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결정권자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두려워하면 안됩니다."
마이다스 자인연구소가 개최한 '2023 사람경영포럼'이 6일 오후 판교 그래비티 호텔에서 열렸다. ‘초융합 AI시대, 경영과 HR의 길을 묻다’를 주제로 열린 행사에는 삼성전자, 네이버, LS, 경인양행, 고려해운, 수산그룹, 티맥스, 코오롱, 한솔제지 등 초융합 AI시대를 맞아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기업의 미래 경영 과 HR 전략을 고민하는 리더들 170여명이 참석했다. 이번 ‘사람경영포럼’은 기업 대표, 임원, HR리더들과 함께 사람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경영과 HR에 대한 지혜와 통찰을 나누는 행사로 2023년 2월 처음 시작됐다.
특히 이날 삼성전자 갤럭시 스마트폰 신화를 이끈 고동진 전 삼성전자 대표(현재 고문)이 강연자로 나와 지난 38년간의 삼성전자 경험을 통해 얻은 ‘사람과 조직’, ‘일과 경영’에 대한 인사이트를 공유했다.
1984년 삼성전자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대표까지 오른 그는 삼성전자 유럽 연구소장, 상품기획팀장, 개발실장 등 주요 직책을 두루 거쳤다. 특히 폴더블 스마트폰 같은 혁신 기술을 세계 최초로 선보이며 갤럭시 브랜드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 '갤럭시 성공 신화’ 주역으로 꼽힌다. 지난 7월에는 삼성전자 38년 경험을 담은 '일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책을 발간해 두달만에 7쇄 제작(2만권 이상 판매)에 들어가는 인기를 얻고 있다.
'고동진 사장에게 경영을 묻다'는 제목으로 진행한 이날 강연에서 고 전 대표는 행사 주최측인 마이다스에 대한 단상으로 말문을 열었다. 이형우 마이다스그룹 회장이 저술한 책 '사람이 답이다'를 이틀만에 다 읽었다면서 "토요일과 일요일에 읽으면서 몇 번이나 무릎을 쳤다. (우리나라에) 이런 분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면서 "아는 삼성사람들에게도 책을 구매해 나눠줬다"고 말했다. 이날 강연은 사전에 받은 질문에 답을 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대기업에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낸 그는 인재상 등과 함께 가족을 강조, 눈길을 끌었다.
청충이 그에게 물은 첫번째 질문은 "수많은 어려운 상황과 위기들을 어떻게 극복했으며, 또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대원칙이 있는가?"였다. 고 전 대표는 2016년 8월 발생한 갤럭시노트7 발화사건으로 다음해 2월까지 약 8개월간 큰 어려움에 직면한 적이 있다. 답변에 나선 고 전 대표는 어려운 상황과 위기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분석이 일의 시작이라면서 "마지막 의사결정권자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두려워하면 안된다. 일단 두려움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문제 해결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 남을 시켜서 해야할 것, 조직을 동원해야 할 것을 구분해야 한다면서 "갤럭시노트7 때 딱 두가지 원칙, 즉 투명성과 책임성의 대원칙을 끝까지 지켰고 흔들리지 않았다. 책임자가 흔들리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리더는 큰 줄거리만 잡아주면 된다"고 들려줬다. 8개월간 지속한 갤럭시노트7 발화는 결국 단말기가 아니라 배터리가 문제인 것으로 판명돼 삼성전자는 위기에서 벗어났다.
성과 경영을 위한 핵심역량과 새겨야 할 통찰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이에 그는 "의사결정권자, 리더, 조직 구성원의 역할이 클리어(Clear)해야 한다"면서 임원을 과장으로, 부장을 대리로 활용하고 있지 않은 지, 또 조직간에 벽이 있지 않은 지, 성과 도출을 위한 핵심역량(Core Competency)이 정의돼 있는 지 살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마이다스그룹이 늘 강조하는 "사람이 답이다"를 언급하며 "이건 내가 사장하면서 항상 하던 말"이라고 미소지었다.
삼성 창립자 고 이병철 회장이 한 유명한 말 중 하나가 '의심스러운 사람은 쓰지 말고, 쓴 사람은 의심하지 않는다(疑人不用 用人不疑)'는 말이다. 이날 고 전 대표는 이와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의인물용(疑人勿用)은 옳다. 하지만 용인물의(用人勿疑)는 틀리다"면서 "쓴 사람도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직이 커지면 이상해지는 사람이 있다면서 "그게(모니터링 하는게) 서로를 위해 좋다"고 덧붙였다. 하드웨어(HW)와 소프트웨어(SW)가 다르듯이 이를 전공한 사람에 따라 성격도 하드웨어는 유목민 성향을, SW하는 사람은 농경사회 특성을 갖고 있다는 나름대로의 생각도 밝혔다.
일을 잘하는 성과 인재를 보는 안목과 기준을 묻는 질문도 나왔다. 고 전 대표는 "능력은 중요하다. 그러나 기본역량과 품성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연령대별 갖춰야 할 인재상도 제시했다. 즉, 20~30대는 SOP(스피드, 오너십,열정)를, 40대는 긍정 사고·신뢰·선공후사·인간미를, 50대는 경청과 조직운영 능력, 인간미가 요청된다는 것이다. 이어 집토끼(20~30대)와 산토끼(40대 이후 들어온 사람)를 어떻게 어울리게 할 지가 경영자의 숙제라며 현 시스템으로는 이를 완벽히 잘 구현해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임원을 기준으로 인재를 보는 안목과 기준에 대한 질문에는 "첫째가 전문성"이라며 전문성을 강조했다. 그가 말하는 전문성은 글로벌 경쟁력과 '넓으면서 깊게 아는 박이정(博而精)'이다. 전문성과 함께 경청의 리더십과 겸손과 배려의 인간미를 인재 기준으로 꼽았다. 여기에 보통의, 평균적인 가족관계에서 자란 성장환경도 한 요인으로 지목했다.
리더 선발 기준과 동기 부여를 묻는 질문에는 역시 나이별로 다르다고 답하면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을 찾아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리더 후보군 폭을 넓게 해 6개월과 12개월 단위로 모니터링을 해야 한다면서 360도 의견 청취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머슴 스타일에 대해서는 "잘 생각해야 한다. 많은 민폐를 만들수 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젊은 세대와의 소통과 조직문화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본인과 아들 두명간 소통을 예로든 그는 "같은 눈 높이에서 이야기하면 큰 문제가 없다고 본다. 여기에 진정성도 필요하고, 특히 모든 의사소통의 시작은 일"이라며 일과의 관계를 강조했다. 또 조직문화는 모두가 같이 노력해야 한다면서 위로 올라갈수록 후배들이 어려워하는게 당연하니 "먼저 다가가야 한다"고 조언하며 "가정에서 내 모습이 회사서의 내 모습이다. 나는 30년동안 아이들과 허깅하고 있다. 시간나는 대로 10초 정도 꼭 껴안아주라"며 본인만의 노하우도 공개했다.
경영자의 멘탈 관리에 대해서는 "매일 아침 50분 정도 땀을 흘리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 나이를 넘을 수 있는 팔굽혀 펴기도 해야 한다"면서 "모든 것은 리더 책임이니 항상 내 몸을 베스트로 만들어놔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본인의 멘탈관리는 가족이라면서 "에너지의 근원은 가족이다. 가족은 영원한 내편"이라고 덧붙였다.
경영자로서 삶의 태도와 성공 원칙에 대한 질문에는 "경영자가 회사의 성장을 책임지는 건 맞지만, 직원들의 인생을 책임지는 것은 아니다. 성공은 목표가 아닌 여정"이라면서 "성공과 성과는 좇는 것이 아니라 따라오는 것이다. 모두가 함께 하는 시간이 보람되고 행복하게 해주는 역할이 경영자가 해야 할 일"이라며 강연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