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업계 불공정 행위를 금지하기 위해 국회서 입법 추진 중인 문화산업공정유통법(문산법)이 오히려 신인 작가 등용을 막는 등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학계의 지적이 나왔다.
해당 법안은 2020년에 발의됐지만 검정고무신을 만든 고 이우영 작가가 출판사와의 저작권 분쟁 과정에서 갈등을 겪다 세상을 떠나 다시 재조명받았다. 검정고무신방지법, 이우영법으로 불리기도 한다.
다만 문산법은 중복 규제, 사적 계약에 대한 과도한 공적 개입, 시장 발전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재검토돼야한다는 목소리가 전문가들 사이에서 지속해서 나오고 있다.
15일 정보통신정책학회와 한국미디어정책학회는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문화산업공정유통법안, 이대로 좋은가' 세미나를 열고 문산법 점검과 학계 의견을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문산법은 문화상품의 제작·판매·유통 등에 종사하는 자가 불공정행위를 한 경우 관계 기관장에게 필요한 조치를 할 것을 요청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고 있으며, 지난 3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를 통과한 이후로 계류 중이다. 2020년 유정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법안과 지난해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 통합돼 논의되고 있다. 다만 획일적인 규율, 입증 책임 문제, 금지 행위에 대한 모호한 규정, 중복규제 등의 문제점이 있다.
발제자로 나선 이규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이러한 문제를 지적했다. 이 교수는 해당 법안을 언급할 때 고 이우영 작가와 만화 검정고무신이 언급되는데 이는 예술인 권리 보장법에서 충분히 다룰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관관계가 다른 사건을 감정적으로 연결해 문산법을 통과시키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문화산업의 이해가 충분히 이뤄졌으면 해당 법안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미 (제작업자와 유통업자간의 문제는) 공정거래법이나 전기통신사업법, 방송법으로 해결할 수 있어 포괄규제와 중복 규제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진 토론 자리에서도 같은 지적이 나왔다.
오병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 문제와 관련 검정고무신 사태를 계속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저작자와 권리보호, 예술인의 권리보호 사안이지 공정 유통하고 연결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는 이유에서 온정주의적 시각으로 해당 법안을 바라보면 안 된다. 법안을 통과시키려는 선동적인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을 경계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문화상품은 일반적인 공산품과는 다르기 때문에 대가가 어떻게 나뉘어야 하는지 정해지기 힘들고 유동적일 수밖에 없다"며 "성과가 없거나 낮은 저작권자는 가져가는 수익에 대한 낮은 비율을 감수하고서 시장에 진입해야 할 텐데, 해당 법안이 통과되면 무명작가들은 시장에 진입하기 어려워진다"고 꼬집었다.
이미 흥행이 보장된 저작권자에게 계약이 쏠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승민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또한 검정고무신 사태는 잘못된 계약에 의해 발생됐으며, 이를 규제 법안 근거로 삼는 것은 정당화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저작권 계약 시 서면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아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있는데, 문산법에는 이러한 내용은 담겨 있지 않다"며 서면계약 체결 의무 조항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권남훈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과도한 법적 개입은 문화산업과 생태계 발전에 저해가 될 뿐만 아니라 중소사업자의 보호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최영근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벤처산업 관점에서 봤을 때 문산법이 실행될 경우 웹툰플랫폼과 같은 디지털콘텐츠플랫폼은 불확실성이 높은 신인 창작자들에게 투자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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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들이 문체부 산하 공공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불확실성이 낮은 유명 창작자들의 작품만 유통시키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최 교수는 "산업 생태계 초기에는 정부가 개입하는 것이 필요할 수 있지만 발전 단계에서는 지원을 하고 규제를 철수하는데 왜 역행하고 있는지 답답하다"며 "차라리 문체부 산하에 직접 플랫폼을 만들어 운영하면서 몸소 체험한다면 해당 법안의 문제점 체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