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인 바이낸스가 미국에서 위법 행위를 인정하고 수조원대 벌금을 내게 되면서, 바이낸스를 주요 주주로 둔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고팍스가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고팍스는 올초 바이낸스가 최대 주주가 된 이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을 여러 번 교체하며 금융정보분석원(FIU)에 가상자산사업자 변경신고를 수리받기 위해 노력했다. 그럼에도 진척이 더디자 국내 IT 기업인 시티랩스도 주주로 추가하는 등 당국의 우려를 씻어내려 해왔다.
고팍스의 변경신고 수리 여부는 사실상 당국이 바이낸스의 국내 시장 진입을 허용할지에 달려있다는 것이 업계 대체적인 시각이다. 그런데 바이낸스가 자금세탁방지 규제 등 미국 법규 위반으로 제재를 받게 된 것이다. 금융 당국이 그 동안 해외 사업자인 바이낸스에 가졌던 우려에 신빙성이 더해졌다는 관측이다.
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 법무부는 바이낸스에 대한 제재 조치를 발표했다. 수사 결과 바이낸스 경영진이 의도적으로 개입해 은행보안법(BSA) 위반, 송금업체 등록 불이행, 국제비상경제권법(IEEPA) 위반 행위를 저지른 사실들이 발견됐다. 자금세탁방지 체계를 미비하게 구축해 각종 사이버범죄 수익이 바이낸스를 거쳐간 점도 확인됐다. 이와 관련해 바이낸스는 43억 달러 수준의 벌금을 부과받았고, 창펑 자오 최고경영자(CEO)도 사임하게 됐다.
가상자산 업계는 FIU가 고팍스에 대한 가상자산사업자 변경신고 심사 과정에서 바이낸스의 제재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것으로 봤다. 특히 우리나라 금융 당국이 가상자산을 악용한 자금세탁 가능성을 중점적으로 우려하는 점을 고려한다면 고팍스가 변경신고에 대해 불수리를 받을 수 있다는 의견도 나타났다.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바이낸스가 범죄 사실을 인정했기 때문에 우리나라 금융 당국으로서도 바이낸스의 국내 시장 진출을 불허할 사유가 생긴 것"이라며 "변경신고 수리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바이낸스는 이번 제재에 따라 미국인 대상 서비스를 완전히 차단하고, 미국 현지 법인인 바이낸스US를 통해서만 가상자산 거래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또 중국계 인물인 창펑 자오 전 CEO가 물러나면서 미국 당국의 바이낸스 제재가 일단락될 것이란 전망 하에 바이낸스에 대한 사법 리스크가 상당 부분 해소된 것으로 보는 해석도 있다. 때문에 오히려 지지부진하던 고팍스의 변경신고 절차가 순탄하게 진행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 전개를 단언할 수 없고, 바이낸스가 이번 제재로 드러난 사실 외 측면에서도 각국 당국이 우려할 소지가 있다는 의견도 등장했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미국 법무부의 제재 초점은 엄밀히 말해 퇴임한 창펑 자오 전 CEO가 아니라 바이낸스라는 회사로, 창펑 자오가 물러난다고 해서 미국 당국이 바이낸스에 대한 예의주시를 거두지 않을 것"이라며 "바이낸스는 본사도 여전히 투명하게 밝히지 않고 있어 고팍스 변경신고에 대한 우리나라 당국 고심이 깊어질 것 같다"고 전망했다.
고팍스로서는 경영을 정상화하기 위해 FIU 변경신고를 조속히 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 회사는 가상자산 예치 서비스 '고파이'에서 발생한 700억원대 이상의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유동성 확보 방안을 모색하다 바이낸스의 투자를 받게 됐다. 투자 계약 이후 바이낸스가 고파이 투자자들에게 금액 일부를 상환했으나, 계약에 따른 국내 행정 절차가 마무리돼야 남은 금액을 상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고팍스는 올초부터 변경신고서를 접수해왔으나, 임원진이 계속 변경되면서 서류를 재접수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올초 바이낸스 출신 인물들이 등기이사에 올랐지만, 변경신고 심사 기간이 계속 연장되면서 수리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한국인으로 대표를 교체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상황이 변하지 않자 시티랩스를 1대 주주로 두고 바이낸스는 2대 주주로 경영에 참여하는 방안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티랩스는 지난 15일 고팍스 지분 8.55%를 취득했다고 공시했다. 고팍스 대표에는 지난달부터 조영중 전 시티랩스 대표가 선임된 상황이다.
고팍스는 이르면 연말 가상자산사업자 변경 신고서를 접수한다는 계획이다.
고팍스 관계자는 "바이낸스와 시티랩스 간 협상 상황과 관계없이 빠르면 연말 또는 내년 초 가상자산사업자 변경신고서를 접수할 계획"이라며 "바이낸스의 지분 매각 협상은 주주 간 논의 사안이라 이사회를 거쳐 전달받기 전까진 협상 마무리 시점과 내용을 예상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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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법 상 금융 당국은 변경 신고서 접수 후 45일 내로 수리 여부를 통지해야 한다. 그러나 서류 보완을 요청하면 보완 기간은 별도로 산정돼 실제 수리 기한은 예상하기 어렵다.
조원희 법무법인 디라이트 대표변호사는 "신규 가상자산사업자 신고의 경우 각종 요건이 있어 이를 충족하지 못했을 경우 당국이 불수리할 수 있도록 돼 있는 반면, 변경신고의 경우 원칙적으로는 당국이 불수리를 결정할 사안은 아니다"라며 "주주인 바이낸스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더라도 법령 상 정부가 가상자산사업자의 주주나 임원을 바꾸라고 요청할 수 있도록 돼 있진 않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