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찬섭 동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와 주은선 경기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제5차 국민연금 재정계산 위원의 직을 사퇴했다.
이들은 31일 사퇴의 변을 통해 “제5차 재정계산위원회 공청회를 하루 앞둔 오늘까지 우리는 조그마한 희망이라도 살려보고자 기다렸지만 현재의 재정계산위원회는 공적연금으로서 국민연금의 본질을 구현하고 이를 위한 수단으로서 합리적이고 공평한 재정안정방안을 마련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다”며 사퇴의 뜻을 밝혔다.
사퇴 위원들은 “이번 재정계산위원회는 재정중심론자 중심으로 편향되게 구성된 데다 지금까지 21차례의 회의를 하는 동안 위원회는 국민연금이 공적연금으로서 갖는 본래 목적보다는 국민연금을 민간보험인양 취급하거나 기금제도인 것처럼 취급하는 접근에 경도됐다”며 “현행 국민연금제도가 앞으로 70년 동안 그대로 변함없이 유지된다는 전제와 노동연령인구 감소가 곧 생산성과 산출 둔화로 이어진다는 대단히 보수적인 전제 위에서 이루어진 국민연금 재정계산 결과를 마치 미래를 증명한 것처럼 전제하고서 보험료와 수급연령에서만 문제해결책을 찾으려는 좁은 보험수리적 접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러한 보험수리적 접근에 경도된 논의로 인해 재정을 위해서는 공적연금으로서 국민연금의 본래 목적을 훼손해도 되고 그럴 수밖에 없다는 식의 접근이 팽배했다”며 “이는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노후보장 강화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예상연금수령액 문자를 받는 국민 중 최소한의 안정적인 노후생활이 가능할지 의구심이 많다”며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은 2028년까지 40%로 하락토록 돼 있어 미래에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늘어남에도 불구하고 실제 받는 연금의 소득대체율은 하락하는 상황까지 벌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 국민연금이 성숙한 후에도 노인빈곤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지 못할 수 있고, 이는 미래의 부담으로 고스란히 전가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재정중심론자들은 미래세대 재정 부담을 강조하지만 실제 미래세대 부담은 낮은 국민연금 급여액과 이로 인한 빈곤대응에서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재정계산에 의하면 현재도 국민연금 보험료 부과대상소득(보험료 부과기반)은 GDP의 29%로 30%에 미치지 못하며 2050~2060년대에 가면 GDP의 25% 내지 26%로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국민연금이 노동소득에만 보험료를 부과하기 때문이며 또 노동소득의 주체인 노동연령인구가 감소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결과”라며 “재정중심론자들은 보험료 수입으로 연금재정을 모두 충당하려 하나 이처럼 2050년대 내지 2060년대에 GDP의 4분의 1에 불과하게 될 노동소득에만 보험료를 부과한다면 그것은 인구고령화로 인한 부담을 일반노동자에게 모두 떠넘기는 것으로 심히 불공평한 처사”라고 밝혔다.
사퇴 위원들은 “공적연금은 기본적으로 자본주의에서 생겨난 퇴직제도에 의해 등장한 제도로 노동세대와 퇴직세대가 매 해 해당 사회가 만들어낸 GDP를 나누어 갖기 위한 제도적 장치”라며 “2050~2060년대에 GDP의 25~26%에 불과하게 될 보험료 부과기반을 그대로 전제한 상태에서 보험료만 인상하려는 것은 현실성도 없고 형평성도 없다. 보험료 부과소득상한을 올리고 보험료 부과기반에 자본소득을 포괄해 보험료 부과기반을 넓히는 방안을 지금부터 차분히 계획해 일정한 시점부터는 점진적・단계적으로 실행에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인구고령화로 인한 인구구조 변화에 대해 보다 열린 접근이 필요하다. 인구고령화로 인한 인구구조 변화로 노동연령인구가 감소하는 경우 그때의 노동연령이 지금과 동일한 연령대라고 생각할 이유도 없으며, 그때의 노동인구가 지금과 동일한 자본량을 활용할 것이라거나 지금과 동일한 생산성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할 아무런 근거가 없다”며 “미래에는 전체인구의 절반에 이를 65세 이상 인구의 소득을 경제 전체로 선순환하도록 해 그들의 구매력이 청장년의 일자리 창출 등으로 이어지게 하는 세대 간 자원의 선순환이 중요하다. 국민연금은 단순한 지출이 아닌 세대간 자원의 선순환을 위한 제도적 장치로서 적정지출을 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노후소득보장제도가 초고령사회에 대응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현재 국민들의 부담여력도 고려해야 하고 현재의 생애주기와 노동시장을 감안한 전반적인 생애주기의 조정 등이 점진적・단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연기금의 수익률을 높이려 기금운용거버넌스를 전문가중심으로 개편한다면 이는 중산층과 서민들이 매달 의무적으로 납부하는 보험료를 자칫 국내외 금융자본의 이윤추구 행위에 맡기는 일이 될 수도 있다”며 “이러한 개편 이전에 정부는 그동안 국민연금기금의 절반 가량을 위탁운영해온 국내 거대금융기업들의 수익률이 왜 연금기금을 직영하는 기금운용본부보다 낮은지부터 해명하고 그 개선대책부터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퇴 위원들은 이번 재정계산위원회는 무엇보다 공청회 보고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그 편향성을 극명하게 드러냈다고도 주장했다.
이들은 “애초 이번 공청회 보고서는 재정중심론의 시나리오와 소득대체율 인상론의 시나리오를 각기 보고서의 3장과 4장 1절에서 보여주어 국민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최종 선택은 국민들의 판단에 맡기기로 했지만 재정중심론 위원들은 소득대체율 인상안의 시나리오를 보여주는 4장 1절에 소득대체율을 올리면 안된다는 소득대체율 유지안도 함께 서술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심지어는 소득대체율 유지안은 다수안이며 소득대체율 인상안은 소수안이라는 문구까지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고 전했다.
특히 “이것은 우리 사회에 엄연히 존재하는 노후소득보장 강화 필요성을 부정하고 나아가 소득대체율 인상안의 시나리오가 보고서에 온전한 형태로 담기는 것을 기어코 허용하지 않으려는 편협한 태도의 발로”라며 “이러한 편협하고 독선적인 주장은 위원회 논의과정에서 사실상 중재되지도 조율되지도 못했다”며 유감을 표했다.
이와 함께 “이제 재정계산위원을 사퇴하지만 공적연금인 국민연금이 다수 국민에게 적정한 노후를 보장한다는 것이 본연의 목적이며 연금재정은 이러한 목적을 위한 수단이라는 것을 명확히 하면서 현재 우리 사회가 맞이하고 있는 급속한 인구고령화와 노동시장 변화, 기술발전 등의 흐름에 대응할 수 있는 제도개선 방안을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강구해나갈 것”이라며 “그 첫걸음으로 우리는 국민연금제도가 노후보장기능을 충실히 하도록 하면서 동시에 이것이 노사를 비롯한 다양한 주체의 고른 사회적 책임을 통해 재정적으로 가능한 것임을 보여주는 대안 보고서 작성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이하 재정계산위)는 사퇴를 표명한 두 위원의 주장에 대해 재정계산위원회는 국민연금의 재정안정화 방안뿐 아니라 노후소득보장 강화방안을 구체적으로 논의했다고 반박했다.
재정계산위는 소득대체율은 유지안과 인상안으로 의견이 나뉘어 기명하거나, 다수/소수안을 명시해 보고서에 포함하는 방안을 제시했으나, 사퇴를 표시한 위원들은 제안을 거절하고 두 차례 회의에서 퇴장 및 인상안 전체 삭제를 요청해 보고서에 포함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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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재정계산위는 9월1일 열리는 공청회 논의 결과 등을 반영한 최종 자문안을 마련해 정부에 제출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는 재정계산위원회에서 제출하는 최종 자문안과 국민 의견수렴 결과, 국회 특위 논의내용 등을 검토 10월 말까지 종합운영계획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