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 이번에도 혁신은 없었다.
애플이 아이폰을 내놓을 때면 빼놓지 않고 나오는 기사 제목이다. 이번에도 그런 제목을 단 기사가 눈에 띄었다. 혁신은 도대체 뭘까? 뭐길래, 매번 이렇게 ‘혁신 실종’을 되뇌이게 되는 걸까?
애플이 아이폰15를 내놓은 날, 난 엉뚱하게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갑자기 궁금해졌다. ‘혁신’의 사전적 의미는 뭘까? 그래서 사전을 찾아봤다. 이런 뜻풀이가 눈에 띄었다.
“묵은 풍속, 관습, 조직, 방법 따위를 완전히 바꾸어서 새롭게 함.”
이 기준에 따라 생각해보니, 아이폰15에서 혁신을 찾긴 힘들었다. 2007년 오리지널 아이폰 이후 유지돼 왔던 기본 문법을 ‘완전히 바꾸어서 새롭게 한’ 것이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랬다. 그 기준을 적용했더니, 아이폰15에 혁신은 없었다.
■ 4할 타자 실종과 애플의 혁신 실종의 공통점
이런 생각을 하다가 엉뚱하게도 야구계의 해묵은 논쟁을 떠올리게 됐다. ‘4할 타자는 왜 사라졌는가’란 논쟁이다. 이 논쟁에 종지부를 찍은 건 진화 생물학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가 제시한 ‘굴드의 가설’이었다.
굴드는 방대한 야구 통계 분석 결과를 토대로 ‘4할 타자 실종’에 대해 간단하게 정리해줬다. 그가 내세운 논리는 간단하다. 타자들의 전반적인 타격 능력이 향상되면서 표준편차가 줄어든 때문이란 것이다.
다시 말해 4할을 웃도는 ‘천상계 타자’도 사라졌을 뿐 아니라, 2할 초반에 턱걸이하는 타자도 사라졌다는 것이다. (더 궁금한 분들은 굴드가 쓴 ‘풀하우스’란 책을 읽어보시라.)
아이폰15에서 혁신이 사라진 건 맞다. 그런데 그건, 사실, 애플 잘못이 아니다. 오히려 삼성전자를 비롯한 쟁쟁한 경쟁자들 때문이다. 이제 애플과 삼성은 대등한 수준에서 경쟁하고 있다. 그러니, 애플이 ‘스마트폰 시장의 관습을 완전히 바꾸어서 새롭게 할’ 정도로 뛰어난 제품을 내놓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애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2007년 처음 아이폰을 내놓고 한 동안 애플은 ‘스마트폰 시장의 4할 타자’였다. 나홀로 천상계에 있었다. 반면 삼성을 비롯한 다른 경쟁업체들은 ‘도토리 키재기'를 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폴더블폰은 삼성이 먼저 대중화시켰다. 카메라를 비롯한 다른 성능도 갤럭시가 아이폰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이제 두 회사는 다양한 분야에서 치열한 경쟁을 하는 사이다. 타율 1, 2푼. 혹은 홈런 한 두 개로 타이틀을 나눠 갖는 사이다.
그러니, 이젠 ‘아이폰에 혁신이 사라졌다’고 말하는 건 시대착오적인 얘기다. 대신 누가 홈런 한 개, 도루 하나, 안타 한 두 개를 더 잘쳤는지, 비교 분석하는 게 21세기 스마트폰 시장을 제대로 읽어내는 방법이다.
■ 아이폰15, 소소하지만 확실한 개선에 주목해야
나는 아이폰15의 가장 큰 혁신은 ‘USB-C 포트’라고 생각한다. 나 홀로 다른 규격을 고집하던 애플이 시장의 기본 문법을 수용한 건 중요한 혁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록 그게 유럽연합(EU)이란 거대한 외부의 압박 때문이긴 하지만.
전 라인업에 '다이내믹 아일랜드'를 적용하면서 노치를 없앤 것도 눈에 띈다. 고급 모델에 스테인리스 스틸에서 티타늄을 탑재한 것도 간단하게 볼 부분은 아니다. 게다가 광고까지 내놓으면서 '탄송중립 선언'을 한 것 역시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가격 동결 조치도 소비자들 입장에선 '소소한 혁신'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이런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아이폰15에 (문자 그대로의) 혁신은 없었다. 그런데 그건 애플의 실력 부족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최대 경쟁자인 삼성의 뛰어난 실력 때문이다. 그런 강력한 경쟁자가 있는데, 어떻게 혁신이 가능하겠는가?
[덧글]
‘4할 타자’가 실종됐다고 야구계의 혁신이 사라진 건 아닌 모양이다. 올해 오타니 쇼헤이는 세계 최고 리그에서도 ‘상상을 뛰어넘는 혁신’ 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줬다.
그는 3할 타율에 홈런도 40개를 넘겼다. 타점과 득점 모두 100점 내외를 기록했다. 투수로는 두자리 승수(10승)을 달성했고, 리그 최정상급 탈삼진 실력을 과시했다. 지금은 규정 이닝이 모자라 등수 밖으로 밀려났지만, 한 동안 피안타율 1위를 고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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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그는 한 동안 홈런과 3루타 모두 리그 1위를 차지했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온갖 괴물 같은 선수가 즐비한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도 파워가 필요한 홈런과 빠른 발이 필수 요건인 3루타 부문을 동시에 석권한 선수는 찾기 힘들었다.
그러니, 애플의 잘못이라면, 스마트폰 시장에서 오타니가 되지 못한 것이다. 아, 그런데 오타니는 지금 보이지 않는다. 투수와 타자를 겸하면서 무리하다가 결국 부상에 쓰러졌다. 결국 올 시즌 미국 프로야구 최대 혁신 상품이 사라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