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절약 등의 이유로 네트워킹 인프라를 멀티 벤더로 구축하고자 한다면 고려해야 할 점들이 많다. 우선 각사에서 지원하는 네트워크 관리 솔루션을 각각 구입해 써야 한다. 실무로 들어가면 기존에 쓰던 장비 외 다른 벤더사 장비에서 쓰는 명령어도 추가로 숙지해야 한다. 장비에 문제가 생길 경우 연락해야 할 유지보수 업체 관리 품이 두 배 이상 늘어나게 되는 것도 마음의 짐이다.
이런 저런 이유들 때문에 멀티 벤더 기반 네트워킹 인프라를 채택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비용이 꽤 비싸더라도 혹은 더 비싸지더라도, 처음에 택한 네트워킹 벤더를 계속 도입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주니퍼네트웍스는 '인텐트 네트워킹'을 이런 어려움을 덜어주는 기술로 활용하고 있다. 인텐트 네트워킹은 사용자의 의도(intent)를 읽어 네트워킹을 제어해주는 방식으로, 네트워킹 인프라 관리를 보다 간편하게 지원하는 기술이다. 주니퍼네트웍스는 특히 멀티 벤더를 지원하는 전문 솔루션 기업 앱스트라를 인수해 이런 기술 역량을 갖췄다.
김현준 한국주니퍼네트웍스 이사는 지난 2021년 인텐트 네트워킹 전문 기업 앱스트라 인수가 완료된 뒤, 한국에서도 인텐트 네트워킹 솔루션 보급 사례가 점차 늘고 있다고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금융기관의 민감한 인프라와 제조사 등에도 납품이 이뤄졌다.
김현준 이사는 "원래 앱스트라를 제외하고 장비만 납품했던 고객사가 네트워킹 관리에 부담을 느껴 앱스트라를 도입한 사례도 있다"며 "인텐트 네트워킹 시장이 연 평균 성장률이 42%로, 앞으로도 기술의 이점이 주목을 받아 보급이 확대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Q. 앱스트라 솔루션을 소개하자면.
"네트워크의 설계, 구축, 배포, 운영 과정에 필요한 단일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다. 네트워크 설정이나 토폴로지에 대한 자동 검증을 하고, 검증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설정이 배포되지 않게 해준다. 모니터링이나 분석 단계에서 장애가 발생하면 관련 로그를 취합해 원인 파악을 해주고, 잘 작동했던 설정으로 복구하는 기능도 지원한다.
주니퍼네트웍스뿐 아니라 다양한 회사의 네트워크 장비도 관리할 수 있다. 앱스트라가 인수되기 전 이런 회사들과 협업하면서 모든 벤더사 장비를 통합할 수 있는 역량을 갖췄기 때문이다. 데이터센터의 네트워크 인프라를 자동화하고 이를 검증하는 동시에 모니터링하고, 합리화해준다. 복잡도를 줄이고 관리를 간소화하고, 운영비용을 절감하는 솔루션으로 쓰이고 있다.
네트워크 규모를 늘릴 때 유용한 솔루션이기도 하다. 10대 미만의 장비를 쓰는 환경이라면, 관리자가 어떤 포트에 어떤 장비가 연결되는지 다 인지할 수 있다. 그런데 사세가 커져서 네트워킹 인프라 규모가 두 배 이상이 되면 이걸 다 외울 수 없으니 엑셀로 내용을 정리하게 된다. 사세가 더욱 커지면 이 방법도 더 이상 소용이 없다. 이럴 때 앱스트라 같은 솔루션을 쓰면 도움이 된다.
실제로 객실 2천개를 보유한 호텔 데이터센터에 스위치 30대가 들어가는데, 네트워킹을 구성하기 위해 사람이 직접 8천900줄을 작성해야 했다. 여기서 설정 하나를 변경하려 하면 이 작성한 내용을 고치고, 여러 명이 잘 고쳐졌는지를 1차, 2차로 검증을 한다. 그런데도 오류가 생긴다. 대규모 데이터센터든 이것보다도 규모가 크다. 사람이 일일히 직접 다루는 방식으로 관리하긴 굉장히 어렵다. 앱스트라 솔루션은 설정 배포 과정에서 이런 휴먼 에러를 방지할 수 있다. 빅테크들은 이런 솔루션을 자체 개발해서 쓰는데 우리나라 기업들은 그러기 어렵다."
Q. 현재 데이터센터를 관리하는 기업들이 주로 겪는 어려움은?
"가장 큰 건 설정 문제다. 처음에 장비를 200대 설치하고, 이후에 100대가 들어오면 그 장비 간 설정이 미묘하게 다르다. 아무리 표준화하더라도 누가 설정했냐에 따라서 차이가 나는 경우가 많다. 사소한 변경을 하려 해도 굉장히 많은 공수가 들어간다. 큰 사업자들은 이런 준비가 비교적 잘 돼 있겠으나, 일반적으로 엔터프라이즈 데이터센터가 이런 데 투자하기 쉽지 않다. 해당 장비 특화 콘트롤러를 쓰더라도 문제를 해결하기 쉽지 않다. 특정 설정값을 입력하면 딱 그 내용만 전달되고, 전체적인 네트워크 설계는 사람이 직접 다뤄야 한다. 장비를 여러 대 연결해 네트워킹 체제를 구축하고자 하면 콘트롤러를 통해 각각의 장비에 접속하고, 설정을 일일히 해줘야 한다."
Q. 멀티 벤더 아키텍처는 국내 IT 환경에 어떤 실익을 가져다줄 수 있나.
"모 통신사 국사에 장애가 생겼을 때, 해당 통신사 국사에 연결돼 있던 사용자들은 네트워크가 필요한 모든 활동이 불가했다. 네트워킹 장비도 마찬가지다. 특정 벤더 장비만 도입하면, 해당 벤더사에 문제가 생길 경우 네트워크 전체에 지장을 줄 수 있다. 멀티 벤더를 쓸 수 있으면 쓰는 게 좋다.
가격 경쟁도 된다. 견적서만 있어도 가격이 드라마틱하게 떨어진다. 데이터센터를 멀티 벤더로 구축할 경우 가격 경쟁을 통해 낮춘 비용이 곧 회사 이익이 된다. 이런 점 때문에 요즘엔 벤더 두 곳 이상을 고려하는 기업들이 많다. 특정 기업이 수주했다고, 다음 번에도 수주할 것이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담당 인력이 두 벤더를 관리할 수 있도록 역량을 길러 비용을 절감하려고 하고, 기업도 그런 압박을 주는 편이다.
멀티 벤더를 사용하면 각 벤더사를 전문으로 하는 유지보수 업체들을 모두 관리하거나, 각 벤더사마다 지원하는 콘트롤러를 모두 써야 했다. 인텐트 네트워킹으로 이런 불편을 덜 수 있다."
Q. 인텐트 네트워킹 보급이 빠를 것으로 예상되는 시장은?
"가장 빨리 나올 수 있는 건 공공 쪽이다. 이젠 장비를 업그레이드한다고만 하면 사업 착수가 잘 안 된다. 구체적으로 업그레이드할 장비가 어떤 점이 좋아지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공공 프로젝트를 수주할 수 다. 장점이 명확한 인텐트 네트워킹과 잘 맞아떨어진다고 본다.
공공 시장은 보안기능 확인서를 받아야 진입할 수 있다. 저희도 확인서를 받아서 2028년까지 공공기관과 공기업 납품이 가능해졌다. 공공 쪽 공급 사례를 더 늘려나가려고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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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경쟁사들도 인텐트 네트워킹 분야에 진출했다. 어떻게 경쟁 우위를 가져갈 계획인가.
"자체 장비와 프로토콜만 사용하는 타사와 달리 주니퍼네트웍스는 기술 표준을 준수하는 프로토콜을 사용한다는 것이 차별점이자 경쟁력이 된다. 이를 통해 다양한 하드웨어 공급업체를 선택할 수 있도록, 멀티 벤더 인프라를 지원한다. 이런 점을 무기로 많은 레퍼런스를 확보하겠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