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서 학교 설립 부친 영향 소프트웨어 인재 양성 40년 조현정 회장

[특별대담-①] 비트교육센터 투자 교육생 종횡무진 활약

인터뷰입력 :2023/11/13 17:35    수정: 2023/11/14 14:37

2023년은 여러모로 뜻 깊은 한 해다.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는 1년을 맞았으며, 윤석열 정부의 디지털헬스 원년으로 다양한 산업 육성책이 추진됐다. 동시에 디지털과 헬스케어를 접목, 여러 혁신적인 사업을 해온 비트컴퓨터가 창립 40주년을 맞는 해다.

지디넷코리아는 새해를 앞둔 2023년 말 조현정(66) 비트컴퓨터 회장과 특별대담을 마련했다. 소프트웨어와 디지털헬스 분야를 개척해온 비트컴퓨터가 걸어온 길은 곧 우리나라 정보통신기술(ICT) 역사라 부름직하다.

비트컴퓨터 40년사를 통해 본 대한민국 ICT 역사와 비화는 퍽 흥미진진할 것이다. 어쩌면 먼지 수북한 이야기처럼 느껴질 지도 모르겠다. 흑백 과거 사진을 들추는 것뿐이 아닌 곧 우리가 맞이할 새해의 기술 혁신과 디지털 혁명에 영감을 줄지 누가 알겠는가.

대담은 이균성 논설실장이 진행했다.

조현정 비트컴퓨터 회장 (사진=김양균 기자)

중학교 갈 돈도 없었지만 二代 걸쳐 교육 집념

-요즘 스타트업 창업자들 얼굴이 밝습니다. 벤처 선배들의 영향으로 후배 기업가들이 재밌게 사업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더군요.

“그 말을 이제 하면 어떡합니까.(웃음) 산업 생태계를 만들자고 13명이 벤처기업협회를 창립했어요. 창립 멤버 중에 현역은 우리만 남았죠.” 

-생태계를 만든 것은 결국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겠다는 건 아닐 텐데요. 회장님은 기업가, 교육자, 사회활동 중에 뭐가 가장 잘 맞는 것 같습니까.

“제일 마음이 드는 건 인재 양성, 그러니까 좋은 사람 키우는데 지원하는 역할이죠. 사실 그건 아버지 때부터 시작된 거예요. 당신이 세운 초등학교도 있으니까요.”

-아버지가 교육자였나요.

“교육자는 아니었지만 1948년 지역에 학교도 짓고 사회 공헌을 많이 하시다 제가 6살때 돌아가셨어요. 이후 전 중학교에 다닐 때 돈이 없어서 1학년만 마쳤어요. 전 서울로 올라와 학교를 그만두고 기술을 배웠어요. 당시 중학생은 빡빡머리고 고등학생은 스포츠형 머리였단 말이에요. 학교를 안 다니는 터벅머리라 저기 앞에서 중학생들이 떠들면서 오는데 곁을 지나갈 용기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뒷골목으로 돌아가기도 했으니 많이 서러웠죠. 

아버지가 원망스러운 때도 있었지만 존경하는 마음이 더 컸어요. 지금도 학교에는 아버지 공적비가 세워져 있어요. 저도 학교에 지원을 해왔는데 학생 수가 줄어서 분교로 갈 상황이더라고요. 스쿨버스를 운영해서 인근에서 학생 통학을 시켜서 지금도 잘 운영되고 있어요.”

-1990년 비트컴퓨터 부설 C교육센터(현 비트교육센터)가 설립됐습니다. 직원들 반응은 어땠습니까.

“직원들이야 사업해서 돈을 벌어서 교육센터에 지원하는 게 답답하긴 했겠죠. 속으로 투덜투덜했을 겁니다. IMF가 터지니까 채용 시장이 얼어붙었는데 비트교육센터가 유일한 취업 창구였어요. 센터 출신은 실력이 좋으니까 전부 취업을 했어요. 기업들은 다음 달에 센터 출신 3명을 뽑을 수 있다고 하면 기존 직원을 내보내고 센터 출신을 뽑으려고 했습니다. 기업 선호도가 높으니까 매달 센터에 들어오려는 교육생이 130명 정도까지 늘어났어요. 교육생 면접만 천 명씩 봤죠. 우리 회사 주요 개발자들은 다 교육센터 출신이에요.”

당시 ICT 분야에서는 실무능력을 갖춘 고급 IT인력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다. 프로그래머의 90% 이상이 COBOL을 사용했는데 COBOL로는 system SW를 만들 수 없었다. 센터를 통해 C랭귀지를 대중화하자는 게 비트교육센터의 목표였다.

-ICT 분야에서 실무 교육의 중요성이 증명된 셈이군요.

“그렇지요. 지금이야 대부분의 교육 기관이 프로젝트 형태의 커리큘럼을 짜지만 당시는 우리가 유일했죠. 그걸 업계에서 벤치마킹한 겁니다. ‘월화수목금금금’으로 독하게 교육시켰죠. 교육 수료 이후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후배들을 보는 게 저의 가장 큰 보람입니다. 장학재단도 설립해서 후원을 하기도 했고요.”

비트교육센터는 올해 6월 기준 고급 IT개발자가 총 9천327명 배출됐다. 총 102개 기업과 기업맞춤형 신입사원채용교육을 통해 1천230명의 개발자가 전원 해당 기업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활동 중이다.

-교육 센터 출신을 ‘조현정 사단’이라고 부르더군요.

“‘비트 사단’이 더 적당할겁니다. 10주년때 1천400명이 한 자리에 모인 적은 있었어요. 전 센터 출신과 직접 소통하지 않아요. 지금 현직 교수만 8명 정도이고, 비트교육센터 출신들이 우리사회에 큰 역할을 하고 있어요.”

월스트리트저널은 1989년 1월 아시아판 1면에 비트교육센터를 조명하는 기사를 보도하기도 했다.

비트컴퓨터 40년 “안 망하는 회사”

-오래된 것에는 지속 가능한 뭔가의 본질이 있습니다. 그 본질을 잘 알아보는 게 중요하지요. 그러니 40년간 지속되어온 비트컴퓨터도 할 말이 많을 것 같습니다.

“전 집이 망해봤습니다. 학교를 세울 정도로 부잣집의 아들이 집이 망해서 중학교를 못 다녔고 졸업장이 없어요. 처절한 경험을 한번 했으니까 내 주변이 망하면 안 되는 구조를 고민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안 망하는 회사를 만들고 싶었어요.

우리 매출은 대부분 구독형이에요. 요샛말로 구독경제이죠. 때문에 매출은 등락이 별로 없어요. 고정적으로 매년 유지되니까 대외환경 변화에 영향을 덜 받죠. 강한 회사가 살아남는지와 살아남은 회사가 강한지 사이에서 전 살아남는 모델을 선택한 겁니다.

IT업계에서 규모의 경제가 되어야 이익을 남긴다는 견해에 대해 신뢰하지 않습니다.

지나친 매출 목표지향의 SI기업들이 해를 거듭할수록 어려워하는 것을 많이 봐왔기에 SI성 매출을 최소화했습니다. 신기술 적용은 IT기업의 숙명이지만 매출의 성과로 빠르게 돌아 오질 않기 때문에 빠른 결정도 조심스러웠습니다. 메타버스를 안하면 큰일이 날 것처럼 말하곤 했지만 지금은 한풀 꺽였죠.”

-그러니까 기업 경영에서 최고의 화두는 ‘지속 경영’이고, 자기 체력에 어울리는 체급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죠. 그럼에도 클라우드 환경에의 변화처럼 기민한 대응도 필요하지 않습니까.”

“우리사회의 제도와 기술을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규모의 경제나 속도 경영이 지속가능할 수 있는가, 과연 적절한지에 대해 늘 고민합니다. 환경 변화에 민감하지 않았으면 지금까지 오지 못했을 겁니다. 의료 서비스를 원무 관리에서 시작해 발 빠르게 전자의무기록(EMR)과 의료영상저장전송시스템(PACS) 개발 결정 등이 대표적입니다. 기업을 하면서 지속가능함을 핵심 모토로 여겨왔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