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17일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 징역 5년에 벌금 5억원을 구형하자 삼성은 침묵을 지켰지만, 무거운 분위기를 감추지 못했다.
이날 삼성은 "공식적인 입장이 없다"고 전했다. 하지만 사법 리스크로인해 이 회장의 경영 활동에 제약이 뒤따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이날 검찰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박정제 지귀연 박정길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 결심 공판에서 이 회장에게 징역 5년에 벌금 5억원을 구형했다. 또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 김종중 전 전략팀장에게는 징역 4년 6개월에 벌금 5억원을,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에게는 징역 3년에 벌금 1억원, 이왕익 전 삼성전자 재경팀 부사장에게는 징역 4년에 벌금 3억원을 구형했다.
검찰은 "이 회장이 혐의를 부인하는 점, 최종 의사 결정권자인 점, 실질적 이익이 귀속된 점을 고려해 이같이 구형했다"며 "그룹 총수 승계를 위해 자본시장의 근간을 훼손한 사건"이라고 밝혔다.
삼성은 재판부의 1심 선고 결과에 따라 앞으로 삼성 경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촉각을 세우고 있다. 재계에서는 예상보다 검찰 구형이 세다며 무거운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이 회장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직접 개입하지 않았고, 합병은 경영상의 목적이었다고 주장해 온 만큼 선고 시 집행유예로 낮춰지거나 무죄에 기대를 걸고 있다.
검찰이 징역형을 구형했음에도 통상 법원은 검찰의 구형량보다 1~2년을 감경해서 선고하는 경우를 감안하면 이 회장은 집행유예가 선고될 가능성이 남아 있다. 형법상 집행유예는 3년 이하의 징역을 선고하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집행유예가 선고되면 이 회장은 자신이 받는 혐의가 인정된 결과란 점에선 달갑지 않겠지만, 실형 선고에 따른 구속을 면하게 돼 총수의 구속으로 그룹이 경영상 위기를 맞는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게 된다. 만약 이재용 회장이 국정농단 뇌물죄 이후 또 다시 구속된다면 삼성은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해야 한다.
이 회장 등 재판의 경우 검찰 수사 기록만 19만 페이지, 증거 목록만 책 네 권에 이를 정도로 증거가 방대한 만큼 1심 선고 결과는 일러야 내년 초에나 나올 전망이다.
재판 결과에 따라 삼성의 경영에 큰 변화가 따른 것으로 보인다.
재계에서는 "이 회장 대신 각 사 대표이사들이 일상 업무를 문제없이 이끌어가겠지만 투자와 같은 중대한 의사결정은 총수가 아닌 전문경영인이 대신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이에 삼성의 미래 전략 속도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우려된다.
삼성은 이 회장이 국정농단 사태로 2017년 2월부터 구속된 이후 약 8년째 '사법 리스크'에 발목이 잡힌 상태다. 이 회장은 지난해 8·15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복권된 이후 해외 출장 등 글로벌 행보에 다시 나서고 있지만, 재판으로 인해 여전히 경영 활동에 제약이 따를 수 밖에 없다.
특히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 삼성전자의 선제적인 반도체 투자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메모리 시장 불황으로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은 올해 대규모 적자를 이어가고 있다. 대만 TSMC와 경쟁 중인 파운드리 사업에서는 미국 인텔을 비롯해 일본 연합 등이 가세해 긴장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2042년까지 300조원을 투자해 세계 최대 규모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축하기로 했고, '제2의 반도체'로 육성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친 바이오 사업에는 향후 10년간 7조5천억 원을 추가 투자한다고 밝힌 만큼 총수의 역할이 그 어느때 보다 필요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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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삼성의 대형 인수합병은 2016년 전장기업 하만 이후 8년째 맥이 끊겨 신성장동력 확충을 위한 인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대형 인수 역시 이 회장의 결단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은 최근 불확실한 글로벌 경제를 비롯해 미중 갈등에 따른 반도체 리스크, 하반기 실적 악화 예고, 주가 부진 등 산적한 과제를 안고 있다"며 "이 회장이 사법 리스크를 털어내고, 미래 성장 준비에 적극 나서야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