12시 가까이 집 들어가서 피곤해 기절하는데 이런 일 당할 때마다 속상해 죽겠어"라며 울상을 지었다.
비단 몇몇 상인들만 당하는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상인들이 정신 없는 점심시간임에도 손님들이 돈을 잘 보냈는지 휴대전화 화면을 끝까지 확인하는 모습을 쉽게 포착할 수 있었다.
끝까지 보지 않으면 '이체 완료'를 안 누르고 눈 깜빡할 사이에 가버리는 손님들도 있기 때문이다. 계좌랑 입금할 금액 누르고 이체하는 '척'까지만 한다는 것이다. 바쁜 상인들이 끝까지 제대로 확인을 못 하는 상황이 많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호두과자를 파는 50대 남성 박모씨는 "지난주쯤 남자 셋이 와서 호두과자를 1만원어치 사 가는데 바빠서 마지막에 '이체하기' 버튼까지 못 보니까 슬쩍 휴대전화를 빼더라고"라 말하며 "혹시 몰라 그 친구들 가자마자 은행 앱에 들어가 봤는데 역시나 돈이 안 들어왔어"라 토로했다.
닭발집을 운영하는 70대 여성 정모씨는 "손님이 자기 휴대전화에 찍힌 출금 내역을 보내줬는데 우리한텐 안 들어온 거야. 자세히 봤더니 자기 다른 계좌에 '셀프 이체'를 했더라고. 딱 걸렸지"라 목소리를 높였다.
◇ "띵동" 소리가 들려와도 '제값 들어왔을진 몰라요'
"'띵동' 소리 나길래 입금된 줄 알았지. 근데 200원만 찍혀 있더라고"
돈이 입금됐다고 알리는 '띵동' 소리에도 상인들은 안심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정씨는 "1만2000원 먹어놓고 1원 보낸 사람도 있었어. 많으면 하루에도 한두 번씩 당해. 집 가서 딱 은행 앱 켜보면 1원, 200원 이렇게 찍혀있는 게 있다니까"라 말했다.
분식집을 운영하는 임모씨도 "지난 주말쯤 4만7000원어치씩이나 먹고 1만3000원 받고 간 사람들이 있었다"며 "바빠서 입금 알림 소리만 들었는데 이렇게 3만원 넘게 덜 낼 줄은 몰랐지. 재룟값도 못 건졌어"라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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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소액이더라도 이 같은 '먹튀' 행위는 분명한 범죄 행위라고 강조했다. 양태정 변호사(법무법인 광야)는 "아무리 소액이고 입금자명을 바꿔도 계좌이체 내역 있으면 바로 누구인지 특정할 수 있다"며 "이런 경우 사기죄가 성립돼 처벌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제공=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