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가 최근 초거대 AI인 ‘믿음(Mi:dm)’을 출시했다. 지난해 11월 미국 오픈AI의 챗GPT가 나오면서 AI 돌풍이 분 뒤 약 1년 만이며 국내 초거대 AI로는 네이버와 LG에 이어 세 번째다. KT의 발표 가운데 유독 눈에 띈 것은 예상 매출이었다. 3년 뒤 1천억 원 안팎이 예상된다고 했다. 이를 위해 5년 동안 1조5천억원을 투자하겠다고 한다. 투자 대비 매출이 너무 적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다.
이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 것은 요즘 AI 분야 스타트업 대표들의 한숨 소리를 자주 들은 탓일지도 모른다. 이들의 고민은 크게 세 가지였다. 고금리가 길어지면서 투자 받기가 어려워졌고, AI를 위해 꼭 필요한 GPU 사용료가 너무 비싸다는 거였다. 현재 상황에서 사업을 유지하려면 더 투자를 받아야 하고 그러려면 과거와 달리 서둘러 수익모델을 매출로 입증해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은 모양이다.
모든 사업이 그렇듯 AI 기업이 매출을 일으키는 경로도 두 가지일 터다. 소비자를 상대로 서비스나 상품을 제공하고 돈을 받거나(B2C) 다른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거나 비용을 줄여줌으로써 대가를 받는 것이다(B2B). 문제는 그렇게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챗GPT의 뜨거웠던 바람과 달리 이의 상품화는 어쩌면 기대보다 훨씬 느린 속도로 진행될 지도 모른다.
B2B보다는 B2C가 더 힘들어 보인다. 챗GPT 유료 모델을 구독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거 말고 다른 모델까지 구독할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의심스럽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앱처럼 무료로 쓰게 하고 대신 광고나 다른 상품으로 매출을 일으키는 수익모델 또한 AI 기업이 할 일은 아닌 듯하다. 그런 수익모델은 빈틈을 찾을 수도 없을 만큼 이미 수많은 기업이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는 상황인 탓이다.
AI 기업은 그런 이유로 대부분 B2B 모델을 고민할 듯하다. AI가 다른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거나 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 당면 과제라는 뜻이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AI는 전혀 새로운 비즈니스가 아니다. 결국 IT 서비스일 뿐이다. 다만 좀 더 진보된 기술을 이용한다는 점이 다른 듯하다. 진보되었다는 의미는 당연히 컴퓨터가 사람에 더욱더 가까워졌다는 뜻이다.
컴퓨터의 지능이 올라가면 기업의 생산성 또한 높아지리라고 기대하는 게 당연하다. 기계적 계산 능력 뿐 아니라 인간을 닮은 추론 능력까지 갖추게 된다면 쓸모가 커진다고 보는 것 또한 당연하다. 문제는 비용이다. 중요한 것은 그 생산성을 믿고 기업이 AI에 투자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비로소 AI 시장이 열린다. AI 전문 기업이 해야 할 일은 다른 기업의 투자를 설득하는 작업이다.
미국 지디넷의 한 보도가 눈에 띈 것도 그 때문이다. 내시스퀘어드의 연례 디지털 리더십 보고서를 인용한 것이다. 생성 AI에 대한 열풍과 달리 기업들은 아직 이에 대한 투자에 주저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AI에 큰돈을 지출하는 비율이 지난 5년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유는 2가지다. 코로나19 팬데믹 때 이미 많은 디지털 비용을 지불한데다, 생성 AI를 아직 미성숙한 기술로 본다는 것이다.
이 보고서의 요지는 기업이 생성 AI를 외면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아직은 비용을 적극적으로 지불할 단계가 아니라 기술을 조사하는 단계라는 의미다. 결국 기업들이 생성 AI에 적극 투자하려면 두 가지 전제가 필요한 셈이다. 코로나19 때 투자한 디지털 비용 회수를 통한 자금 마련이 그 첫 번째이고, 생성 AI의 생산성과 안전성에 대한 확신 및 도입 비용 인하가 그 두 번째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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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 AI 생태계에서 현재 큰돈을 벌고 있는 곳은 AI반도체를 만드는 엔비디아다. 없어서 못 팔 상황이고 부르는 게 값일 정도다. 이는 AI반도체 경쟁이 더 치열해지고 그 이후 가격이 내려갈 것임을 뜻한다. 이 때가 기업들이 생성 AI를 적극 도입하게 되는 시기일 수 있다. 생성 AI 솔루션 전문 기업은 어쩌면 그때까지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자금난을 겪는 시련의 계절을 겪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고금리 상황이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투자 환경이 언제 개선될 지도 짐작하기 어렵다. 생성 AI에 새롭게 나선 작은 기업이라면 높은 뜻보다 단단한 내실을 더 챙겨야 할 시기일 지도 모르겠다. 투자 시장에서 시간이 갈수록 옥석가리기가 진행될 것이고 매출로 눈에 보이는 성장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외면당할 수도 있다. 거센 바람은 한 차례 지나갔고 이제 땅 깊숙이 뿌리를 내려야 하는 시기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