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시장을 두고 국가별 패권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베트남 정부가 자국 내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투자를 이끌기 위해 팔을 걷었다. 특히 베트남은 인도와 함께 중국을 대체할 새로운 글로벌 IT기기 생산기지로 지목되면서 새로운 반도체 수요처로 떠오르고 있다.
21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팜민찐(Pham Minh) 베트남 총리는 이번 주 미국 방문 일정 중 엔비디아와 시놉시스 본사를 방문해 자국의 반도체 산업에 더 많은 투자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시놉시스는 반도체 설계자산(IP) 및 EDA(설계 툴) 업체로 세계 점유율 톱3에 포함된다. 베트남에 반도체 디자인센터를 건설할 계획을 갖고 있는 시놉시스는 지난 18일 베트남 투자부와 지원에 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면서 베트남 시장 진출을 공식화했다.
시놉시스뿐 아니라 미국 반도체 후공정 업체 앰코는 하노이 인근에 반도체 패키징 및 테스트를 위한 대규모 공장을 짓고 있다.
찐 총리는 지난 19일(현지시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기술 비즈니스 포럼에서 "모든 투자자가 베트남에서 투자하고 사업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찐 총리의 이번 방문은 이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하노이 방문에 이어 이뤄졌다. 당시 양국은 반도체, 인공지능(AI), 핵심 광물 등 분야에서 협력을 발표했다.
베트남에 글로벌 반도체 기업 투자 활발…저렴한 인건비 경쟁력
베트남이 중국 반도체 칩 생산 대안 국가로 떠오르고 있는 배경은 중국 대체국으로 글로벌 기업들의 제조시설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베트남에는 최근 석·박사급 반도체 전문인력이 많이 배출되고, 인건비가 주요 국가보다 상대적으로 낮아 각광받는다.
한국은행 조사국 동향분석팀 박성하 연구원은 "베트남에는 국내외 주요 스마트폰 제조회사들의 생산시설이 다수 위치하기에, 반도체는 IT 완제품 생산을 위한 중간재로 사용되고 있다"며 "베트남은 풍부한 저임금 노동력과 중국 시장에 대한 높은 접근성을 바탕으로 글로벌 기업들의 제조시설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미 베트남에는 여러 글로벌 반도체 기업이 위치한다. 일본 르네사스가 2004년 베트남 최초의 시스템반도체 설계회사를 설립한 이후 미국 인텔이 2006년부터 베트남 호치민에 반도체 패키징 공장을 운영 중이다. 팹리스 업체 마벨, 종합반도체업체 온세미 등이 베트남 지사를 설립했다. 그 밖에 대만 리얼텍, 한국 기업으로는 서울반도체와 디자인하우스업체(DSP) 에이디테크놀로지(SNST 인수), 코아시아 등이 베트남 지사를 운영하며 현지 엔지니어를 활용 중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베트남의 반도체 인력은 대부분 일본 업체가 키워 놓은 인력"이라며 "예전 일본 르네사스, 도시바 등 업체들이 베트남에서 엔지니어를 뽑아서 교육하며 인력을 잘 키웠지만, 약 5~6년 전 사업을 축소하면서 해고된 인력이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베트남 인력들은 습득이 빠르고, 성실하며 이직을 자주 하지 않아서 선호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인력 부족은 넘어야 할 산…美, 베트남 현지 엔지니어 육성에 200만 달러 지원
베트남 정부의 적극적인 반도체 육성 정책에도 불구하고 전문 엔지니어 부족은 향후 해결해야 할 숙제로 지목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반도체 산업은 연간 1만명의 엔지니어를 양성해야 하는데 베트남의 현재 비중은 20%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베트남 전자부품협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베트남에는 5천500명 이상의 반도체 설계 엔지니어가 있으며, 대부분은 외국 기업에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베트남 엔지니어 수는 매년 약 500명 정도 증가하고 있지만,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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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미국은 베트남의 반도체 산업 인적자원을 육성하기 위해 200만 달러(26억7천만원)의 자금을 지원하기로 이달 베트남 방문 시 약속했다. 향후 투자는 베트남 정부와 민간 부문에서 이뤄질 예정이다.
트렌드포스는 "양국의 협력은 베트남이 글로벌 반도체 산업에 합류하기 위한 여정에서 중요한 진전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