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두고 재개된 제17차 의료현안협의체에서 정부와 의료계의 첨예한 입장차가 재확인됐다. 대한의사협회는 정원 확대 강행 시 강경투쟁을 불사하겠다며 경고했고, 정부는 ‘직역 이기주의’로 압박하는 등 회의 시작부터 팽팽한 신경전이 관측됐다.
이날 오후 서울 중구 비즈서브서울센터에서 개최된 제17차 의료현안협의체는 당초 지난 9일 열릴 예정이었지만 대한의사협회가 논의 위원을 교체하면서 6일 늦게 열렸다.
의협 제2기 협상단 단장을 맡은 양동호 광주광역시의사회 대의원회 의장은 복지부가 지난달 27일 시작한 전국 40개 의대 입학 정원 확대 수요조사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양 단장은 “정부의 수요 조사는 전혀 과학적이지도 객관적이지도 못하다”며 “수요조사를 진행하는 각 대학들의 대학들과 그에 딸린 부속병원, 그들 지역의 정치인과 지자체 모두 이해관계가 얽히고 설켜 발표되는 수요조사 결과는 현실을 왜곡하고 각자의 목적에 따라 변질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학은 의대 정원을 늘려 학교 위상이 높아졌다며 자랑하려 할 것이고, 부속병원은 값싸게 부릴 전공의들이 늘어난다는 생각에 들떠 있다”라며 “정치인과 지자체는 자신들의 표로 이어질 치적 잡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상황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의대 정원 수요조사는 고양이에게 얼마나 많은 생선이 필요하냐고 묻는 것과 별반 무엇이 다르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단편적이고 편향된 수요 조사가 그동안 정부에서 약속하고 주장해온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근거가 될 수 있는지 다시 한 번 묻지 않을 수 없다”며 “필수의료가 기피되고 외면 받고 있는 원인을 파악해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 뒤따라야 한다”고 밝혔다.
양 단장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의대정원 확대를 결정한다면 의료계는 지난 2020년 이상의 강경투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올해 건강보험 의료비 인상률이 1.6%로, 물가 상승률 5% 대비 낮다는 점을 들어 수가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의사 수 증가는 의료보험료 증가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주장했다.
아울러 “(의료체계를)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제도로 바꾸면 몇 년 안에 필수 의료분야로 의사들이 몰릴 것”이라며 “저수가를 정상화하고, 의료사고특례법을 제정해 의사들이 마음 놓고 진료에 임할 수 있는 의료 환경을 만들면 필수 의료는 당연히 정상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복지부 “의대 정원 확대 반대는 직역 이기주의”
정경실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앞서 주장을 반박하며 강경한 태도로 의협을 압박했다.
정경실 국장은 “그간 의협은 전 세계 국가와 학계가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OECD 통계를 외면하고, 과학적이고 학술적인 방식으로 연구한 다수의 국책연구기관의 의사 인력 수급 추계를 납득하기 어려운 논리로 부인해 왔다”면서 35개 지방의료원들과 병원계 및 대학들이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요구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이어 “(의협은) 이러한 현장의 목소리를 더 이상 외면하지 말고 의학교육의 현장과 지역의 요구를 포퓰리즘으로 치부하지 말아야 한다”며 “국민의 요구를 도외시하고 의사 인력 확충을 막는다면 직역이기주의라는 국민의 비판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 “더 이상 의대 정원 확대를 요구하는 국민과 대학, 그리고 필수의료 현장의 목소리를 의료 인력 재배치라는 현실성 없는 대안으로 가로막아서는 안 될 것”이라면서 “의대 정원을 늘리면 의료비가 상승하게 될 것이라고 했지만 필수 응급 의사가 없어서 응급실을 전전하고, 소아과 오픈런이 벌어지는 현실은 괜찮다는 것인지 다시 한 번 묻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면, 올라가는 의료비는 당연히 정부가 지출해야 하는, 지출이 마땅한 비용이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 국장은 “의대 정원 확대는 여야가 한목소리로 공감하는 정책이며 거의 모든 언론과 대다수의 국민들이 지지하는 정책”이라며 “이런 현실을 언제까지 딴 세상 얘기처럼 치부할 것이냐”고 반문했다.
아울러 “의협의 의료현안협의체 대표단 쇄신을 계기로, 의대 정원 증원에 대한 의협의 전향적인 입장 변화를 요청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