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선택으로 세상을 떠난 초등학교 교사에게 '갑질'을 한 것으로 지목된 학부모의 신상을 폭로하는 계정이 등장하면서 '사적 제재' 논란이 다시 일고 있다. 이 계정은 생성 하루 만에 팔로어 7000여명이 모일 정도로 폭발적 반응을 얻고 있다.
지난 10일 인스타그램에는 "24년 차 교사가 목숨을 끊게 만든 살인자와 그 자식들의 얼굴과 사돈의 팔촌까지 공개한다"는 소개 글을 올린 계정이 등장했다.
계정에는 대전 교사 사망사건의 가해자로 몰린 학부모를 비롯해 가족의 얼굴 사진, 전화번호, 직업, 사업장이 담긴 게시물이 다수 올라왔다. 계정 운영자는 '촉법소년'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에 앞서 5일 대전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극단 선택으로 세상을 떠났다. 노조 등에 따르면 교사는 학부모들의 악성 민원에 시달렸고 무고성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된 것으로 알려졌다. 서이초등학교 교사의 극단 선택과 비슷한 사건이어서 큰 공분을 샀다.
계정은 생성 하루 만에 팔로어 7000명을 모았다. 전날 일부 네티즌의 신고로 다른 계정이 만들어졌는데 해당 계정에도 생성 5시간 만에 5000여명의 팔로어가 모였다.
게시물에는 "절대 물러서지 마라" "정의 구현 응원한다" "용기 있는 행동 감사하다" 등 계정 운영자를 응원하는 댓글이 다수 달려있었다.
◇ 명예훼손·마녀사냥 우려에도 끊임없는 사적 제재
그러나 네티즌의 사적 제재는 명예훼손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현행 정보통신망법에 따르면 비방 목적으로 사실을 공공연하게 드러내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정확하지 않은 정보로 신상을 폭로했다가 억울한 피해자가 나올 위험성도 있다.
법무법인 광야의 양태정 변호사는 "'악성 민원을 제기했다'는 사실을 공개하는 것만으로도 명예훼손이 될 수 있다"며 "실명 언급을 넘어 욕설을 하거나 사업을 방해하면 업무방해의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지적에도 사적 제재 사례는 꾸준히 나오고 있다. 지난 6월에는 한 유튜버가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피의자 신상을 공개했다. 서이초 교사의 극단 선택 당시에도 네티즌들은 "여당·야당 3선 의원이 뒤에 있다"며 막무가내식 신상털기를 한 바 있다.
김중백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진실이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마녀사냥식으로 부정적 감정을 돋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폭력을 폭력으로 해결하는 것은 적절하지도, 지속가능하지도 않다"고 지적했다.
◇ "국가 처벌 미흡하면 개인 형벌 내려야"
전문가들은 사적 제재의 원인으로 '괴리된 법 감정'을 꼽는다. 경찰의 수사나 법원의 판결이 대중의 법 감정과 격차가 클 때 사적 제재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리얼리서치코리아가 지난 6월 5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50.1%가 "사적 제재에 동의한다"고 대답했다. "국가 혹은 법이 충분한 처벌을 내리지 못한다면 개인의 형벌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37.6%, "국가·법의 제재와 별도로 개인의 형벌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응답이 12.5%였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는 "처벌받을 줄 알면서도 사적 제재에 나서는 것은 현재의 사법 절차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의미"라며 "국가를 믿지 못하니 '자경주의'가 널리 퍼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생 문모씨(27·남)는 "인과응보의 관점에서 사적 제재를 정의롭다고 느끼기도 한다"며 "수사 결과나 판결이 대중의 법 감정보다 가볍다는 점이 큰 몫을 한다"고 분석했다.
이에 이 교수는 "일반인들이 수사기관이 갖고 있는 정보에 접근할 수 없기 때문에 수사 결과와 대중의 추정 사이에 큰 차이가 있을 수 있다"며 "중간 결과 발표 등 대중의 법 감정과 괴리되지 않는 수준의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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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현행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사적 제재는 허용될 수 없다"며 "공권력이나 형사사법체계가 제대로 작동해 나쁜 행동을 한 사람이 적절하게 처벌받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제공=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